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소진 여행 12 - 우도의 자연과 개발 풍경 단상 (첫번째)
나는 '환경개발=자연파괴'라는 공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후환경과 자연보존, 환경보호에 관심도 많고 이를 후대에 잘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에 인위적인 손을 대는 것이 마냥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다. 적당한 (적당한의 개념이 좀 헷갈리긴 하지만) 환경개발과 관리, 조정은 인류생활의 개선과 지구환경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환경개발이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하던 중생대 백악기 말 공룡시대 때도 운석충돌로 지구생명체가 많이 죽었다고 하지 않던가! 지구가 망할 거면 환경개발을 하지 않아도 결국 망한다는 얘기다. 인간의 욕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개발되는 것들을 반대하고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뭐든 극단적으로 흐르면 위험하고 극단의 한쪽 면으로만 결정되는 것을 반대해야 하는 법이다. 대다수의 교통편의를 위해 고속도로 터널을 뚫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산속의 도롱뇽을 위해 시위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게 건강한 사회 아니겠는가!
거기 우도 주민이 두 개 파로 갈렸지.
저 고급리조트가 우리 생존의 미래라고 얘기하는 그룹과
저 고급리조트가 우도의 쇠락을 가져올 미래라고 얘기하는 다른 그룹으로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마을 사람들이 둘로 나뉘었어.
우도에서 1박을 하고 제주시내로 돌아와 숙소를 제공해 준 제주 친구를 다시 만나 들은 얘기이다. 땅콩아이스크림과 검멀레 해변으로 유명한 제주 우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주일간의 나 혼자 제주여행은 주말에 아내가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끝이 났다. 혼자 여행도 재미있지만 두 명이 하는 여행도 재미있다. 결혼 21년 차 부부의 단둘이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주변에서 많이들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연애할 때의 설렘은 없을지라도 익숙한 사람과 함께하는 낯선 여행지에서의 설렘이 있다. 사람에 대해 설렘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설레는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고 색다르다. 지난번엔 곶자왈에서 손을 잡았으니 이번엔 비자림 숲에서 손을 잡아보는 식이다. 20년 넘게 잡아본 손이지만 다른 곳에서 잡으면 또 다른 느낌이다. 설렘이 그치지 않는다.
직원들이 우도에서 1박을 추천해 준 덕에 미리 우도 숙소를 예약해 둔 터였다. 한라산 등반미션과 다이빙체험미션을 완료했으니 우도숙박 미션까지 수행하면 직원들이 제안한 주요 미션 3개를 완료하는 셈이다. 제주 사는 친구랑 3명이서 오랜만에 같이 회포를 풀려고 독채 숙소를 예약했었는데, 아쉽게도 친구가 서울 출장을 가버려서 우도엔 우리 부부만 들어왔다. 화장실 2개에 별채까지 달린 큰 독채에서 아내와 둘이서만 잠을 잤다. 비수기인 덕에 여러 쿠폰할인으로 저렴하게 이용해서 다행이었다. 비싸게 제값을 다 주었더라면 속이 쓰릴 뻔했다.
우도 입도하기 전날, 칠십리 앞바다에서 다이빙체험을 하면서 못 잡은(?) 뿔소라가 있을까 하여 성산포 앞 광치기 해변에 물때 맞게 가봤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도 세게 불어 바닷가에 오래 서있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뿔소라와 길 잃은 낙지는 간조시간때에도 볼 수 없었고 작은 고동류 등만 있었다. 20여 분간 물 빠진 광치기 해변을 돌아다니며 고동들을 주웠다. 바위틈의 작은 조개들과 소라껍데기들을 파내려고 보면 간혹 병따개나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생명 없는 플라스틱들이 제주 바다연안에서 물살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얘네 플라스틱도 자연의 일부일까? 그냥 불필요한 쓰레기일 뿐일까?
우도행 배가 출발하려고 갑판문을 닫으려고 할 때, 차량을 매표소 쪽 대기선에 대니 갑자기 빨리 차를 몰고 오라며 안내자가 수신호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기다림 없이 우도행 배에 올랐다. 모든 차량이 갑판문쪽을 바라보며 차곡차곡 정렬해 있는데 늦게 탑승한 우리 차만이 반대로 마주 보며 다른 차량의 승객들을 바라보는 상황이 펼쳐졌다. 살짝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금방 우도에 도착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환경대립의 구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도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위에서 얘기하지 않았던가! 다른 방향의 차량을 금방 싣고 우도로 떠나는 성산포항 근무자분들은 건강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기다리지 않고 빨리 배를 타서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매시 30분마다 성산포와 우도를 오가는 도항선이 운행되는데 많은 관광객들과 차량이 배편으로 오가고 있었다. 예전 군산과 장항을 잇는 도항선이 생각났다. 지금은 금강하굿둑이 생겨 차량으로 군산과 장항을 오가기에 더 이상 그 군장 도항선은 운행하지 않는다. 당연히 터미널도 사라졌다. 관광객이 더 많이 몰리면 성산포와 우도를 교량으로 잇자는 얘기도 나오겠다 싶었다. 같은 상황에서 지금 제주 제2 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 섬을 잇는 왕복배편의 운행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삶, 도항선 체험이라는 여행의 추억 대신 사람들의 편의와 물류이동의 개선을 위한 선택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우도까지 다리가 건설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낡았지만 적당한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예쁨을 담아둔 우도 숙소에 짐을 푼 후, 근처 농협에 가서 고기 조금과 해물탕 밀키트를 구입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곳에 가면 보통 인근 농협이나 수협에 들러본다. 지역의 특산품이나 기념품들 대부분을 농협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정가제로 판매하는 기념품들의 정확한 가격들을 숙지한 후, 다음날 여행을 하며 기념품샵에 들어가면 현지 기념품들을 제값에 살 수도 있고 가격 흥정하기에도 쉽다. 여행지 경제도 활성화되어야 하니 농협 등 대형마트에서 일부 사고 기념품샵들에서 조금 더 주고 일부 사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바가지 썼다는 기분도 안 들고 이래저래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
제주똥돼지는 아니었고 제주바다에서 잡은 뿔소라는 아니었지만, 항정살 조금 굽고 해물탕밀키트에 광치기 해변에서 잡은 고동들을 넣고 끓였더니 바다향 가득한 우도해물탕이 완성되었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식당에 가기를 포기하고 숙소에서 요리해 먹었는데 오히려 날씨가 도와준 셈이 되었다. 21년 차 부부는 이렇게 먹고 나서 바로 잠들어 버렸다. 뭐 살게 있어서 온라인 쇼핑을 잠깐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다. 연애의 설렘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독채숙소의 멋스럼과 우도의 생경한 바람소리 속에서 익숙한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면 그게 행복이지. 나도 금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