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1) 영산홍, 도시가 선택한 붉은 표준
봄이면 도시의 가장자리가 먼저 붉어집니다.
아파트 단지의 직선, 관공서 담장의 모서리, 도로 중앙분리대의 낮은 경계가 동시에 불붙습니다. 붉은 꽃은 산에서 내려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콘크리트 위에 가지런히 심겨 있습니다.
이 꽃의 이름은 영산홍(映山紅). ‘산을 비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보는 영산홍은 산의 식물이 아닙니다. 울타리와 화단, 경계의 선 위에 있습니다. 식물학적으로는 영산홍(Rhododendron indicum, 로도덴드론 인디쿰). 진달래과 철쭉속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입니다. 일본 남부 규슈와 혼슈 남서부의 해안과 산록이 고향입니다. 바람이 거칠고 흙은 산성을 띠며 물은 잘 빠집니다. 암반이 드러난 사면과 숲 가장자리에서 낮게 퍼지며 꽃을 피웁니다. 같은 철쭉속에는 한반도의 봄을 대표하는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 로도덴드론 무크로눌라툼)와 산철쭉(Rhododendron yedoense, 로도덴드론 예도엔세)가 있습니다. 이들은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입니다. 겨울이면 가지를 드러내고, 봄이 오면 잎보다 먼저 꽃을 터뜨립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산의 시간표를 따릅니다. 그러나 영산홍은 잎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사철 녹색을 유지한 채 꽃을 피웁니다. 같은 속이지만 계절을 대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진달래가 봄을 폭발시키는 존재라면 영산홍은 계절을 완화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영산홍’이라는 말은 애초 특정 종을 가리키는 식물학적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한자 문화권에서 봄철 산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류 풍경을 가리키던 시적 표현이었습니다. 풍경을 가리키던 이름이 근대 식물분류학과 만나면서 일본 남부 자생종 영산홍(Rhododendron indicum)에 대응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계통의 품종이 조경용으로 대량 도입되면서 ‘영산홍’이라는 이름이 곧 이 상록 관목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산을 가리키던 말이 특정 품종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영산홍은 산에서 곧장 내려온 식물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철쭉류가 츠츠지(ツツジ)라는 이름으로 정원 문화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규슈 구루메 지역에서는 색이 선명하고 키가 낮으며 꽃이 조밀한 개체가 반복적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꽃빛과 가지 모양의 차이가 컸지만 정원에서는 균일함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가지 일부를 잘라 심는 방식, 즉 삽목(揷木, vegetative cutting)을 통해 같은 형질이 반복 복제되었습니다. 개화 시기와 수형이 안정된 품종이 고정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이후 철쭉류는 상업적 원예 품목이 됩니다. 특히 사쓰키 철쭉(皐月ツツジ)은 분재 문화와 결합하면서 전정에 강한 형질이 강조되었습니다. 잘라도 다시 자라는 생장력, 낮게 퍼지는 수형, 촘촘한 꽃. 산의 사면에서 바람을 견디던 형질은 점차 정원의 가위에 적응하는 형질로 재편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미 다듬어진 식물이 한반도로 건너왔습니다.
영산홍은 곧 도시의 표준 관목이 됩니다. 1970~90년대 도시 팽창기, 공공 녹화 정책은 생태보다 면적 확대와 시각 효과를 우선했습니다. 도시가 필요로 한 식물은 빠르게 심을 수 있고, 균일하게 유지되며, 관리가 예측 가능하고, 사계절 녹색을 유지하며, 가지치기에 강한 식물이었습니다. 영산홍은 이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산에서는 씨앗으로 퍼지던 식물이 도시에서는 가지로 복제됩니다. 자연이 고르던 자리에 사람이 고르기 시작합니다. 낙엽은 치워야 하고 자연스러운 수형은 흐트러져 보일 수 있으며 개화 시기의 차이는 색의 균일함을 방해합니다. 도시는 변이를 감당하기보다 관리 가능한 색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영산홍은 군락이 아니라 경계가 됩니다. 산을 물들이던 붉은 꽃은 도시에서 직선의 울타리로 배열됩니다. 봄이면 관공서 담장과 아파트 단지가 동시에 붉어집니다. 꽃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가지는 네모나게 다듬어집니다. 자연의 리듬은 관리의 리듬으로 바뀝니다.
이 이동의 순간에 질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종종 ‘외래종 침입’이라는 말로 단순화됩니다. 국경을 넘긴 것도, 심은 것도, 흙을 바꾼 것도 식물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영산홍은 스스로 도시를 점령한 존재가 아닙니다. 도시의 선택에 의해 배치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영산홍은 어떻게 표준이 되었는가. 토착 철쭉류를 밀어낸 것은 생태적 경쟁이라기보다 설계의 방향이었습니다. 도시가 무엇을 자연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한 번 표준이 되면 공급 체계가 따라붙습니다. 묘목장은 그 기준에 맞춰 증식하고 시방서와 발주 관행은 같은 식재를 반복합니다. 도시의 녹지는 점차 생태계라기보다 반복 가능한 공정이 됩니다. 도시는 지역의 숲을 닮기보다 다른 도시의 화단을 닮기 시작합니다.
