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최근 극장개봉한 다큐멘터리 '나는마을방과후교사입니다'를 n차 관람하고 있다. 황다은, 박홍열 부부감독이 공동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성미산 도토리마을의 방과후 교실에서 일하는 5명의 교사들 일상을 담고 있는데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으니 영화관람과 함께 한 번씩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수십여개의 언론과 공중파 방송에서도 관심을 갖고 뉴스기사와 취재를 이어간다니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때 관람하고 GV(Guest Visit)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많은 관객도 없고 영화의 극적 긴장감도 높진 않지만 컴컴한 극장에 오롯이 앉아 수차례 영화에 집중하고 있자니 점차 두 감독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3년여의 시간 동안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을 마을방과후의 일상을 촬영했을 터인데, 100 테라바이트나 된다는 그 수많은 필름에서 왜 저 장면을 선택하여 영사기에 올려놨을까를 생각하니 n차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다은, 박홍열 두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은 글 잘 쓰는 평론가들이 이미 잘 적어놓았으니 나는 이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많은 언론에서 박홍열, 황다은 공동연출이라고 남편을 먼저 불러주니 나는 황다은, 박홍열 공동연출이라며 아내를 먼저 불러주려고 한다. )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개봉초반 재미없다는 평가를 뒤로하고 감독이 심어놓은 이미지와 숨겨놓은 코드를 찾느라 n차 관람하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나도 '헤어질 결심' 영화를 첫 관람 후, 영화 후기를 찾아보며 그 장면/그 장소/그 대사들이 던져주는 의미와 화면 속 코드를 분석한 글을 검색해 찾아 보았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시 관람하니 영화의 완성도와 감흥이 2배가 되었다. 다큐 '나는마을방과후교사입니다' 도 충분히 n차 관람하는 재미와 감흥이 있는 영화이다. 물론 치밀하게 계산된 극영화와는 다르게 일상에서 두 감독이 찾아내고 보여주고자 했던 코드들을 유추해 들여다본다는 차이가 있다. 평범한 다큐같지만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본다면 황다은박홍열 두 감독의 머리와 마음을 헤집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n차 관람의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두 감독부부가 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및 그 속 돌봄과 교육의 평범한 일상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배려'와 '놀이' 그리고 '변화'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쓴 책에서 발췌했다는 내레이션 문구들을 황다은감독의 잔잔한 목소리로 들으며 보게되는 자막은 '왜 하필 저 문구들을 선택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극장 객석의 한가운데에서, 혹은 맨뒤 좌석에서와 때론 가장자리 객석에서 화면을 바라보게 되면 지난 회차에선 보이지 않던 마을방과후의 여러 모습들이 보이는데 굳이 저 장면, 그 사람을 보여주는 감독의 저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찾아보게 된다. 설령 두 감독이 아무렇지 않게, 별 의미 없이 자막과 화면을 Pick 했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감동을 만드는 것은 관객의 몫이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재미와 감흥을 찾는 것은 n차 관람의 묘미일 것이다.
꼭 주인공을 찾으라면 이영화의 주인공 교사는 논두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첫 장면에는 분홍이가 나오고 논두렁은 아이들과 주차장에서 줄다리기하는 장면에서 처음 나오지만 크게 클로즈업되진 않는다. 본격적으로 논두렁을 비추는 모습은 아이들과 성미산 나들이를 가는 장면인데, 논두렁이 해맑게 웃으며 아이한테 물을 주는 모습에서 다른 아이가 카메라로 다가와 안녕안녕하고 외친다. 보통 이럴 때 아이의 얼굴을 한번 비출 만도 한데, 카메라는 계속 논두렁만 바라보니 아이는 결국 펄쩍 뛰어서 마스크 쓴 자기 얼굴만 보이고 간다. 이 다큐는 아이들을 향한 화면이 아니라 교사들을 비추는 영화라고 강조해서 말을 하는 장면으로 인상깊었다.
