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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Aug 03. 2023

스카우트, 아람단 그리고 빈곤

청소년 단체활동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

출근하다가 버스창밖으로 스카우트 단복을 입은 외국학생들의 모습을 봤다. 전북 새만금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하려고 방한한 학생들인 듯싶다. 행사장소는 새만금인데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어제 입국을 했던지, 미리 와서 서울근교를 구경하고 이제 행사장에 내려갈 준비를 하는게 아닐까? 저렇게 멋진 단복을 입고 외국 길거리를 거니는 학생들의 설레는 마음이 활짝 웃는 얼굴에서 느껴진다. 제복이 주는 멋스러움과 자존감이 저 나이때는 엄청나지...

날씨가 더워서 큰 걱정이지만, 한국에서 좋은 추억과 경험을 쌓고 돌아가긴 바라본다. 


30여 년 전 고성에서 세계잼버리대회를 했을 때에 들었던 과거 감상이 어제 출근길에서 본 스카우트 대원들을 보면서 똑같이 들었다. 나이도 들었고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같은 사건에 같은 느낌, 동일한 생각이 깃드는 것을 보니 어릴 적 기억의 각인이라는 것이 대단하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강렬히 원했으나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부러움과 아쉬움의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스카우트의 기억 1

초등학교 2학년 때,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오늘은 집에 안 간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집에 왔다. 저녁에 학교 쪽에서 쿵짝쿵짝 시끄럽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학교 운동장에 갔더니, 매일 나랑 뛰어놀던 친구들이 파란 제복을 입은채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 행사였단다. 나도 친구들과 같이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 당시 우리 4남매를 돌보시던 할머니한테 스카우트 가입을 말씀드렸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목사안수를 받겠다고 전재산 처분하여 신학대학교에 들어간 부모님을 대신해서 4남매와 함께 단칸방에 살던 우리 가족에겐 실현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에 스카우트 제복과 친구들의 캠핑활동이 작은 생채기를 내었나 보다. 스카우트 활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군.


아람단의 추억 2

중학교에 입학하니 특별활동 선생님이 이러저러한 동아리활동을 신청받았다.  문예반을 들어가 볼까 밴드부를 해볼까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아람단'이라는 동아리활동 소개가 나왔다. 보이스카우트와 비슷한 것으로 고유제복과 캠핑활동 등을 한다고 하는데 개인별 제복을 맞춰야 해서 다소 비용이 든다고 했다. 바로 선생님께 신청을 했고 하교 후 부모님을 졸라 어렵게 승낙을 받아냈다. 그때에도 가정형편이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막내아들 동아리활동 지원비는 한 번쯤 감내해 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람단 가입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2학년 때 전학을 갈 때까지 교내 공식적인 아람단 활동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비싸게 맞춘 아람단 제복은 입어보지 못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집에서 혼자 아람단 제복을 입고 누가 좀 봐달란 듯이 집 대문밖을 한두 번 거닐던 사춘기 학생의 마음이란... 결국 큰 키로 인해 작아져버린 제복은 이사할 때 버려버렸다. 아람단은 스카우트의 짝퉁이었나, 왜 우리 학교에 보이스카우트는 없던 것이냐!


성인이 되어, 군대를 가보니 이거 웬걸? 어릴 적 가난해서 못 입어본 제복을 공짜로 주고 운동장 캠핑이 아닌 자연 속에서 실제 야영과 생존훈련을 국가가 무료로 해준다. 돈 없다고 낙담할 건 아니구나. 허허. 


약간의 갈굼과 모욕, 구타만 참으면 그토록 소원이던 멋진 제복을 입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깊은 산속 텐트 안에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전투식량을 먹고 무릎이 시릴 영하 20도의 추위와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견디면 애인과 연애할 수 있는 월급도 받을 수 있었다. 돈 없는 젊은이가 선택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긴 했다. 장교로 입대하여 특전사에 지원해 3년간 열심히 훈련하고 군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높은 자리에 앉으신 분은 어릴 적 스카우트활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지만 군대는 가기 싫어 면제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가난한 집안의 젊은이는 반대로 하니 생존의 길이 생겼다. 체육학과를 나운 장교 임관동기들도 원치 않는 특전사에 자발적 신청해서 공짜로 캠핑과 생존훈련, 수영강습, 낙하산 훈련, 암벽등반 등을 체험했다. 어렸을 적엔 돈 주고 배워야 했는데 성인이 되니 공짜로 가르쳐준다. 집안의 재력과 학력, 권력 여부 등에 따라 개인별로 느껴지는 감성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건 그냥 극복하면 되는 거였다. 기댈곳 없고 젊으니까 그냥 버티면서 극복해 나가면 되었다. 


감성이야 어쨌든, 군대생활을 통해 잼버리대회와 같은 집단활동과 체험활동을 다 경험해 보고 돈까지 벌었으니 다행이다. 지금은 돈을 쥐어 주면서 노지 야영을 하라고 하면 할까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것조차 싫다. 내 돈 들여, 내 의지로 텐트 캠핑 할 생각이 현재로선 1도 없다. 




청소년들의 세계잼버리대회를 보면서 너무 진지해졌나? 하하^^ 무슨 스카우트활동을 빈곤으로 연결한 감성팔이/추억놀이나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잼버리대회 문구만 보면 같은 생각이 나는 걸 어찌하랴? 내 기억이 이러한걸. 30년 뒤 한국의 어딘가에서 잼버리대회를 다시 한다고 하면 그때에도 같은 생각을 하며 참가한 학생들을 부러워하고 있을 거 같긴 하다. 


청소년기의 경험과 기억들이 이렇게 중요하다. 평생 특별한 장면으로 생각나고 때론 인생의 방향타가 되기도 한다. 언론에서 세계잼버리대회의 준비미흡과 폭염상황에 대해 많이 언급을 하고 있는데, 부디 행사 끝까지 안전사고 없이 잘 진행되어서 참가한 젊은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기억과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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