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눈

미다스의 손(2)가치의 단일화와 숲의 존재론

by 김트리
https://www.penn.museum/sites/expedition/the-myth-of-midas-golden-touch/


*미다스의 손(1) 저 굽이굽이 펼쳐진 민둥산을 보라에서 이어짐




숲을 둘러싼 거의 모든 논쟁은 사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리 가치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나중에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정치경제학에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사용가치(使用價値, use value)와 교환가치(交換價値, exchange value)를 구분했습니다. 사용가치는 사물이 삶 속에서 지니는 구체적 기능과 의미이고, 교환가치는 시장에서 가격으로 환원된 추상적 가치입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에서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다는 점입니다. 사물은 더 이상 “무엇에 쓰이는가”가 아니라 “얼마인가”로 판단되기 쉽습니다.

숲도 예외가 아닙니다.

숲은 본래 사용가치의 집합입니다. 토양을 붙들고, 물을 저장하고, 미기후를 조절하며, 수많은 종의 서식처가 됩니다. 이 기능들은 화폐 단위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책과 예산의 세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대개 환산 가능한 가치입니다. 목재 생산액, 조림 면적, 사업 실적, 탄소 흡수량. 수치로 보고될 수 있는 것만이 행정의 언어가 됩니다.

여기서 이미 하나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숲은 존재로서가 아니라 기능의 총합으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그 기능은 다시 수치로 환원됩니다. 이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황금의 눈’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척도로 바라보는 눈입니다.

미다스의 비극은 단순히 탐욕의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환원의 비극입니다.
사물의 다층적 의미를 하나의 가치로 압축하는 능력, 혹은 강박입니다. 숲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종종 그 구조를 닮아 있습니다.


언어와 권력 ― 프레이밍의 정치학

‘복구’, ‘조림’, ‘숲 가꾸기’라는 말은 단지 설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프레임(frame)입니다.

프레이밍 이론(framing theory)에 따르면, 특정한 언어는 현실을 해석하는 방향을 미리 설정합니다.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 무엇을 해결이라고 부를 것인지, 무엇을 정상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그 말이 먼저 정해 놓습니다.

예를 들어 ‘복구’라는 단어는 교란을 ‘이탈’로 규정합니다. 원래의 상태에서 벗어났으니 되돌려야 한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그러나 생태학에서 교란(攪亂, disturbance)은 비정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태계 동학(動學, dynamics)의 일부입니다. C. S. 홀링(C. S. Holling)의 회복력(回復力, resilience) 이론은 생태계가 단 하나의 균형점으로 되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라, 여러 안정 상태를 오가며 재조직되는 복합 체계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란 이후의 재편은 ‘오류 수정’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의 전환’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란을 쉽게 ‘결함’으로 해석합니다.
언어가 그렇게 프레이밍하기 때문입니다.

‘조림’은 더 분명합니다. 나무를 심는 행위는 선한 이미지로 포장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림은 언제나 선택과 배제를 동반합니다. 특정 수종을 목표 수종으로 정하는 순간, 다른 종은 경쟁자나 잡초로 재분류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리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위계의 설정입니다. 어떤 생명은 남기고, 어떤 생명은 제거하는 일입니다.

언어는 권력입니다.
숲을 무엇이라 부르느냐에 따라
우리는 무엇을 볼지,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합니다.


복잡성의 존재론 ― 숲은 설계도가 아니다

복잡계 과학과 생태학은 공통된 통찰을 줍니다.
시스템은 외부의 완성된 설계 없이도 내부 상호작용만으로 구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기조직화(自己組織化, self-organization)라고 부릅니다.

숲은 계획된 도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상호작용이 겹쳐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미생물과 균류의 네트워크, 종 사이의 경쟁과 공생, 지형과 기후의 미세한 차이, 교란 이후의 불균질한 회복이 겹쳐 하나의 패턴을 만듭니다. 그 패턴은 완전히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이 회복력의 근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회복력 이론은 다양성(多樣性, diversity)과 중첩성(重疊性, redundancy)이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인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종이 존재할 때, 하나가 사라져도 전체 기능은 유지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나 단일수종 조림은 이런 기능 중첩을 줄입니다. 구조는 단순해지고, 효율은 높아질 수 있지만, 취약성은 커집니다.

즉, 단순화는 통제력을 주는 대신
회복력을 앗아갑니다.


2차 교란 ― 개입의 역설

산불은 1차 교란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대규모 벌채, 곧 살베지 로깅(salvage logging), 작업로 조성, 중장비 투입은 2차 교란(二次 攪亂, secondary disturbance)이 됩니다.

여러 국제 연구는 산불 이후의 기계적 벌채가 토양 압착(土壤 壓搾, compaction)을 증가시키고, 침식(侵蝕, erosion)과 표면 유출(表面 流出, runoff)을 높이며, 고사목이 제공하던 서식처 기능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토양은 단순한 흙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생물, 균근 네트워크, 종자은행이 얽혀 있는 살아 있는 구조입니다. 산불의 열은 주로 지표에 집중되고, 일정 깊이 아래에서는 온도 상승이 제한된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토양 속에는 여전히 회복의 잠재력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비의 하중은 토양의 공극을 줄이고, 물의 침투를 방해하며, 침식을 촉진합니다. 회복을 돕기 위한 개입이 오히려 회복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역설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속도와 효율을 우선하는 가치 체계의 결과입니다.


