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백송①] 용, 유령 그리고 이웃

by 김트리
서울 남가좌동 한 아파트의 30~40살쯤 된 '어린' 백송의 수피. 초록빛 수피가 불그스름하게 벗겨져 있다. 마치 플라타너스나 모과나무를 보는 것 같다. 김트리


나무는 몸통을 키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옛 껍질(수피 樹皮)을 벗습니다. 붉은 소나무(赤松 적송)라 불리는 '소나무'는 세로로 뚝뚝 끊어지는 굵고 선명한 선을 그리며 껍질을 벗습니다. 선과 선 사이로 음영이 선명한 골이 만들어집니다. 수묵화의 굵은 붓터치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소나무의 친척 뻘로, 해발고도 1000미터 이상 높은 산에 자생하는 '잣나무'(Pinus koraiensis, 한국소나무)는 점점이 껍질을 벗습니다. 가는 펜으로 그렸달까요. 얼룩덜룩 크고 작은 동전 같은 편린들이 일어나 떨어집니다.

이름은 소나무인데, 초록색을 띈 수피가 오묘한 곡선을 그리며 불그스름하게 떨어져 나가는 '소나무류'가 있습니다. 마치 넓은잎나무(활엽수) 중에서도 얇은 껍질을 곱게 벗겨내는 것으로 이름난 모과나무나 플라타너스 같습니다. 하지만 가지 끝을 보면 짱짱하게 내뻗은 바늘잎이 영락없는 바늘잎나무(침엽수)입니다. 여기서 한번 더 우리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핑(비약)이 있습니다. 이 소나무류의 이름은 백송(白松, 흰 소나무) 혹은 백피송(白皮松 흰 껍질 소나무)입니다. 50~100살 이상되면 초록빛 수피가 하얗게 변하는데서 붙은 이름입니다. 제가 사는 서울 남가좌동 한 아파트에도 30~40살쯤 된 '어린' 백송 한 그루가 자랍니다. 산책길에 발길을 멈춰 그 오묘한 수피의 모양과 색채를 감상합니다.

서울 남가좌동 한 아파트의 30~40살쯤 된 '어린' 백송의 수피. 초록빛 수피가 불그스름하게 벗겨져 있다. 마치 플라타너스나 모과나무를 보는 것 같다. 김트리
서울 남가좌동 한 아파트의 30~40살쯤 된 '어린' 백송의 수피. 초록빛 수피가 불그스름하게 벗겨져 있다. 마치 플라타너스나 모과나무를 보는 것 같다. 김트리

중국인 식물학자 이혜림(李惠林 1911–2002)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시절인 1968년 3월 낸 백송에 대한 소개글(The Lace-bark Pine, Finns bungeana)에서 백송 껍질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나무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독특하고 매우 장식적인(ornamental) 나무껍질입니다. 다른 소나무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며, 껍질이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조각으로 벗겨지면서 아래의 어린 녹색 껍질이 드러납니다. 나이가 든 나무에서는 줄기와 주요 가지의 노출된 껍질이 분필처럼 흰색(chalky white)으로 변하고, 어린 가지의 껍질은 노란빛 또는 황록색을 유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흰 껍질은 나무가 50년 이상 되어야 나타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게 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도 녹색에서 노란색, 거의 순백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조의 흰 반점들이 다양한 형태와 크기, 윤곽으로 나타나며, 그 모습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장식적인 껍질과 함께, 비틀린 가지 구조와 사계절 내내 푸른 바늘잎이 어우러져 이 나무는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무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이 흰 껍질은 살아 있는 가지에서만 나타나며, 가지가 죽으면 껍질이 검게 변해 밝은 색의 가지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흰색은 어떤 물질이 침착된 것이 아니라, 미세한 세포 구조(microscopical cell structures)에서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현상(the effect of reflection of light)입니다. 가지가 죽으면 세포가 붕괴되어 세포벽이 흰색을 드러내지 않게 됩니다.

백송의 고향은 중국 베이징 서쪽의 산시성(山西省) 등의 산림입니다. 중국에서는 백송을 신비롭고 귀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불려졌던 이름을 보면 그 귀하게 여긴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흰 뼈 소나무(백골송 白骨松),세 잎 나무(三针松),호랑이 무늬 나무(호피송 虎皮松),용 서림 나무(용반송 蟠龙松) 등입니다.

