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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Apr 19. 2024

카르페 디엠!

아끼다 똥 된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 대파 한 단의 가격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집 앞의 편의점, 동네마트에 가면 물가폭등이 체감된다. 아마 이런 경제적 상황의 민심이 대통령의 대파 한 단 이슈로 표출된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가가 올라도 정말 많이 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자영업자들의 폐업이나 업종변경도 자주 목격된다. 집 앞의 동네마트도 주인이 바뀌었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5년이 되었는데 그간 잘 버텨온 사장님이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모양이다. 동네 상권이 활성화되지 못한 곳에서 그래도 꽤 오래 사업을 영위하던 마트였는데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들과 소소한 생필품들을 살 수 있었지만 다소 비싼 가격에 자주 이용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실 터이니 어디서든 성공하시길 빌어드렸다.


이 집 앞 동네마트가 두 달여간 내부공사를 하더니 재오픈 행사(새로운 주인장에게는 신규오픈행사였을 것이다)를 했다. 사장님이 바뀐 뒤 가격은 어떨까, 물건 구성은 어찌 변했을까 궁금하여 아내와 같이 행사장에 가보았다. 동네마트에서 뭐 큰 기대를 할 것이 있으려나? 축하의 의미로 몇 개 물건을 집어 들고 결재를 하려니 계산대에서 멤버십 전화번호를 묻는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몇 번 이세요?"

"아! 예전 제 멤버십이 살아 있어요? 다행이네요. 예전 멤버십에 포인트 약 4천 점이 있었는데..."

그러자 계산대에서 바로 답변이 나왔다.

"포인트는 초기화되었습니다. 전화번호랑 주소 등 개인정보만 그대로 인수받았어요"

이런... 옛 주인이 내 개인정보를 팔고 나갔구나. 아까운 내 4천점아!!!


갑자기 예전 주인장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매장정리한다는 행사전단지를 봤을 때 방문했어야 했다. 그때 적립된 포인트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포인트 생각을 잊어버렸던 내 불찰이 컸다. 하지만, 전단지나 전화번호 문자 등으로 개인별 적립포인트를 소진하라는 안내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포인트소진도 하면서 추가 물건구매도 하며 석별의 마음으로 축복을 해줬으련만, 떠나는 사장님의 소비자 배려 따위는 없었다. 내 개인정보와 적립 포인트는 내가 챙겼어야 했다. 돈을 벌고 동네를 떠나신 건지 장사가 안 돼서 동네를 떠나신 건지 알 수 없으나, 더 이상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했다. 4천 원에 해당하는 포인트 때문에 화내거나 누굴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예전 사장님이 어디 가시건 돈 많이 버시고 성공하시는 것만 빌어드리기로...

동네마트 오픈 행사장을 나오며 아내한테 한마디 했다.

"아끼다 똥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바로 아들이 군입대를 한다길래 서둘러 집안 정리를 했다. 허리통증에 세면대에서 세수도 잘 못하는 내게 아들은 훌륭한 짐꾼이다. 아들이 군대 가면 제대할 때까지 어머니 유품정리와 방정리를 하지 못할 터였다.


누나들과 조카들을 불러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가구들과 옷들을 정리했다. 아이들 방도 부족했던 터여서 짐정리와 방배치를 다시 하다 보니 가족들이 슬픔도 빨리 잊고 유품들을 보면서 추억에 빠질 수 있는 여러 이점이 있었다. 일하느라 바빴던 아빠엄마를 대신해 본인들을 키워주셨던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3남매 아이들도 할머니 짐정리와 자기들 방정리를 하며 각자 나름대로 추모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어머니 장롱 속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잊고 있던 오래됨과 마주했다. 우리 4형제들의 옛 국민학교 졸업장부터 상장 및 어렸을 적 사진, 지금은 성인이 된 조카들의 애기사진, 3남매 손주들을 키우며 써 내려간 가계부 일기장, 내 장교후보생 때 어머니에게 쓴 편지 등 잊고 있던 얼굴과 글, 숫자들을 마주했다. 보관할 것들은 정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보자기에 싸놓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0여 년간 열어보지도 않은 물건들은 그냥 잊기로 했다. 앞으로 30년 뒤에도 열어볼 일이 없을 것들이었다. 그렇게 오래됨 들을 정리했다.


평소 어머니는 10년도 더 된 수건을 버릴라치면 쓸만한 수건을 왜 버리냐며 다시 욕실에 비치해 놓곤 하셨다. 장롱 속 서랍장을 뒤지다 보니 96년에 만들어진 행사 기념 수건이 박스도 안 뜯은 채 나와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새 수건을 모아놓고 왜 안 쓰셨었나! 옛 금성사(지금은 LG)의 멀쩡한 전기포트도 나왔다. 물을 끓여보니 펄펄 잘 끓여진다. 좋은 물건들 꼭꼭 숨겨놓은 채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모양이 안타까웠다.



따로 벌이가 없던 어머니는 매달 내가 드리는 용돈과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였다. 몇 년 전부터 형제들이 주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는 걸로 알았지만, 꽤 크지 않은 돈이었기에서 어머니 유산에 대해 가족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 은행계좌도 내가 관리를 했던 터라 몇백만 원 정도가 어머니 전체 재산으로 알고 있었다. 돈이 조금 모이면 집 근처 마을금고에 적금을 들으셨던 것으로 아는데, 그 적금에 대해선 어머니와 내가 서로 얘기하지 않았다. 많아봐야 천여만원 정도겠거니 생각했다.


장롱 속 집 근처 마을금고의 통장들을 보니 천만 원 단위의 꽤 큰돈들이 들어 있었다. 이런 규모의 적금을 어떻게 모으셨지?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면서 같이 산 23년간 용돈 드린 거 계산해 보니 불가능한 금액도 아니었다. 빚 갚느라 힘들어하던 나한테나 좀 지원해 주시지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대체 돈을 이렇게 모아서 어디에 쓰시려고 했나?

적금 계좌의 잔고액수를 안 작은누이가 얘기했다.

"아이고. 울 어머니 살아계실 때 고기나 실컷 드시지... "




살다 보면 아끼다 똥 되는 것들이 꽤 있다. 그렇다고 미래계획 없이 무작정 지금만이 놀 시간이다라며 흥청망청 하는 건 안 되겠지만, 너무 아끼기만 하면 당장 현실이 애처로울 수도 있다. 여기저기 뿌려놓은 적립 포인트들은 그때그때 신속하게 사용하고 어느 정도 모인 적금통장은 사용처를 명확하게 해 놓아 관리하는 게 좋겠다. 어머니의 작은 유산덕에 형제들이 깜짝 선물을 받은 셈이 되었지만, 살아생전 어머니가 좀 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입으면서 자식들과 여행을 통해 본인이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맘껏 느끼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리라. 그게 남은 유가족들한테 더 큰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끼다 똥 된다.

좀 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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