<배려의 속내 들여다보기>
2019년 11월 노개위하는 장면을 보면 오솔길과 자두만 따로 앉아 있고 논두렁은 부모랑 같이 앉아 있다. 어찌 앉다 보니 그렇게 앉아 있을 수도 있겠으나 영화를 보면 이미 논두렁이 퇴직의사를 부모들한테 얘기한 걸로 보인다. 그래선지 부모들 맞은편에 앉은 오솔길/자두보다 부모들 옆에 앉은 논두렁의 말은 거침이 없다. 교사들만의 회의 때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카메라를 비추던 감독은 노개위(노동개선위원회) 화면에선 약간 위에서 카메라를 잡았다. 앉은 이들의 눈높이앵글에선 논두렁의 얼굴을 자두와 오솔길의 등뒤에서 비추는데, 그 덕에 오솔길과 자두의 다소 경직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교사들은 부모들한테 고용된 사람들이지 않은가? 조합의 뻔한 경제적 상황을 아는 교사들이 자기들 입장에서만 강하게 처우와 복지를 얘기할 수 없음을 감독은 카메라 앵글을 높임으로 보여준 듯한 느낌이다. 조합원 부모와 교사들이 동등하지만 결국 구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조합원 감독이 현명하게 카메라 눈높이를 올려버려 서로에 대한 존중감 그리고 그 안의 긴장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이 마을 아이들의 생활교육이 훌륭하게 녹아든 모습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이들이 밥을 먹기 전 기도문을 같이 외치는데 '사람이 고마운 줄 모르면 그게 사람이냐?'라는 문구가 나온다. 매번 식사 때마다 감사의 말을 외치는 아이들의 나중 어른됨 모습은 쉽게 예상이 된다. 각자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사는 훌륭한 성인이 될 것이다. 각자의 식그릇을 발받침대 놓은 싱크대에서 씻는 모습도 좋지만, 싱크대 옆 붙은 알림판도 눈에 띈다. 거기엔 '이런 도움이 필요해!'와 '이런 터전이 됐으면 좋겠다'는 물음에 아이들이 직접 붙인 포스트잇이 여러 개 붙어 있다. 이는 이 활동공간이, 교사들이 강조하는 교육이념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견과 정신이 녹아든 감성으로 공동운영되는 공간임을 알게 한다.
단오놀이할 때, 씨름하는 아이들의 승패도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의 화면이라면 승자아이의 기쁨과 패자아이슬픔을 보여줄 만도 한데 감독은 그러한 것엔 관심이 없다는 듯 기대치를 넘어선다. 경쟁과 승패에 적응된 일반 영화보다 낯설지만 일상을 비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여러 감정을 덜어낸 두 감독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성미산 나들이에 나선 아이들이 등산로에 난 꽃들을 '줍는' 장면도 좋았다. 아이들은 꽃을 꺾지 않고 줍는다. 이런 모습은 이 아이들이 평소에 생명을 존중하고 어떻게 자연을 대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을체육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교사들의 회의에서 시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 중 오솔길은 '너무 성공을 강조했나?'라는 자기 검열의 말을 한다. 논두렁의 체계적인 설명을 듣다가 분홍이는 '그건 1학년들한테는 너무 불리한데'라며 저학년들의 손해봄을 걱정한다. 관람하다 보면 분홍이는 고학년 담당임을 알 수 있다.
코로나가 심해져 터전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준비를 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들에 대한 두 감독의 마음가짐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간식꾸러미에 담긴 과자는 무의식 중 고른 과자였겠지만 '엄마손파이'가 담겨있고 카메라는 이걸 놓치지 않았다.
봉투에 붙이는 스티커를 논두렁과 오솔길이 너무 정성스럽게 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장시간 다량의 단순작업을 사무실에서 많이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다소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 누가 저렇게 정성스레 우편스티커 작업을 한단 말인가! 평상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터전 생활방식이 어떤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였다.
두 감독은 소소하지만 큰 의미들이 있는 여러 코드들을 이렇게 화면 곳곳에 심어놓았다.
