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1) 꽃의 색감과 향기만으로는 부족한, 목서를 찾아서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나무코뿔소, 그러니까 목서가 삽니다. 목서(木犀)는 나무 목에 코뿔소 서를 쓰지요. 주말 오전에 산책을 하면 짙푸른 초록빛 목서를 감사하곤 합니다. 10여 그루가 무리 지어 서 있습니다. 그 잎들이 겹쳐진 모습이 막 날아오르려는 한 마리 새를 참 닮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수백 마리의 새들의 날갯짓과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달까요. 캐노피(수관) 속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짙푸른 잎사귀 속으로 스며든 빛이 은은한데, 그 몸통(수피)이 하얗고 거슬거슬합니다. 신비로움이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8월 초 한 여름입니다.
보통 목서를 이야기하면 꽃 이야기부터 합니다. 목서가 대중들에게까지 유명해진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목서의 꽃을 언급하면서부터입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데 , 물봉선과 떨어져 깨진 홍시감과 껍질까진 밤송이가 질펀했습니다. 마당엔 금목서와 은목서 꽃향기…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요?” (2015년 9월 27일 페이스북)
한반도 남쪽 해안 지방과 제주도에서 제한적으로 살아가던 대표적인 남쪽 식물이 이제는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계기 중 하나였을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금목서와 은목서가 바로 목서입니다. 하얀 꽃이 피는 목서를 은목서, 노란 꽃이 피는 목서를 금목서라고 합니다. 짙푸른 잎 색과 대비되는 꽃의 색감과 함께 짙디짙은 '향기'는 목서하면 빠트릴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9월 가을의 초입에 목서는 인간이라는 포유류의 시각과 후각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꽃 중심의 이야기와 감상은 뭔가 허전합니다. 매년 9~10월 불과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지속될 뿐인 꽃의 향연만으로 목서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11달 목서는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대하는 이름이랄까요. 그래서 불편하달까요. 오늘날의 '심각한 편식쟁이'로 진화한 인간의 인식을 사로잡았다고 해서, 목서 꽃의 색감과 향기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일 수도 없습니다. 호랑이를 맹수나 포식자로만 바라보고, 토끼는 귀여움으로 읽고, 장미는 화려함에만 대입하려고 하면서, 이런 억지로는 그 깊은 본연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목서라는 이름은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 시작된 이름입니다. 수피 색상과 무늬가 코뿔소(犀牛)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12세기 초 북송 시절 장방기(張邦基)가 집필한 책 묵장만록(墨莊漫錄) 제8권에 목서의 이름의 유래가 등장합니다. 목서의 이름 유래를 명시적으로 설명해 놓은 아마 가장 이른 문헌이 아닐까 합니다.
목서꽃은 강남 지역(특히 장쑤 성과 저장성)에 많이 자라며, 그 향기는 맑고 그윽하여 다른 꽃들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한 종류는 꽃 색이 짙은 노란색이고 꽃이 크며, 향기가 특히 강합니다. 또 다른 종류는 꽃 색이 연한 흰색이고 꽃이 작으며, 향기는 짧게 지속됩니다. 맑은 새벽에 북풍이 불면 그 향기가 코끝에 와닿는데, 참으로 하늘의 향기요 신선의 향내라 할 만합니다. 호남 지방에서는 이를 ‘구리향(九里香)’이라 부르고, 강동 지방에서는 ‘암계(岩桂)’라 하며, 절강 사람들은 ‘목서(木犀)’라 부릅니다. 이는 나무의 결이 코뿔소(犀)의 피부처럼 단단하고 고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湖南呼「九里香」,江东曰「岩桂」,浙人曰「木犀」,以木纹理如犀也。) 하지만 옛사람들은 이 꽃에 대해 시를 지은 일이 거의 없어, 예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9리(3.6km)까지 향이 멀리 퍼진다는 '구리향'(九里香), 산등성이 바위틈바구니에서도 굳건하게 잘 자란다고 하여 '암계'(岩桂), '목서'(木犀) 등 목서의 생태적 특성을 반영한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암계에서 계(桂)는 목서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이 '桂' 자체가 향*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설 속 달나라에 산다는 키 500장(1515m)의 거대한 월계수(月桂樹)도 그 향이 짙디짙었다고 하지요. 桂라는 말이 먼저 향기를 뜻했는지, 향기 나는 목서를 桂라고 하면서 桂가 향기를 뜻하게 됐는지, 지금으로선 추적할 수 없는 인류의 무수한 경험 속에서 형성된 말이겠지요.
