주목(1) 청와대 740살 터줏대감은 왜 순수성을 시험받았을까
북악산 남서쪽 움푹 파인 능선 사이에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본관과 앞뜰이 청와대 터 서쪽에, 관저 및 상춘재와 녹지원이 동쪽에 있다. 그 사이에 '천하제일복지(福地)' 세상에서 가장 복된 땅이라 불리던 '옛 관저 터'가 있다. 그 관저 터의 한 복판에 740살 곧게 자란 주목(朱木) 나무가 서 있다. 키 6.5m, 가슴높이 둘레 2.5m다.
수피가 붉어 '붉은 나무'(朱木)라 이름 붙은 주목의 고향은 우리나라 높은 산이다. 소백산 해발 1200~1400m 비로봉 주변에 수천 그루가 무리 지어 자라는 주목 군란(천연기념물 제244호)이 있다. 정선 두위봉에 가면 1100~1400살로 추정되는 주목 세 그루(천연기념물 제433호)가 새파랗게 살아있다. 인간은 꿈꾸는 것조차 버거운 천년단위 삶의 시간표로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몸집을 키워나간다.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중)
■삶과 죽음이 뒤섞인 희고 붉은 고목나무
밑동에서부터 살아있는 붉은색 줄기를 고사한 흰색, 이끼류가 감싼 푸른색이 감싸며 용트림하듯 어우러져 올라 하나의 몸통을 이뤘다. 분명한 건 그 흐름을 인간은 절대 구현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이란 집단적 전체적 그리고 연속적 흐름이 인간의 머리(개념) 속에서만 분리되는 것 아닐까.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을 묘사한 그 유명한 구절처럼 쉽게 자라지도, 죽지도, 쓰러지거나 썩지도 않는 주목이 이 지구를 살아가는 방식을 몸소 보여줬다. 생명이란 삶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는 뒤섞임임에도 우리들은 '삶'만을 분리시키려 애쓴다. '청와대 주목'은 오늘도 우듬지를 사방으로 곧게 뻗어 균형 잡힌 모습이었다. 잎이 창창하니 아직 몇 백 년쯤은 팔팔하게 살아갈 작정임을 알 수 있었다.
700여 년 전 이 고목나무의 여로를 떠올려본다. 높은 산속 무리 속에서 살던 어린 주목 한 그루 고려 왕의 성이 있던 서울(고려시대 서울은 남경이라고 불렸고, 청와대 터에 그 궁궐이 있었다.)에 왔을 것이다. 어쩌면 터전을 떠난 주목은 단 한 그루가 아니었으리라. 주목 말고도 팔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나무들이 왕의 궁궐을 장식했을 것이다. 오늘 남은 건 주목 한 그루. 그렇게 주목이 고려 남경 터이자, 조선 경복궁 후원 터이자, 조선총독과 미군 사령관과 한국 대통령이 살던 관저의 앞에 서 있다.
옮겨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2022년 청와대 노거수 6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녹지원을 중심으로 말채나무, 반송, 회화나무 세 그루 그리고 여민관 쪽 용버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역사를 지켜봤으며 온몸에 새기고 있는 주목이 빠졌다. 이유는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3년 옛 관저가 철거되고 지금의 동산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곳에 있던 주목이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얘기다. '옛 관저 터' 전영우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조사에 의하면 '옮겨 심은 나무다'하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우리는 애초부터 그 나무를 청와대 노거수로서 천연기념물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2022년 9월 12일 YTN 인터뷰)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때 *'역사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이곳 '옛 관저 터'에 있던 관저를 철거했는데, 그때 주목이 옮겨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목이 옮겨졌는지'는 조사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조사 과정에서도 이견이 분분했다. 2022년 12월 나온 '청와대 권역 기초조사 연구'를 보면 한 조사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역사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구 본관을 철거하면서 원래 흙 약 4500㎥를 버리고,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을 공사하면서 나온 흙 약 3000㎥를 가져와서 성토했다. 수궁터 일원의 흙은 모두 다 걷어내고 성토하였기 때문에 주목 뿌리 흙과 주변의 흙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무는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선배들 말을 들어봐도 주목은 그대로 있었고 약간 올려 심었을 가능성은 있다. 이승만 대통령 때 근무했던 분도 주목은 그대로 있었다고 증언한다."(ㄱ위원)
정리하면 ①옮겨진 시기는 1993년으로 추정되는데, →②이승만 때부터 그 위치였다는 청와대 근무자들의 증언이 있지만, →③주목 뿌리 쪽 흙과 주변 흙이 다르다는 토양조사를 통해 "옮겨졌다"라고 추정하지만, →④흙이 다른 것은 성토 때문일 수 있다는, 반론에 반론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수백~수천 년 시간 씀씀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설사 '청와대 주목'이 옮겨 심어졌다고 하더라도 천연기념물로 기념할 정도의 가치가 없을까 하는 점이다. 꼭 청와대 주목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나고 자란 터전을 떠나 옮겨 심어 진 나무는 가치가 떨어지느냐 하는 문제다. 신비롭고, 인간이 흉내 낼 수도 없는 그 자람과 수백~수천 년의 시간 씀씀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순수성' 하나로 정리하고 싶어 하는 조급하고 성급한 욕망이 읽힌다. 문화재위원들이 노거수와 그 자람을 얼마나 오래, 정성 들여 감상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정말 **"뛰어나거나 독특한 자연미"(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별표 1')가 없는지 되묻고 싶다.
*'옛 관저 터'(혹은 '수궁 터)는 1104년 고려 때 숙종이 '서울 별궁'(別宮)이 지어졌던 곳이고, 이어 조선 때는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이 머물던 수궁(守宮)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 1939년 일제가 조선총독 관사를 이곳에 쓰면서, 이후 미군정 때 미군 사령관 관저로, 또 해방 이후에도 대통령 관저(이승만, 윤보선, 박정의,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로 사용됐다. 그런 것을 1993년 2월 25일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민족자존과 민족정기를 되찾고자 하는 뜻에서"(당시 철거 계획 보고서 중) 철거(같은 해 10월 15일)했다.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별표 1'은 천연기념물 노거수 지정의 기준을 제시한다. 다음 중 하나 이상의 가치를 충족하는 유산을 천연기념물 노거수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먼저 △역사적 가치(■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고유의 식물로 저명한 것, ■문헌, 기록, 구술 등의 자료를 통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생활 또는 민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전통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된 고유의 식물로 지속적으로 계승할 필요가 있는 것) △학술적 가치(■국가, 민족, 지역, 특정종, 군락을 상징 또는 대표하거나, 분포의 경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 ■온천, 사구, 습지, 호수, 늪, 동굴, 고원, 암석지대 등 특수한 환경에 자생하거나 진귀한 가치가 있어 학술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 △경관적 가치(■자연물로서 느끼는 아름다움, 독특한 경관요소 등 뛰어나거나 독특한 자연미와 관련된 것, ■최고(最高), 최대, 최장, 최소(最小) 등의 자연현상에 해당하는 식물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