종업식 장면, 마술을 하는 아이가 수건을 올렸을 때 잠시 동전이 보이다가 바로 동전이 사라진 컷으로 전환된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아이들의 환호성이 울린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알아차렸을 상황이란 걸 유추해 볼 수 있다. 누구든 실패할 수도 있고 재도전으로 성공도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다 같이 격려해 주는 마을방과후 아이들의 성품이 오랜 시간 교육으로 습관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나 자전거로 나들이를 나갈 때 아이들의 머리엔 항상 헬멧이 씌워져 있다. 카메라가 있으니 헬멧을 썼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솔길이 건널목을 건널 때 횡단보도에 내려서 서둘러 자전거를 이끌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잠시 숙연해지기도 한다. 횡단보도에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걸어가는 게 맞는 방법이다. 앞선 교사가 자전거를 끌고 빨리 뛰어야 뒤의 아이가 신호등 색이 바뀌기 전에 건너올 수 있을 터이다. 헬멧착용으로 자전거를 끌며 뛰어가는 횡단보도 위 아이들 옆으로 헬멧 없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반인이 대조되면서 평상시 아이들이 어떻게 교육받고 생활하는지, 이 교사들의 생활교육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촬영하는 감독에게 '오가피! 벌레 물려'라는 모습도 감독은 잘라내지 않고 보여준다. 모 인터뷰에서 감독은 촬영기간 내내 자기들도 아이들한테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를 증명해 주는 화면임과 동시에 일상 속 배려와 돌봄이 이 아이들한테는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자기들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풀숲에서 카메라를 든 어른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말이 깊이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소소한 장면에서 감독은 도토리마을방과후의 우수성과 교사들의 지속적인 교육열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놀이의 다양성과 그 효과>
영화에서는 다양한 놀이가 나온다. 앞서 소개한 '코아르'의 이상용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어느새 현실의 놀이 문화는 배워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놀이 문화는 공동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전수되는 것이었지만, 공동체가 사라진 현실에서 퇴조해 버렸다.... 놀이 문화나 교육을 현실을 둘러싼 공동체 바깥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할 것이다.
부러울 만큼 이 마을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논다. 아이들이 직접 밥을 푸고 계란을 부치며 설거지를 하는 생활교육도 화면에선 놀이처럼 다가온다. 오솔길이 앉아서 아이들과 같이 수학문제(사람이모티콘+사람이모티콘=14)를 푸는 것도 아이들이 그린 그림문제이다. 주차장에선 줄다리기와 제기차기, 술래잡기, 눈싸움, 땅따먹기, 단체줄넘기, 춤추기 등의 놀이가 나오고 실내에선 책 읽기, 씨름, 팔씨름, 마술, 춤추기, 007 빵, 덤블링, 링가링가링, 제한된 시간 내 손뼉 치기, 노래 부르기 등 정말 많은 놀이가 등장한다. 코로나 간식키트를 배달하러 갈 때에도 아이들은 초인종누르기 게임을 한다. 심지어 논두렁은 본인이 만든 맥도날드게임을 부모들에게 알려주고 같이 하기까지 한다. 조합원이었던 두 감독은 이런 놀이장면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 마을 아이들은 이러고 살아. 부럽지? 같이 살지 않으련?' 하고 권면하는 느낌을 받는다.
코로나로 다소 우울한 화면이 지속되다가 분홍이가 아이들과 같이 신나게 춤추는 장면과 대중가요 '바다의 왕자'를 논두렁과 분홍이가 아이들과 같이 부르는 장면에선 그래도 삶은 재미나고 활기차단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다소 세속적인(?) 놀이도 자유분방하게 아이들과 같이 하는구나라는 색다른 느낌도 받는다. 평범한 일상이 멋진 놀이가 될 수 있고 놀 때는 함께 어우러져 놀아야 재미있다는 삶의 진실을 연출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논두렁이 교사회의에서 마을방과후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책도 없고 자료집도 없고...'라는 말을 하는데 이에 대한 대답을 두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영화의 지향점은 1차적으로 마을방과후의 영상매뉴얼이 되고 그다음 단계에선 돌봄과 교육의 효과적인 통합매뉴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현장에서, 혹은 다양한 공동체에서 무엇을 활용하여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다큐를 꼭 보길 바란다.
