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을 향한 '일방적인 관심, 사실은 폭력'

[②백송] 통의동원효·로보은·... 백송 고목 잇따라 질식사, 왜?

by 김트리
8416355719160004.jpg 1926년 통의동 백송. 밑동 쪽에서 몸통 줄기가 갈려져 처마쯤 되는 위치에서 7~8개의 굵은 줄기가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출처 : 한겨레21 '[역사 속 공간] 통의동 백송은 '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4~9호는 모두 백송입니다.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여섯 그루 가운데 서울 통의동 백송(제4호), 서울 내자동 백송(제5호), 서울 원효로 백송(제6호), 서울 회현동 백송(제7호) 등 고사했고, 서울 재동 백송(제8호), 서울 조계사 백송(제9호)이 살아남았다. 우리나라에서 흰 소나무(백송 白松)가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황제가 산다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이 먼 길 씨앗이나 묘목을 가져와야 하고, 한그루 한그루 온 정성을 다해 대를 이어 50년 이상 키워야, 그 손주나 증손주가 군계일학, 수백의 하얀 백송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정성과 시간이 빚은 백송 고목나무가 나라의 보물(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건 당연지사겠지요. 그런데 이런 귀하게 보살피고 애지중지 아껴온 백송 고목나무들이, 이 짧은 시기 집단 고사했습니다. 천년 이상 산다는 백송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밖에 고사한 천연기념물 백송으로는 밀양 백송(제16호, 1973년 고사), 보은 백송(제104호, 2004년 고사) 등이 있습니다.

2516355719163661.jpg 쓰러진 통의동 백송. 출처 : 한겨레21 '[역사 속 공간] 통의동 백송은 '


서울 중부지방에 물을 쏟아붓듯이 내린 집중호우로 발생한 수해로 (...) 서울 종로구 통의동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수령 6백 년의 천연기념물 제4호 백송 나무가 17일 오후 7시 반경 뿌리째 뽑히면서 쓰러졌다. 이 백송은 남북으로 두 줄기가 갈려져 높이 16m 둘레가 가장 굵은 것이 3.6m인데 백송이 쓰러지면서 인근 주택 2채와 화원을 덮쳐 주택 담이 2~3m가량 무너지고 화원에 보관 중이던 대형화분 30여 개가 파손됐다.(동아일보 1990년 7월 18일 치 '폭우,,, 돌풍... 벼락... 한밤의 공포' 기사 중)

이 나무들이 죽어간 이유에 대해 신문기사들을 통해 찾아보면 관리 주체인 정부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을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의동 백송이 600살 '짧은 인생'을 마무리한 이유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인(死因)은 천재지변입니다. 그런데 600년간 비바람을 잘 견뎌오던 키 16m 거대한 생명체가 왜 이날 주저앉은 걸까요. 의문이 남습니다. 2003년 고사한 500살 원효로 백송의 사인은 '노쇠에 따른 뿌리 생육상태 불량'입니다. 글쎄요, '노쇠'라는 설명은 추정이나 억지에 가깝고, 뿌리 생육불량은 나타난 사실일 뿐입니다. 2004년 고사한 보은 백송 역시 뿌리 썩음이 사인입니다. 비교적 최근 고사한 보은 백송(키 13m, 몸통 둘레 1.8m)의 고사 원인에 대해 관리 책임이 있는 보은군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21bc9d2-127d-406a-a32b-84f09ab470c6?preset=orig 보은 백송의 생전 모습. 뿌리 쪽이 무거운 석축에 짓눌려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은군은 “뿌리가 썩어 잎이 떨어지는 등 생육을 멈췄던 백송을 최근 조사했더니 수액이 나오지 않는 등 완전히 말라죽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1년 정도 더 지켜본 뒤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천연기념물 해제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쪽은 “지난해부터 이상 증세를 보여 9월께 뿌리가 썩는 원인이었던 백송 밑동 주변의 석축(높이 1.5m)을 없애고 잔뿌리를 누르고 있던 흙을 걷어내는 등 조처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1793년 심어진 기록에 비춰 보면 200여 년의 제 수명을 다한 셈”이라고 말했다.(한겨레신문 2004년 8월 5일 치 '천연기념물 보은 백송 고사' 중)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보은 백송 주변에 1.5m 높이의 석축이 설치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식물이 물과 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지표면 15cm 위쪽으로 뻗어있는 잔뿌리들입니다. 잔뿌리는 인간 등 동물로 치면 코나 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나무의 가지와 잎이 뻗은 '수관(樹冠)'의 1.5~3배가량까지 이 잔뿌리들이 생명활동(먹고 마시고 숨 쉬는 일)을 합니다. 여기에 무거운 석축을 쌓았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백송을 기념하기 위해 쌓은 석축입니다. 귀한 백송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해 쌓았습니다. 하지만 나무의 기본적인 생리는 반영되지 않았던 겁니다. 무시하고 외면했던 겁니다. 결국 '기념'이라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수백 년을 별 탈없이 자라온 고목나무들은 수십 년에 걸친 압박 때문에 숨 막혀하다 결국 질식사한 겁니다. 이런 '일방적인 관심, 사실은 폭력'이 보은 백송을 죽게 한 겁니다. 위 기사 뒷부분에 '잔뿌리를 누르고 있던 흙을 걷어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말은 이미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죽은 나무를 상대로 강제 심폐소생술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200여 년 제 수명을 다한 셈'이라며 책임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지요.

