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 갈수록 정부를 필두로 한 공공부문의 역할이 강조된다. 복지국가의 개념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개인 일생의 주요 부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니 복지혜택의 확장은 곧 정부역할의 확장과 동일한 뜻이라는 것이다. 중동 산유국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복지국가로의 길은 곧 기업과 시민들의 조세부담이 높아질 때 가능한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국가의 보편적 복지혜택을 청구할 수 있고 전혀 세금을 낼 수 없는 국민들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천부인권의 사상아래 당연히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예산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만 국민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게 적합한 복지혜택을 주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가정에서 2명의 자녀도 왜 내 간식이 적냐고 싸우는 게 일상인데, 국가단위의 수많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더욱 형평성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100% 누구나 만족하는 복지란 없으며 다만 각 복지서비스의 혜택과 질을 동등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들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성실하게 행정운영을 하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복지국가의 위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잘 짜인 국가복지체계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민간의 영역이 살아있고 그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정부나 공공이 다 책임질 수 없는 부분, 돌보지 못하는 영역을 민간이 돌보고 지원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간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기 위해 돌봄의 영역이 중요한데, 미래사회를 위한 아동 돌봄의 영역이 저출산의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고 하겠다.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는 그간 정부의 여러 부처들을 통해서 관리/지원되던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온종일 돌봄 정책으로 통합하고 이와 관련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지역 사회 중심의 돌봄 체계 구축과 아동 돌봄 공동체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온종일돌봄정책을 마련하고 학교 돌봄과 마을 돌봄으로 이원화된 온종일돌봄체계 구축을 마련한 것이다. 온종일돌봄관련 법이 제정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이 사업을 맡아 수행하게 되었으며 전국에 '다함께돌봄센터'가 법에 근거해 설치되었다. 서울시 초등학생들이 이용하는 우리동네키움센터가 이 다함께돌봄센터의 지자체별 브랜드임을 알면 쉽게 사업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마을방과후교사입니다> 를 제작한 감독부부와 출연교사들이 개봉 후 관객과의 대화(GV)를 이어왔다. 며칠 전에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함께 상영회와 간담회를 갖는 시간도 있었다. 여러 번 영화도 같이 보고 GV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관객들 대부분이 던지는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
"왜 키움센터로 지정을 받지 않는 거죠?"
"해외의 마을방과후에 대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등이 주된 질문이었는데, 현명하고 당연한 질문이다. 이미 국가는 돌봄의 통합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특정 대상층의 개별적/자발적 욕구에 따른 비제도권의 소리가 당연히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조합'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깨닫고 사회적 기업이라는 큰 틀아래 조합운영에 대한 법과 지원체계를 갖추어 놓았는데 선진사례에 대한 연구와 파악 없이 문제제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은 다큐멘터리 감상을 아주 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
감독은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아 대중에게 보여주는 역할이고 교사들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입장이니 짧은 GV에서 정책적 고민이나 해결방법을 듣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관객이 영화와 GV를 통해 문제인식을 하고 다 같이 해결방법을 고민해 주는 것이 '나마교'의 무브먼트를 사회변화 쪽으로 이끌어 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영화상영을 하면서 '협동형 다함께돌봄센터의 모델'을 공식적으로 제시하였으니 이제 전국의 마을방과후와 더 깊이 연대하고 마을공동체 및 돌봄 관련 유관기관들과의 협력방안을 찾아나간다면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면서 그즈음, 민관이 함께 해외 선진사례들을 연구하고 선진지 견학을 많이 다녀온 터라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통하면 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10여 년간 조합 및 사회적 기업이 국내에서 활성화되며 여러 분야로 안정화되었기에 조합형태의 돌봄 공동체들과 사례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위 링크의 인터뷰 중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조합들과 연대함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외부(정부 등) 지원을 받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운영면에서 지속성을 갖추기는 쉬우나 행정력이 많이 들어가고 민간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민간단체들끼리 연대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키우고 자체 후원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민간단체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단체의 고유성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마을방과후도 자기들이 위치한 마을공동체와 함께 전국의 마을방과후 등 돌봄 및 마을공동체들과 더욱 긴밀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생존의 지속성을 가져가는 길일 것이다. 국가정책의 방향성을 따름과 동시에 민간 고유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도권 안에서 법적기준에 근거한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민간 고유의 프로그램과 교육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민간이 공공을 이길 수 없고 공공은 완벽하지 않다.