<변화의 모색>
비 오는 날에 자두가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면서 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교문이 닫힌 학교 안에서 학교보안관이 '어디 다녀오냐?'라고 묻는다. 코로나시기에 공교육은 문을 닫았고 오롯이 돌봄은 가정에 내맡겨졌다.
온라인으로 입학식과 온라인 등교만을 한 1학년 아이들을 위해 터전에선 응원의 날 행사를 연다. 평상시엔 100일 잔치를 했을 터인데 힘든 시기에도 교사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대안을 찾았다.
종업식과 졸업식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면서 다소 부산스럽게 진행한다. 카메라를 든 자두와 노트북상에서 줌 프로그램을 돌리는 다른 교사들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일상이 바쁜데 줌사용법까지 배우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수고가 더해졌다.
졸업식에서 논두렁은 아이들에게 감사를 받는 게 아니라 떠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재미난 분장을 하고 춤을 춘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슬픔이 눈물과 동의어는 아니다.
자두는 1학년 아이들이 산만하게 걷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차조심해야 해, 이렇게 걸어야지, 그러면 안돼'라고 얘기하지 않고 '너희들이 이렇게 걸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어떻게 걸어야 할까?라고 해결책을 아이들에게 묻는다. 답을 하는 아이들에게 '그래. 그럼 그렇게 걸어가 보자'라고 얘기한다. '맞아. 그게 맞는 방법이야'라고 정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어른으로서 판단하고 가르치되 아이들을 존중하고 직접 문제인식과 해결책을 찾도록 지원하는 교육방식이 너무 아름다웠다.
현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교육을 하는 사람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꼭 보면서 우리의 돌봄과 교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장면들이다. 되려 영화를 만드는 감독부부가 문제의식을 갖고 일상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필름을 잘라내어 대중들한테 보여주었다. 여러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한 호평의 글을 쓰고 수많은 언론에서 집중하는 이유도 이런 것들에 기반한 것이리라. 두 번 세 번 보면 두 감독이 숨겨놓은 코드들이 보인다.
부모들이 퇴근한 밤, 터전옥상에서 열린 교육소위 장면. 분홍이가 교사들의 교육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한다. 하늘에선 비행기가 작은 점으로 화면을 지나가는데 총 3대의 비행기가 화면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중간 편집을 해서 왼쪽 비행기가 사라졌다가 오른쪽에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만큼 분홍이의 말이 길었다는 얘기다. 무엇을 얘기하고 있었을까? 외부전문가가 자기들의 교육을 점검할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코로나시국에 누군들 이 교육이 전문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오랜 시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사람들, 다양한 교육 분야의 오랜 경험자들과 자격증 소지자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공교육도 문을 닫은 마당에 공동체 교육을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과 어우러짐을 모색하려면 교사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모들을 설득했어야 할 것이다. 다소 위험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전 세계가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서 돌봄과 교육의 정답은 없었다. 교사들도 1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니 분홍이는 부모들에게 자기들의 교육관을 계속 얘기하면서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비행기 3대가 날아갈 동안의 지루한 장면을 굳이 집어넣은 조합원자격 감독부부가 말하고 싶던 것이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솔길이 해냄활동으로 아이한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장면을 보면, 아이의 옷이 패딩이어서 이 날이 바람 부는 초봄날씨임을 알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 보름달과 자두가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선 아이들과 나들이를 간다. 무표정한 얼굴속에서 날씨와 상관없는 일상임을 느낄 수 있다. 논두렁은 퇴사하는 날에도 온힘을 다해 주차장에서 아이들과 뛰어 논다. 분홍이는 아이들이 놀 때 주차장 밖 도로에서 차가 올 것을 대비하여 양팔을 벌려 아이들이 뛰쳐나오는 것을 막고 있다. 좌우를 살피는 얼굴이 너무 해맑아서 같이 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임시교사였던 언덕은 아이들과 팔씨름을 하고선 '이제 정말 못 해'라고 말하며 얇은 팔을 흔든다. 정말 아팠을 굵기의 팔이다. 더운 여름날 기타치는 논두렁과 함께 자기이름이 쓰인 거실장 앞에서 분홍이는 바다의 왕자 노래를 부른다. (기존 노래가사와는 다르다고하니 귀를 쫑긋하고 노래를 들어보자) 이 교사들은 정말 흥이 많은 사람들 같다.
