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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Feb 26. 2023

난 공직에 안 나갈 것이니...

지극히 일반적인 삶이 성공한 삶이 되길~

휴일에 기분이 살짝 언짢았다.  

경찰의 수사업무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된 사람과 관련한 소식이 짐짓 멘탈을 흔들어 놨던 것이다. 경찰 수사를 관리감독하는 자리에 검사출신을 임명했다는 논란과 자녀의 학폭사건에 대한 이슈로 이미 주말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터이다. 정치적인 이슈에 항상 관심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정당이나 정파적 이념에 치우치면 안 되니 그냥 안타까워하며 주말을 보냈건만, 주일 아침에 드디어 멘탈이 무너져 내렸다.  


새롭게 온라인에서 접한 소식은 이렇다. 논란의 당사자는 천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옛 국회의원의 사위이고 시력과 청력을 이유로 군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의 학폭사건을 재심청구와 상급심까지 끌고 갔던 것은 억울해서가 아니라 가해자였던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였음도 알았다. 날씨는 너무 화창한데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왠지 모르겠지만 너무 화가 나고 속이 쓰림에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욕을 한참 퍼부었다.


사회지도층의 비상식적인 행위들에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 물러났으니, 대통령실도 검증이 미흡했다고 했으니 된 거 아닐까? 그런데 왜 기분까지 언짢고 게다가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세상을 좀 더 현명하게, 이기적으로 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억울함과 아쉬움이 들었던 것일까? 사회지도층에 올라서지 못한 나의 부족함에 짜증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내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지도?


어떻게든 돈 많은 부잣집딸을 꼬셔서 결혼을 했어야 하는 거였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미래를 바라보며 돈 많고 집안 좋은 배우자를 골라 결혼을 했어야 나와 내 가족의 미래가 창창했을 거 아닌가! 그냥 사랑하는 마음만 갖고 결혼한 나와 내 아내는 얼마나 미련했던 것이냐!


건강한 몸을 가진 대한남아로 국방의 의무를 3년간 잘 수행한 것이 항상 자랑스러웠는데,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오늘 다시금 증명되었다. 역시 사회지도층은 군대면제를 받아 불경스러운 총 한번 쏘지 않아야 '노블레스'자격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나간 내 군복무 기간은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난 검사가 되지는 못했을 터이니 억울해하지 말자고 스스로 만족이나 해야 하는 건가!


그래도 기분이 찜찜할 정도까진 아닌데, 왜 이리 무기력할 정도로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뉴스 속의 당사자는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피해자의 인권 따위엔 관심이 없다. 당시 담당하던 보직이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다니 이들에게 인권은 가진 자와 권력자에게만 있는 것일 뿐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자기 아들 명문대 보내자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지속하는 것이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바쁜 업무 탓에 업무를 위임한 변호사가 하란 대로 했다고 해서 이 아버지는 과오가 없는 것일까?


권력을 쟁취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고 물려주기 위해 이렇게 물불안가리고 노력하는데, 나는 "인성이 최고다/남한테 피해주지마라/아이들은 놀아야한다/네 인생 네 것이니 알아서 해라..." 라니 이 얼마나 세상 순진한 발상인가! 너무 멍청하게 내 자녀들을 자유롭게 키운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에 내 기분이 언짢았나 보다.

누구는 저렇게 남을 밟아가면서 자녀 대학에 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난 자녀 위해 뭘 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닌가? 난 국가수사본부장이 될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될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상식을 지키며 순둥이처럼 이 인생을 살아왔나 싶은 허무함의 속마음이 들킨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겠지만, 난 공직에 안 나갈 것이니 (못 나가는 것이겠지만^^) 부잣집 배우자도 필요 없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자고 남의 가슴에 대못박을 이유도 없다. 군대도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사회복지사라는 '사'자 직업을 갖고 살고 있으니 나름 성공한 삶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회지도층의 일탈에 화가 날뿐, 저들의 삶이 부럽거나 딱히 존경스럽진 않다. 그러니 하루종일 내 기분의 언짢음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사회지도층들을 향한 것이리라.  오히려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줘야 할 국가의 리더그룹들과 사회지도층들이 비뚤어진 사고방식과 잘못된 의식을 갖고 사는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꼭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냥 일상 속에서 사회적 질서와 상식을 잘 준수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남한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반인들의 삶이 귀하고 아름답게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이 내 자녀한테 잘 전달되고 가슴속에 각인되어 꼭 판검사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답게 살아가는 시민이 되기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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