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생존에 필요한 균형

단풍나무(3) 저장과 균형, 그리고 뜻밖의 부작용

by 김트리

*단풍나무(2)에서 이어짐


잎이 마지막까지 양분을 돌려보낸 뒤에도 단풍나무의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잎에서 회수된 질소와 인, 당분은 줄기를 따라 내려가 뿌리와 줄기 속에 저장됩니다. 가을의 진짜 작업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이루어집니다. 단풍나무에게 줄기와 뿌리는 다음 계절을 위한 저장소에 가깝습니다. 나무는 겨울을 넘기기 위해 양분을 전분의 형태로 바꾸어 차곡차곡 쌓아 두고, 이 과정에서 가능한 한 적게 소모하고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선택을 반복합니다. 화려함도 과시도 없이, 다만 생존에 필요한 균형만을 지켜 나갑니다.

이 내부의 흐름이 이른 봄, 우리 눈앞에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을 수액이라고 부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단풍나무의 몸속에서는 얼었다 녹는 일이 반복되고, 밤에는 수분이 얼고 낮에는 다시 풀리면서 줄기 안에는 압력이 생깁니다. 이 압력은 저장된 양분을 다시 순환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생리적 결과입니다. 수액은 본래 마시기 위해 존재한 물이 아니라, 나무가 다음 계절로 건너가기 위해 몸속에서 움직이던 과정의 일부입니다. 단풍나무의 진화는 이 물이 외부에서 채취될 것을 전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생리적 틈을 발견했고, 흐름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해 마실 수 있는 물로 이름 붙였습니다. 수액 채취는 단풍나무의 생존 전략이 만들어낸 뜻밖의 부작용을 인간의 문화가 이용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의 채취는 나무를 즉각적으로 해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행위가 나무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수액은 나무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서 순환시키던 물이며, 그 흐름을 끊거나 빼내는 일은 언제나 일정한 부담을 남깁니다. 인간에게는 계절의 선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그것은 본래 예정되지 않았던 개입입니다.

한국의 단풍 수액은 대체로 크게 달지 않습니다. 이는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향의 진화가 남긴 결과입니다. 북미의 슈가메이플은 혹독한 겨울과 잦은 동결과 해동이라는 조건 속에서 많은 전분을 자당으로 전환해 두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빠르게 시작되는 봄이 생존에 유리했던 환경에서, 그 선택은 합리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액의 당도는 높아졌지만, 그것이 더 적극적이거나 더 욕망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단풍나무들 역시 자기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극단적인 동결과 해동이 반복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나무들은 당분을 대량으로 풀어놓기보다는 줄기와 뿌리에 조용히 저장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수액은 달콤하기보다는 담담한 성질을 띠게 되었습니다. 달고 담담함은 태도의 차이가 아니라, 각기 다른 환경에 대한 동등하게 절제된 대응의 결과입니다.

이 담담함은 특정 지역의 단풍나무만의 성격이 아니라, 단풍나무라는 존재 전반의 삶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단풍나무는 고통을 최소화하려 하지도, 쾌락을 극대화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각자가 놓인 조건 속에서 필요한 만큼의 부담을 감수하고, 그 대가로 다음 계절을 확보하는 균형을 택해 왔을 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옮기자면 단풍나무의 삶은 고통과 쾌락을 서로 상쇄시키며 극단을 피하는 삶에 가깝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소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적만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견디고, 필요한 만큼만 남겨 두는 선택의 연속이 이 나무의 생애를 이루어 왔습니다. 달지 않은 물은 그 선택이 남긴 흔적입니다.

단풍나무는 우리를 위해 살지 않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붉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 목적대로 살아왔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 결과를 두고 달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혹은 고단하다고 부르는 순간, 그 말들은 이미 나무의 삶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해석이 됩니다. 이 나무의 생리는 언제나 그 해석보다 먼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단풍나무(4)로 이어짐


제1부 단풍나무 씨앗은 떨어지지 않는다

제2부 단풍은 끝이 아니라 연결

제3부 다만 생존에 필요한 균형

제4부 같은 단풍, 다른 삶

제5부 단풍을 읽다

제6부 단풍나무는 여전히 자기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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