그러고 나서 감독은 교사들이 밤에 교사회의 또는 부모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부부감독이 교사회의 때마다 집어넣은 화면 속 시계는 항상 8시 20분~40분 경이고 창밖은 어둡다. (한창 회의를 저 시간에 하고 있으면 퇴근은 언제할까?) 아직 창밖에 해가 떠있을 때 시작한 교사회의는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지속된다. 종업식/총회 때, 시계는 1시 35분 정도인데 창밖이 환하니 낮인걸 알 수 있다. 부모들이 와 있으니 휴일이란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부나 아무 상관없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상교육과 소통과정을 해내는 교사들의 모습을 여러 화면에서 감독은 잡아내었다. 교사들의 수고로움도 대단하지만 이런 장면들 하나하나 소중하게 선별해 낸 두 감독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n차 관람이다.
연출자는 이런 소소한 코드를 통해서 여러 의미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논두렁이 개발해 낸 놀이는 맥도날드게임이다. 교사회의 때 보름달 앞에 놓인 스타벅스 텀블러가 눈에 띈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자기가 일하며 돈을 벌 때 소확행으로 자기의 의식주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를 하곤 한다. 젊은 논두렁이 맥도날드를 활용하여 게임을 만들고 보름달이 사용하는 스타벅스 텀블러를 바라보면서 많지 않은 급여에 이들의 근무기간이 길지 않겠구나라는 암시도 받았다. 헌신도 중요하고 자기 소신도 중요하지만 이를 존중하고 노동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1차적인 책임이 조합원들에게 있겠지만, 사회와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이런 민간의 다양성이 지속가능할 것이다.
과거 국내시장중심이던 아이돌그룹의 해외진출을 위해 JYP가 미국 전역을 돌며 원더걸스와 오랜 기간 투어행사를 진행하였다. 적은 자본으로 변방의 한국가요가 세계적 주류인 미국의 팝송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다소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접근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같이 고생하면서 시장을 개척하고 노하우를 쌓은 방시혁 씨가 하이브를 만들고 BTS를 키워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후 JYP도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회사가 되고 다방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유명한 레이블이 되었다. 지금의 세계적인 K-POP 흐름엔 이런 선구안을 가진 개척자들의 도전과 열정이 있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황다은박홍열, 박홍열황다은 두 감독부부가 직접 촬영과 제작, 홍보, 배급까지 하면서 경험을 쌓아가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수차례의 GV를 다큐출연 교사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너 번의 GV였다면 감독부부의 저의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전국을 오가는 수차례의 GV, 그리고 GV에서 나오는 감독부부의 매번 결을 같이 하는 대답들을 듣다 보면 이들의 영화에 대한 진정성과 돌봄에 대한 철학, 교사들을 위한 마음의 진실됨이 느껴진다. 매일 일을 하면서 저녁에 GV에 함께하는 교사들도 같은 마음이니 피곤을 무릅쓰고 참여하는 것이리라. 조만간 세계적인 감독부부가 될 것으로 보이니 투자처를 찾는 분들은 과감히 투자해도 좋을 터이다.^^
한 명 한 명 관객들과 만나며 밑바닥부터 훓으면서 돌봄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다 보면 우리나라 교육정책과 돌봄의 지향점, 공동체적 놀이문화를 보급하는데 이 두 감독의 다큐가 초석이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관객수와 개봉관 수로 영화적 성공을 논하기 전에 각 화면이 담은 연출자의 시선과 고민, 그 안의 상징들, 그리고 교사들의 수고와 열정이 공동체적 돌봄 교육에 대한 매뉴얼로 승화되는 성공을 맛보시길. 아울러 돌봄의 다양성이 존중받아 적절한 보상과 처우가 돌봄 노동자들에게 확산되는 사회적 연대를 꼭 이루어 나가시길 소망한다.