세 잎 나무라는 이름은 백송이 바늘잎을 세 가닥씩 묶음으로 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세 가닥에서 천지인(天地人) 삼법인(三法印) 삼위일체(三位一體) 등 '3'이라는 숫자 자체가 매우 길(吉)하고 군더더기 없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같은 소나무류 가운데 소나무는 두 가닥씩, 잣나무는 다섯 가닥씩 묶음입니다. 전반적인 나무 생김새(수형 樹形)를 보면 소나무는 이리저리 굽어가며 자라는데 비해 잣나무는 곧게 자라는 편입니다. 백송은 1m쯤 위로 굵은 줄기들을 자유분방하게 뻗어가며 자랍니다. 잎 가닥들이 하늘을 디디고 선 것 같달까요. 두 갈래로 뻗은 소나무가 두 다리로 선 소반처럼 불안하게 서있는 반면, 다섯 갈래 잣나무는 보다 안정적으로, 그리고 세 갈래 잎을 낸 백송은 그 중간쯤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중국 베이징 계대사(戒台寺)에 사는 구룡송(九龙松). 출처 : https://kknews.cc/zh-hk/culture/yrg9omj.html

용이 몸을 서리고 있는 듯하다는 뜻의 용반송이라는 이름에서 백송이 얼마나 귀한 나무로 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하디귀해서 너무 귀해서 천상의 용이된 겁니다. 백송이라는 생명이 자라나는 생태적 신비로움을 오래오래 생각하고 간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읽힙니다. 용반송이라는 '묘사'로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베이징 계대사(戒台寺)에 사는 구룡송(九龙松)입니다. 이 특별한 이름이 붙은 건 몸통 줄기에서 아홉 갈래의 굵은 줄기가 뻗은 모습 때문입니다. 요나라 시대(916년~1125년)에 식재돼 현재 천살이 넘었다고 한다. 키 18m에 가슴 높이 둘레가 2m가 넘는다.

“절 문 안개비 속에, 흰 용처럼 보이네.”“寺门烟雨中,混作白龙看。”

당나라 시인인 장계(张继 715~779)가 지은 것으로 구룡송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지어졌지만 구룡송을 설명할 때 꼭 따라붙는 시구입니다.

“보물 같은 나무는 맑은 봉우리 기대고, 달빛 아래 가지는 춤추듯 흔들리네. 잎이 깊어 황새와 학을 숨기고, 늙은 가지는 용처럼 굽이치네.”“宝树依晴峰,婆娑月影重。叶深藏鹳鹤,枝老作遒龙。”

1636년 쓰인 명청 시대 명승지 기록인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는 이 백송을 묘사한 구절이 이렇게 등장합니다.
리옹 식물원의 백송. 출처 : https://www.treesandshrubsonline.org/articles/pinus/pinus-bungeana/

백송이 유럽에 전해진 건 1800년대 중반입니다. 프랑스 리옹 식물원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백송이 있습니다. 문화적 토대는 달라도 백송 매료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리옹식물원은 이 백송을 유령에 빗댑니다. 역시 매끈하고 통통한 이 수피가 감상 포인트입니다.

이 나무의 껍질은 조각조각 벗겨지며, 흰색, 녹색, 자주색, 주황색 등 다양한 색이 드러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껍질은 유령처럼 희게 변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유령이 됐다가 용이 됐다가, 이렇게 신비롭게 된 이유를 추적해 보면 백송이 다른 나무들과 똑같이 '매일같이 하는 일'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을 잎으로 길어 올리고(증산작용), 잎에서 만들어진(광합성작용) 양분을 몸 구석구석 옮기다 보니 몸통 바깥에 있는 물관과 체관이 성장하고 많아지면서 몸통이 굶어진 것. 모든 나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바로 신비로움의 원천입니다.

플라타너스 껍질들. 백송과 닮지 않았나요? 김트리

백송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우리' 플라타너스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그 껍질 벗겨짐을 피부병 즉 버짐(버짐의 강원도 지역말) 같다고 천하게 부르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말입니다. 우리 길거리를 한 여름에도 시원하게 그늘지게 해 주는 나무임에도, '수종갱신'이라는 무뚝뚝한 말로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플라타너스 말입니다. 플라타너스 수피의 변화무쌍함을 온전히 즐길 순 없을까요. 백송처럼 찬양하진 않더라도 내 주변 가장 가까이 선 고등생명체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요.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푸라타나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릴 것이다. (1957년, 김현승, 푸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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