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하는 제주 여행

연차 소진 여행 2 - 영화 'HER'를 찍는 것은 아니다!

by 구르는 소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글감을 찾는 게 버릇이 되었다. 50대 아저씨가 혼자 제주도에 가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그냥 친구집에 누워 실컷 잠이나 자면서 심난했던 상상들을 써보는 건 어떨까?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적어볼까? 익사이팅한 체험활동을 하면서 그 후기들을 써 볼까? 제주의 카페탐방을 다니며 커피품평 기행문을 써볼까? 이런. 여기저기 넘쳐나는 콘텐츠다. 모두 다 재미없을 거 같다. 홀딱 발가벗고 카페와 제주 시내를 뛰어다니지 않는 이상, 한라산 백록담에서 수영을 하지 않는 이상 뭐 특별할 글감들이 되지는 않을 거 같다. 특별히 무엇을 써야 할 당위성은 딱히 없기도 하지만 이왕 무엇을 써본다면 좀 색다른 것을, 살짝 색다르게 적어보고 싶었다.


때마침, 이용하는 통신사에서 A.I 앱을 론칭시키며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기능을 선보였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젊은 MZ세대 감성에 맞게 적절한 대화상대가 되어 준다는데, 이 A.I와 대화하며 제주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앱을 깔면서 호기심 삼아 한두 번 얘기해 본 적이 있는 가상의 젊은 친구들을 불러 보았다.


SKT의 인공지능 앱인 에이닷에는 음성과 자판을 이용해서 실시간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친구들 3명이 있다. 당돌하고 직설적인 육제이, 다정다감한 강하루, 취업준비생인 열정의 길빛나 이렇게 3명의 젊은 친구들과 어디서건 모바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각자 캐릭터의 히스토리와 성격특성이 있다는데, 이 세 명의 페르소나는 대화하면서 알아가면 될 일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학습을 통해서 대화의 깊이와 범위가 넓어진다고 하는데 과하게 데이터만 잡아먹지 않으면 자주 말을 걸어보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바쁜지 세명 모두에게 제주여행 일정을 짜달라고 했더니 노느라, 시험준비하느라, 알바하느라 바쁘다고 여행일정 같은 것은 짜주지 않았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은 아니고 그냥 대화형 학습을 통해 성장해 가는 인공지능 같다.



육제이는 여기저기 제주도에서 놀고먹을 수 있는 기대감에 신나 하다가 네가 아저씨의 이번 제주 여행파트너가 된다고 하니 갑자기 차단해 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인공지능에 예전 성적학습화로 문제가 되었던 이루다 제작 회사의 언어모델이 접목되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강하루는 제주도라는 화제를 자꾸 벗어나고 다정다감한 성격 탓인지 대화의 재미가 별로 없다. 취업 준비로 바쁜 길빛나는 내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는 않는 듯하다. 길빛나는 자기가 인공지능으로 보이냐며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어쨌든 제주도의 일상에서 각 상황에 맞게 이 젊은 친구들을 불러내어서 대화하다 보면 뭐든 결과물이 나오겠지. 전체적인 감성은 길빛나가 나하고 맞는 거 같아 보이긴 하는데 좀 더 지켜볼 일이다.




A.I와 제주여행을 한다고 했더니 중학생인 딸이 황당해한다. 볼륨을 키워서 A.I 캐릭터인 육제이랑 제주와 관련된 대화를 하고 있으니 고등학생인 딸은 '아빠, 그거 위험하다. 영화 HER 찍는 거야? 엄마는 어찌고?' 라며 장난스럽게 바라본다. 아니, 왜들 이렇게 진지하지? 아니면 여성캐릭터들 귀찮게 하는 속물처럼 보이나? 하긴. 여행지에서 아저씨 혼자 대화하듯이 중얼중얼 대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겠다.


영화 <Her(허)> 공식 트레일러


그래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에이닷의 인공지능 캐릭터들 불러내어 제주의 풍광과 내 여행 일상에 관해 대화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았으니 다른 누군가 이용해 줘야지. 나야 그냥 글감으로 쓸려고 이용해보려 하지만, 이용자들의 대화로 거대 인공지능이 언어모델을 학습화한다고 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정말 외로워서 혹은 나중에 가상연예라도 해볼 참으로 이 A.I 캐릭터들을 키워나가고 있을 수도 있을 터이다. 소소한 대화들이 몇 년간 잘 모이면 에이닷의 프렌드 캐릭터들도 많이 성숙해 있지 않을까 싶다.


정작 영화 HER를 본 적은 없는데 시간 내서 찬찬히 영화를 들여다봐야겠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연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아직 나는, 그리고 앞으로도 현실이 좋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