여기서 주목되는 건 목서라는 이름입니다. 꽃 향기를 표현한 이름인 구리향, 암계와 대비됩니다. 향도 색감도 떠오르지 않는 나무코뿔소라는 이름은, 인간의 인식을 극복하려 한 그리고 좀 더 본질을 찾아가려 시도한 이름 같습니다. 사철 우리 옆의 서 있는 수피를 이름으로 삼았으니까요.
목서가 주된 자생지인 중국 양쯔강 이남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묵장만록에서 목서를 언급한 구절은, 당시 목서꽃을 노래한 시구들을 인용하며 이어집니다.
그래서 장운수(張芸叟)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을 멈추고 찾으려 해도 들어갈 길이 없고, 스님에게 물어보아도 꺾어본 적은 있으나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伫马欲寻无路入,问僧曾折不知名。」 이는 바로 이 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왕이녕과 주사(周士)가 지은 《길에서 구리향꽃을 듣고》라는 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강매(江梅)를 보지 못한 지 삼백일, 자색 퉁소 소리 끊기고 시름의 꿈만 길어지네. 어디서 왔는가, 녹색 치마 붉은 옷 입은 손님이 바람을 타고 와서 되살리는 향기를 바치네.”「不见江梅三百日,声断紫箫愁梦长。何许绿裙红帔客,御风来献返魂香。」
여기서 '녹색 치마 붉은 옷 입은 손님'은 목서꽃 중에서도 꽃이 붉은색인 단계(丹桂)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단'계'(桂)는 '붉은 목서 꽃'이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그 꽃이 흰색인 것, 즉 은목서는 은계(銀桂), 노란색인 것, 즉 금목서는 금계(金桂)라고 불렀습니다. 아울러 그 색이 다른 만큼 향의 지도 다른데, 금계(金桂)는 바이올렛톤 성분이 많아 나무 향이 강하고, 은계(銀桂)는 바실렌이 많아 달콤한 향이 강하며, 단계(丹桂)는 리날롤이 많아 꽃향기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목서류(목서 속)의 꽃은 샤넬 넘버5, 조 말론, 구찌 플로라 등등 유명 향수 브랜드의 원료로도 쓰이지만 당시에도 목서 꽃 향기를 향수처럼 활용한 사실도 이 책 속에 나타납니다.
근래에는 꽃술을 따서 향료를 증류하는 데 쓰는데, 매우 훌륭한 방식입니다. 산중의 스님들은 꽃이 반쯤 피어 향기가 가장 짙을 때 가지에서 직접 따서, 여정나무(俗稱 冬青, 동백나무)의 열매를 찧어 즙을 내어 꽃과 살짝 섞은 뒤, 유약을 입힌 자기 병에 넣고 두꺼운 종이로 덮습니다. 꽃이 없는 계절이 되면 밀실에서 꺼내 접시에 놓는데, 그 향기가 가을에 꽃이 피었을 때처럼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 후 뚜껑이 있는 그릇(器藏)에 넣어 보관하면 오래도록 향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서 꽃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자 했던 욕망과 천착 속에서도 그 이름이 목서로 남았습니다. 자신의 인식을 객관화하려 했던 강한 절제력이 느껴집니다. 색즉시공이라는, 긴 우주의 시간에 잠시 티끌 같은 흔적을 남길 뿐인 인간 인식의 허무함, 덧없음이 목서라는 이름을 통해 계속 울리는 듯합니다. 또한 코뿔소라는 다른 생명에서 그 이름을 빌려옴으로 인해 의미는 계속 미끄러지고, 이어지고,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목서의 라틴어이름(학명)은 오스만투스 플라그란스(Osmanthus fragrans)입니다. Osmanthus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οσμη' (osme)는 '냄새'를, 'ανθος' (anthos)는 “꽃”을 의미합니다. fragrans는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나는'이라는 뜻입니다. '향기로운 꽃 내음'이라는 뜻이지요. 목서 향을 단 한 번이라도 맡아봤다면 이런 이름이 지어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