<영화 중 찾아보는 소소한 재미거리들>
- 출근하고 쌀을 짓는 모습에선 분홍이가 세척통에서 쌀을 씻고 논두렁은 밥통에 바로 쌀을 씻는다. 집에서 이렇게 쌀을 씻으면 나도 어머니나 아내한테 종종 지적을 받는다. 그렇게 하면 밥솥 안의 코팅 벗겨진다고. 나중 논두렁의 이별식에서 분홍이가 논두렁한테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잔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 교사회의 끝나고 에어컨을 끄려는 보름달에게 오솔길이 '자동모드는 자동버튼 누르면 꺼진다'라고 두세 번 얘기한다. 오랜 기간 교사들을 지켜본 촬영자가 터전 내 오래 근무한 오솔길의 잔소리를 재미나게 표현한 장면으로 보인다.
- 논두렁이 출근하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이 모습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화면에 나온다. 평상시 어떤 주제를 갖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일상을 그려내는 아이들의 마음, 그리고 이를 가르치는 터전의 교육방식을 엿볼 수 있다.
- 첫 장면에서 나온 분홍이가 초반 교사회의 때는 없고 언덕이 임시교사로 나온다. 초반 교사회의 때는 화면 정가운데에 아무도 없다가 분홍이가 나타나면서 화면가운데에 나온다. 오솔길과 자두, 보름달은 다큐화면에 정면으로 잡히는 걸 어려워했음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다.
-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논두렁, 분홍이, 오솔길의 장면이 점차 밝아진다. 옷차림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일 것 같은데 논두렁의 현관은 어둡고 분홍이는 조금 밝아졌다가 오솔길의 현관은 환하다. 두 감독은 화면에서부터 두 명 교사의 퇴사를 암시했던 것은 아닐까?
- 우효의 민들레 노래를 부를 때와 종업식 때, 화면은 특정 아이들을 비추기보다 다소 산만하게 아이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비춘다. 특정 부모의 특정 아이를 비추지 않으려는 조합원 감독부모의 고민도 보이고 원래 아이들은 산만하니 그런 아이들의 마음상태를 카메라워크로 보여주려던 것은 아닐까?
- 코로나가 일상을 무너뜨렸다는 내레이션에 비추는 터전의 모습 중 2층침대가 나오는데, 거기에 붙은 명패가 '베이징'이다. 코로나에 하필 보여주는 침대명패가 '베이징'이라니.
- 한낮 터전 옥상의 빨래 아래에서 부모회의를 하다가 빨래를 걷겠다는 제 3자의 등장에 서둘러 일어나는 부모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아이를 터전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야 다들 같겠지만, 코로나 시국에 각자의 입장이 다를 터이다. 그러던 중 빨래를 걷겠다고 하니 그 참에 회의를 빨리 끝내버리는 모습을 감독은 덜어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빨래를 걷으러 온 사람을 여자로 기억하는데, 남자분이다. 한국의 대표적 영화잡지 본부장님이라는 사실이 GV에서 밝혀졌다.
- 조합원 부모들이 열어주는 논두렁의 생일파티에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여성이 황다은감독(하수오)이다. 간식키트 배달시 논두렁이 하수오한테 문자한다는 것을 보면 하수오 자녀가 논두렁반에 배속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수오는 자기영화에서 '촬영'의 부업을 열심히 수행한다.
- 박홍열감독(오가피)은 자전거탄 아이들이 불러주는 것과 맥도날드게임의 논두렁이 불러주는 것 딱 2번만 호명되어 나온다. 관찰자이되 화면속 대상들이 불러주는 이름으로 동시간대에 공존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GV이후 뒷풀이때 듣게 된 감독의 촬영철학이다.
- 엔딩크레디트를 보면 마을 부모들의 별칭이름이 나온다. 까만곰, 루피공주, 페달, 얼음배, 둥둥, 샤방샤방 등 재미난 이름이 가득하다. 여기에도 오솔길이 나오는데 극 중 오솔길 교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