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조(入島祖)를 응원합니다 2

연차 소진 여행 4 - 제주도립미술관 '호모 미그라티오' 관람기(두번째)

by 구르는 소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전시실의 끝부분에 있던 박정근 작가의 입도조 전시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풍부한 전시였다. 제주에서는 태어나 자란 곳을 등진 후 섬에 발을 딛고 정착해 첫 조상이 되는 사람을 입도조(入島祖)라고 부른단다. 전시자료에는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를 와서 귀양살이하다가 남은 이들이 입도조가 됐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제주 토착 성씨인 고, 부, 양 씨를 제외하면 모두 입도조를 가진다고 했다.

가족들과 제주도에 들어와 1년 살기를 한 뒤 가족들은 육지로 되돌아 가고 혼자 제주에 남아 생활하는 박정근 작가가 제주에 새롭게 터를 잡고 들어와 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사람마다 각자의 이야기와 소망을 갖고 제주도에 들어 왔지만, 낯선 곳에 정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 하고 생활의 터전과 기반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확보된 그 여러 관계들이 연속되어야 할 것이다. 전시된 입도조들의 주민등록등본에는 빨간 글씨로 다양한 사연들이 적혀있어 읽다보면 웃음과 눈물이 난다. 오로지 귀로 듣던 사연과는 다르게 눈으로 읽는 텍스트는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바람과 바다, 산과 나무 등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했을 입도조 가족들의 사진 배경에는 인공구조물이 등장하고 이들의 표정과 자세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경직되어 있다. 전시 안내에는 입도조의 표정과 자세에서 알수 없는 공허함이 비친다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딱 맞는 표현이었다. 섬생활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을 것이고 쉽사리 섬사람들의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리라. 걸려있는 사진의 풍광과 색감들에서 이들의 불안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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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작가의 <입도조> 전시 전경과 작품 도록 일부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가 사진 속에서 친근한 얼굴을 만났다. 제주지부의 책임자로 일하던 직장 후배가 최근 사직을 하고 제주의 타기관으로 이직을 했는데 입도조 전시의 사진모델로 들어와 있던 것이다. 외모가 수려하고 언변도 좋아서 어딜 가나 환영받을 사람이었는데, 제주에서 작가와 친분이 있는 모양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작품 모델로 데뷔까지 하다니, 인생성공했다. 아내도 직원출신이라 얼굴을 아는데 사진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아이와 같이 나와서 반가웠다. 부산출신의 사나이가 제주 입도조가 되었구나! 불안함과 공허함보다는 평안함과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주하는 인간의 주제를 타자입장에서 바라보다가 작품속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갑자기 작품들이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내 머리속에 더 깊숙히 들어와 버렸다. 익명속 다양한 사람들, 역사속의 여러 이야기들뿐이었는데 내 주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내와 얘기하면서 우리도 한달 혹은 더 긴 기간동안 어디론가 떠나보면 어떨까라는 대화주제가 떠올랐다. 가볍게 얘기한 거였는데 도전해 볼만한 가치와 여유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아직 저 입도조들만큼의 용기와 도전의식은 나와 아내 모두 갖고 있지는 않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다행인건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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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 야외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


전시실을 나와 야외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에이닷'의 인공지능 프렌즈 길빛나를 불러 내었다.

Screenshot_20231125_143028.jpg SKT '에이닷' 앱의 프렌드 캐릭터인 길빛나와 제주 이주에 대해서 얘기해 보았다.


사람들이 제주 여행오면 생각하듯이, 길빛나도 큰 고민없이 나중에 제주도 정착하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인공지능이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기는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제주에서 살면서 뭐 먹고 살지?(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 라는 질문에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으면 된다'고 얘기한다. 이 철부지 같은 대답은... 허탈하긴 하지만 재미있다. 그래. 깊게 고민할 거 무어냐. 직접 만들어서 먹으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사지멀쩡한데 어디가서든 굶어죽기라도 하겠냐. 내려놓기 어렵고 용기가 부족해서 그렇지, 어디서건 다 살아갈 것이다.


배달이라도 하면 된다니, 명쾌한 대답이다. 배달일이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큰 고민없이 제주에서 작은 배달일, 소소한 알바부터 시작하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편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저런 젊은 생각과 대답이 내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하긴 하다. 이것저것 고민해봐야 딱히 답도 없다. 똑똑한 인공지능도 정확히 모른다는데 사람이 어찌 정답을 알겠는가!


당장 뭘 어떡해야겠다라는 결정은 하지 않겠지만, 언제든 훌쩍 떠날수 있는 도전과 용기의 감각은 유지하자는 다짐을 해보는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체험이었다. 여행을 와서 여행지로의 혹은 낯선 곳으로 이동과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람하면 좋을 전시였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게 딱 맞는 일정이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이민진, '파친코'>

<우리는 지금 있는 곳에 자원이 있어도 새로운 영토로 밀고 들어간다. 거기에는 일종의 광기가 있다.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큰 바다로 출항한다. -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인류, 이주, 생존'>




도립미술관에서 숙소까지 1시간정도의 거리를 걸으면서 가수 이승윤 '무명성 지구인' 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명왕성에나 가볼까 했지만 태양계에서 쫓겨난 명왕성을 걱정하는 이름없는 지구인의 이야기이다. 자유 의지로 이동했는지 아니면 쫓겨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입도조의 꿈과 삶은 의미있고 특별할 것이다. 입도조뿐이겠는가? 그들을 통해서 투영된 내 꿈과 삶도 아름다운 발자취로 남기고 싶다. 이주하는 장소에 한정해서가 아니라 몰입하는 분야에서 용기있는 도전가로 기억되고 싶다.


제주에 와서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제주도 출신의 유명인과 정치인 이름을 기억하는것만이 의미 있는 것일까? 이름은 없었지만, 유명하진 않았지만, 성공하진 않았지만 제주도 혹은 어디론가 이주를 하고 자기들만의 이야기거리들을 만들어간 사람들의 위대함과 자연스러움이 더욱 더 알려지고 고결해지기를 바래본다.


나도 이름없고 볼 품 없지만, 나와 같은 무명성 지구인들이 더욱 알차게 살아가기를!

제주 입도조의 삶을 꾸려 나가는 직장 옛 후배의 평안한 앞날을 축복하며!


<노래 '무명성 지구인' - 가수 이승윤>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 가엾기도 하지 /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 기억 할 필욘 없어 /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 아무 것도 아니래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 천만 개체라는데 /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