시간의 철학 ― 느림과 성과의 충돌

자본주의적 시간은 단기 성과를 요구합니다.
예산은 연 단위로 집행되고, 사업은 분기별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생태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릅니다.

숲의 회복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됩니다. 초기 천이 단계의 초본과 관목은 몇 해 만에 사라질 수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토양을 보호하고, 미세기후를 만들고, 다음 단계 식생이 자리 잡을 조건을 준비합니다. 그 위에 교목이 자라고 숲의 층위가 다시 만들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연갱신(自然更新, natural regeneration)은 이 시간을 존중하는 접근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개입을 늦추는 선택입니다. 필요한 곳에만 제한적으로 돕는 보조적 자연갱신(補助的 自然更新, assisted natural regeneration) 역시 회복 경로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습니다. 숲이 스스로 조직될 가능성을 남겨 둡니다.

그러나 성과 중심의 관리 체계는 이 느림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숲은 빠르게 ‘정리’되고, ‘식재’되고, ‘관리’됩니다.
하지만 속도는 회복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존재론적 전환 ― 황금에서 관계로

미다스의 손은 사물을 황금으로 바꿉니다.
황금은 동일합니다. 나무도, 빵도, 사랑도 같은 물질이 됩니다. 차이는 사라집니다.

숲을 교환가치의 눈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은 목재 생산량, 조림 실적, 탄소 흡수량 같은 단일 지표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숲은 원래 관계망입니다. 종 간 상호작용, 토양과 수분의 흐름, 교란과 재생의 순환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정책 비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론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숲을 무엇으로 존재하게 할 것인가. 자원인가, 관계인가.

황금의 눈을 거두지 않는 한, 숲은 계속 단순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화된 숲은 반짝일 수는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질문을 남기며

우리는 산불 이후 무엇을 가장 두려워합니까. 비어 있음입니까, 아니면 통제 불가능함입니까.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숲 그 자체가 아니라, 숲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력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태계는 통제를 전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합니다.

황금의 눈을 벗고 흙의 질감과 관계의 복잡성을 보는 눈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숲을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숲과 함께 존재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어 정리

■ 사용가치(使用價値, use value)
사물이 삶 속에서 수행하는 구체적 기능과 의미를 말합니다.
숲의 경우에는 토양 보전, 수원 함양, 미기후 조절, 서식처 제공, 경관, 정신적 가치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 교환가치(交換價値, exchange value)
시장에서 가격으로 환원된 추상적 가치를 말합니다.
숲의 경우에는 목재 생산액, 조림 실적, 탄소 배출권 수치처럼 계산 가능한 지표가 이에 해당합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숲은 존재가 아니라 ‘계산 가능한 기능의 총합’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 프레이밍 이론(framing theory)
특정한 언어와 표현 방식이 현실을 해석하는 방향을 미리 설정한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복구’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를, ‘조림’은 개선 행위라는 윤리적 이미지를, ‘숲 가꾸기’는 정돈이 필요하다는 암묵적 판단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즉, 언어는 중립적 설명이 아니라 정책과 행동의 방향을 규정하는 인식의 틀이 됩니다.

■ 교란(攪亂, disturbance)
산불, 폭풍, 병해충처럼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는 사건을 말합니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비정상이 아니라 생태계 동학의 일부로 이해합니다.

■ 회복력(回復力, resilience)
생태계가 교란 이후에도 기능과 구조를 유지하거나, 혹은 다른 안정 상태로 재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C. S. 홀링의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생태계는 하나의 균형점으로만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라 여러 안정 상태를 오갈 수 있는 복합 체계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 자연갱신(自然更新, natural regeneration)
인공 식재 없이 맹아, 종자은행, 주변 숲의 종자 공급 등을 통해 숲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 보조적 자연갱신(補助的 自然更新, assisted natural regeneration)
자연 회복을 기본으로 두되, 침식 위험 구간이나 외래종 확산 지역처럼 필요한 곳에만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냥 둔다’는 뜻이 아니라 회복 경로를 신뢰하는 적극적 선택에 가깝습니다.

■ 자기조직화(自己組織化, self-organization)
외부의 완성된 설계 없이도 시스템 내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질서와 구조가 형성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 창발(創發, emergence)
개별 요소의 단순한 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패턴이나 성질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숲은 설계도가 아니라 미생물, 식물, 기후, 지형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낸 창발적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기능 중첩(機能 重疊, functional redundancy)
동일하거나 유사한 생태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종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부 종이 사라져도 시스템 전체의 기능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단일수종 조림은 기능 중첩을 줄여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2차 교란(二次 攪亂, secondary disturbance)
1차 교란, 예를 들어 산불 이후 인간의 활동에 의해 추가로 발생하는 교란을 말합니다.

■ 토양 압착(土壤 壓搾, compaction)
중장비의 하중 등으로 토양의 공극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물의 침투는 감소하고 표면 유출은 증가하며, 침식이 촉진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복구 공정이 오히려 회복 기반을 약화시키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생태계의 시간(生態系의 時間, ecological time)
천이, 토양 형성, 종 간 관계의 형성처럼 수십 년 이상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 중심의 시간을 말합니다.

■ 행정의 시간(行政의 時間, administrative time)
예산 연도, 사업 평가, 단기 성과처럼 행정과 제도가 요구하는 시간 단위를 말합니다.
숲의 회복은 생태계의 시간에 속하지만, 정책은 종종 행정의 시간에 묶여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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