공공은 민간이 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영역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때론 여러 서비스들을 하나의 창구로 통합하여 원스톱 제공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다양성이 공공으로 다 합쳐지기는 불가능하고 때로는 정부와 공공기능보다 민간이 그 역할을 더 잘 수행해 내는 경우도 생긴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커지면 좋은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사회의 변화나 개인의 욕구를 따라가는 데는 민간이 훨씬 효율적이고 신속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의 영역에서, 국가는 온종일 돌봄이라는 체계를 구축하고 모든 돌봄 체계를 다 함께 돌봄센터, 지역아동센터 등의 마을돌봄협의체에 들어오게 했지만, 도토리마을방과후처럼 공적체계에 들어가지 않는 돌봄 체계들도 있을 수 있다. 공적체계에 왜 들어가지 않냐고 민간에 묻기 전에 왜 민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지 정부에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일단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고 통합하려는 특성이 있다. 관리하려면 획일화된 기준이 편하기에 2~3개 보편화된 기준이나 목소리가 큰 집단기준에 맞춘다. 세계적인 저출산의 국가에서 돌봄 정책을 국가 주도로 통합해서 관리하는 게 맞겠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듯 아이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길러낼 것이 아니라면, 돌봄 서비스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민간이 원해서 특정 돌봄 형태를 유지하니 정부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 공동육아의 마을방과후는 때때로 재력과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돌봄 체계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최초 가입 시 내는 출자금과 월조합비가 높은 경우가 있으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아이들을 좀 더 인격적으로, 생태적으로, 상식적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찾아올 뿐, 재력과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공공 돌봄이 싫어서 민간의 마을방과후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공공 돌봄에 다양성이 풍부하지 않으니 민간 마을방과후를 찾아오는 것이다. 정부가 아동 돌봄의 다양한 형태에 관심을 갖고 제도적 지원과 활동교사들의 사회적 인정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19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되면서 정부는 민간 후원금을 법정기부금단체라는 하나의 창구에서 관리하고자 했었다. 당시 민간단체들의 고민이 많았지만, 지정기부금단체라는 자격을 가진 일반 모금단체들은 여전히 생존해 활발한 모금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모금은 일원화하였으나 단체의 다양성은 인정하였고 세금혜택에서 다소 불리한 조건을 가진 지정기부금단체들은 변화와 혁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후원자들을 공략하면서 생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기업모금시장에 집중하는 동안, 일반 모금단체들은 일반 시민들, 개인들에게 집중하면서 개인모금시장의 파이를 키워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복지단체들은 어려운 모금업무를 축소하고 공동모금회에 기금공모사업을 확대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갔지만, 월드비전이나 굿네이버스 같은 복지단체들은 자체 모금역량을 줄이지 않고 세분화시키면서 사업 전문성과 조직규모를 키워왔다. 물론 이들 단체들도 정부사업을 위탁받고 공동모금회의 기금도 받아 수행하고 있다. 법적기준아래에서 정기적인 세무보고와 회계감사, 외부의 감시와 감독을 받으면서 각 단체들끼리 투명성과 지속성을 위해 연대하고 있다. 정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본연의 모금역량을 극대화하면서 단체별 고유목적사업을 확대하였기에 정부와 여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고 배려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적영역이 만능은 아니다. 정부가 모든 걸 할 수는 없고 공공이 비효율적일 때도 있다. 그렇다고 민간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거나 민간만이 전문적/효율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공공과 민간은 조화롭게 보완되면서 협력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돌봄, 특히 아동 돌봄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마을방과후교사입니다> 영화를 계기로 마을방과후의 돌봄 형태와 그 안의 돌봄 교사들에 대한 경력인정,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다. 누구에게, 혹은 어떤 단체에 도움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더욱 상식적이고 인격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 돌봄 체계라면 무엇이든 붙잡아야 한다. 아이들한테 맞춘, 아이들이 중심이 된 돌봄 체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