철쭉속 식물은 산성 토양을 좋아합니다. 뿌리는 균근(菌根, mycorrhiza)과 깊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도시의 흙은 다져지고 뒤섞인 흙입니다. 건설 잔재와 포장재가 섞여 있습니다. 자연 상태라면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산홍은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그 생존은 적응이라기보다 유지에 가깝습니다. 흙을 갈고 물을 주고 비료를 넣고 가지치기를 합니다. 산에서는 바람과 토양과 곤충이 선택자였습니다. 도시에서는 전지가위와 예산과 조경 설계가 선택자가 됩니다. 산의 선택은 느리고 분산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선택은 빠르고 집중되어 있습니다. 산의 변이는 허용됩니다. 도시의 변이는 민원이 됩니다. 산에서의 실패는 다음 세대의 조건이 되지만 도시에서의 실패는 하자 보수가 됩니다. 그 차이가 영산홍의 형태를 바꾸고 영산홍의 시간을 바꿉니다. 전정은 형태를 바꾸고 삽목은 유전 구조를 단순화합니다. 붉은 울타리는 생물다양성을 평면으로 만듭니다. 꽃은 많아지지만 층위는 줄어들고 색은 선명해지지만 관계망은 가늘어집니다. 도시의 녹지는 풍성해 보이지만 그 풍성함은 종종 균일함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끝내 묻게 되는 질문은 도덕적 판결이 아니라 설계의 책임입니다. 왜 진달래가 아니라 영산홍이었는가. 왜 이 도시는 낙엽의 계절성을 감당하지 못했는가. 왜 관리의 효율이 자연의 서사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영산홍은 죄가 없습니다. 죄를 묻는다면 그것은 식물이 아니라 선택의 방식입니다. 산을 비추던 꽃은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동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부르고 무엇을 비용이라 여기며 무엇을 정리해야 한다고 믿는가. 자연을 바라보는 규칙이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규칙을 어느새 자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용어 정리
■ 철쭉속(杜鵑花屬, Rhododendron)
진달래과에 속하는 큰 식물 집단입니다. 전 세계에 약 1,000종 이상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진달래, 산철쭉, 일본 원산 영산홍도 모두 이 속에 속합니다. 같은 속이지만 상록·낙엽 여부, 개화 시기, 생태적 전략은 서로 다릅니다.
■ 상록성 관목(常綠性 灌木)
사계절 잎을 유지하는 성질을 상록성(常綠性)이라고 합니다.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며 키가 낮게 자라는 나무를 관목(灌木)이라고 합니다. 영산홍은 겨울에도 잎을 유지하는 상록성 관목입니다. 반면 진달래와 산철쭉은 잎을 떨어뜨리는 낙엽성 나무입니다.
■ 삽목(揷木, vegetative cutting)
가지 일부를 잘라 흙에 꽂아 뿌리를 내리게 하는 번식 방법입니다. 씨앗 번식과 달리 원래 개체와 동일한 유전형을 지닌 복제 개체가 만들어집니다. 도시 조경에서는 균일한 형질을 유지하기 위해 자주 사용됩니다.
■ 클론 집단(複製 集團, clonal population)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이 모여 있는 집단을 말합니다. 삽목 같은 무성 번식을 반복하면 형성됩니다. 외형은 안정적이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 전정(剪定, pruning)
가지치기를 뜻합니다. 수형을 유지하거나 밀도를 조절하기 위해 가지를 자르는 관리 기술입니다. 영산홍은 전정에 강한 식물로, 가지를 잘라도 다시 자라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도시에서 울타리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균근(菌根, mycorrhiza)
식물의 뿌리와 토양 균류가 공생하는 구조입니다. 진달래과 식물은 특히 산성 토양에서 균근과의 공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균류는 영양분 흡수를 돕고, 식물은 광합성 산물을 제공합니다.
■ 산성 토양(酸性 土壤, acidic soil)
pH가 낮은 흙을 말합니다. 철쭉속 식물은 일반적으로 산성 토양에서 더 잘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시 토양은 다짐, 건설 잔재, 포장재 등의 영향으로 원래의 산성 환경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도시 생물 동질화(都市 生物 同質化, Urban Biotic Homogenization)
서로 다른 도시들이 점점 비슷한 식물종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역 고유 식생보다 관리가 쉽고 유통이 용이한 종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도시는 점차 ‘지역의 숲’이 아니라 ‘다른 도시의 화단’을 닮아가게 됩니다.
■ 표준 관목(標準 灌木)
행정·설계·묘목 유통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조경 수종을 말합니다. 자연 발생적 결과라기보다 제도와 관리 체계가 만들어낸 선택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