통의동 백송이나 원효로 백송 역시 그 사인은 보은 백송과 같은 나무 생리에 무지한 '일방적인 관심, 사실은 폭력'입니다.

천연기념물 제4호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백송과 제6호인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백송이 최근 상태가 나빠지면서 급격히 말라죽어갈 우려가 있어 서울시가 응급 외과수술을 하기로 했다. 서울시의 진단에 따르면 수령 5백 년으로 높이가 10m인 원효로 백송의 경우 밑둥치 2m까지의 나무둘레 210cm 중 170cm가량의 나무껍질 부분이 죽어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또 껍질이 벗겨져나간 목질부도 깊이 패거나 금이 가있다. 수령 6백 년으로 나무높이가 역시 10m인 통의동 백송의 경우도 밑둥치에서 뻗어나간 7개의 가지중 4개의 가지는 잎이 말라가고 있으며 땅에서 2m 지점까지 뻗어있는 2개의 큰 밑둥치도 고사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 (...) 수술 내용은 노출된 목질부의 부패된 부분은 제거하여 살균 살충 방부 방수 처리를 하고 고사된 나무껍질 대신 수지와 가루 코르크를 사용해 인공수피를 만든다는 것. (동아일보 1986년 7월 26일 치 '천연기념물 백송 2그루 외과 수술' 중)

나무에 대해 인간이 하고 있는 '일방적인 관심, 사실은 폭력' 중에 대표적인 것이 외과수술이라는 조치입니다. 수술이라고 하면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이지만, 나무에 대해 행해지는 외과수술은 다릅니다. 고목나무가 되면 자연스럽게 속을 비워나갑니다. 나무의 속은 심재라고 하여 죽은 부위입니다. 사람의 손톱이나 머리카락과 같습니다. 고목나무가 하나같이 속이 비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무의 물관과 체관 등 형성층 즉 살아있는 부위는 껍질 쪽에 타이어 같은 모양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사람은 표면에만 피부가 있지만, 나무는 '표면 피부(수피)'과 '속 피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외과 수술을 하면 '속 피부'를 모두 제거하고 거기에 화학물질을 충전해 넣는 방식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멀쩡한 피부를 벗겨내고 인공피부를 이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유럽,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외과수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대 이후 천연기념물에 대해선 외과수술을 하지 않고, 외과수술된 부분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타깝지만 현재도 시도기념물 노거수나 보호수 등 다른 고목나무들에 대해서는 외과수술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조경업체나 나무의사들에게 외과수술을 큰 돈벌이라는 사실입니다.

1986년 이미 통의동 백송과 원효로 백송의 생육이 크게 악화됐던 이유는 뭘까요. 아래 쓰러졌을 당시 통의동 백송의 사진(출처 : 경향신문)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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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백송과 마찬가지로 높은 석축과 포장된 주변 환경이 보입니다. 숨을 못 쉬게 밥을 못 먹게 막아 놓고, 피부 이식이라는 엉뚱한 처방까지 해서 죽음을 재촉한 셈입니다.

백송이 성장하면 사람들이 너무 사랑을 한 나머지 더욱 약하게 되어 갔었다. 나무는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하는 것인데 백송이 있으면 모두들 모여 혀를 차고 감탄하고 만져보고 해서 백송은 기운을 잃어만 간 것이다.

'일방적인 관심, 사실은 폭력'에 대한 우려가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새로운 문제제기인 것은 아닙니다. 1976년 3월 23일 치 조선일보 나무백과 ①백송 편에서 임경빈 서울대 농대 교수가 쓴 구절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경고를 무시하고 권력을 부리고 돈을 써서 자신과 욕망과 욕심을 백송 고목나무라는 대상에 꾹꾹 집어넣으려는, 결국 인간의 문제입니다.


KakaoTalk_20250828_125141699.jpg 2025년 7월1일 청와대 상춘관 앞에 전두환이 심은 백송. 김트리

한 가지 이야기를 보태자면, 1983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식목일을 맞아 상춘재 앞에 백송을 심은 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두환은 백송을 좋아해 다른 곳에도 심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살아남은 것은 이 나무 하나입니다. 심을 당시 나무의 나이는 38살. 2025년에는 80살이 됐습니다. 백송은 보통 50살만 돼도 고고하게 하얀 껍질을 내는데,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어떤 환경의 변화 때문에 생긴 일이겠지만 ‘전두환 백송’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사실 깨끗함과 고결함을 상징하는 백송을, 광주 학살을 비롯해 무수한 악행을 저지른 전두환이 좋아했다는 것 자체가 비웃음의 소재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부리고 돈을 쓰고 백송을 통해 자신의 악행을 세탁하려 해도, 결과는 뻔합니다.

*천연기념물 제95호로 2018년 외과수술 부위를 제거한 '도계 긴잎느티나무'가 대표적

**천연기념물은 국가유산청 소관이고 시도기념물과 보호수는 산림청 소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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