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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Mar 02. 2023

3.1절 단상

3월을 맞아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강한 대한민국을 꿈꾼다.

3.1절에 한국땅에서 일장기를 아파트 베란다에 게양한 역사적(?)인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일반적인 상식개념이 모두 같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할 수도 없고 그랬다가는 현대 문명을 이루지도 못했을 터이다. 사회가 계속 변화하면서 성장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들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일류시민사회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상식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자유는 서로의 존중과 배려 속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작은 소동은 정부의 공식 3.1절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의 기념사로 확대되어 더 큰 논란이 되어 버렸다. 일본을 미래의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듣고 나서 일장기 게양을 한 것이라는데, 대통령의 공식언어가 일반 국민들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곧바로 확인하게 되면서 기념사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가치체계에 좀 더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을 던져 주었다는데 의의를 둘 수도 있겠지만, 104주년 3.1절에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새벽기도모임에 참석했다가 음주운전자의 자동차에 치여 돌아가신 친구 할머님의 장례식에 가서 유가족들한테 좌우를 주시하지 않은 할머님이 잘못이었다고 얘기하면 친구의 마음은 어떠할까? 새 가정을 꾸리는 결혼식에서 주례자가 결혼은 3개월 지나면 바로 후회할 건데 뭐 하러 결혼을  하느냐고 얘기해 주는 게 축하의 말이 될까? 달리 보면 다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례식에서, 결혼식에서 당사자들한테 그렇게 얘기해선 안된다. 현실의 삶은 그렇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다른 말로 위로하고 다른 방식으로 축하해줘야 한다. 그게 인성이고 상식이다.




3.1절 기념식의 독립투사들 사진을 보면서 잠깐 그날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9년이 지났다. 정치사회경제적 여러 모습은 크게 달라졌겠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은 고단함과 피폐함 속에서 그냥 버티며 살아가는 그런 일상이었을 것이다. 억압받고 차별당했던 삶에서 불만과 치욕과 누적되며 만세운동이 기획되고 진행되었으리라. 당시 시청이나 경찰서 등 관공서에서 일하고 있던 조선인들은 기꺼이 3.1 만세운동에 다 같이 참여했을까?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지침아래 만세운동의 부당함을 알리고 주동자들을 구속했을 것이다. 자의던 타의던 일본의 녹을 받아 살던 당시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일본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가치체계와 이념적 논리들을 지속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사회교육제도를 고민하고 시행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세운동이 펼쳐지고 광복하는 1945년까지 26년이 지난다. 민간주도의 비폭력이던 만세운동은 정부의 강한 탄압을 떠나 만주 등지로 떠나 조직화/지하화하고 조선땅의 민초들에게는 만세운동의 정신만 남았다. 그렇게 억압받고 차별당한 일상은 26년 동안 계속됐으리라. 그런 오랜 기간의 시대적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쇄국하던 조선의 멸망은 당연한 것이었고 일본덕에 그나마 현대문물을 받아들여 생존하게 됐으며 일본과 하나 되어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보자고 꿈을 꾸게 되었을 것이다. 태어나 그렇게 교육받고 나이 30~40살이 되어서 가치체계가 변할 수가 있겠는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국가반석을 다져가던 중 6.25 전쟁 이후 무너진 사회기반체계를 재건하는데 지식층이자 산업계급이었던 사람들 (결국 위의 사고방식을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던 사람들. 나쁘게 말하면 친일파요 좋게 말하면 살고자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적응한 사람들)을 활용하면서 친일파 청산은 하지 못했다.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이다.


광복 이후 78년이 지난 2023년 3.1절에, 조선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는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누군가는 충격요법으로 아주 좋은 발언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미래지향적인 입장이 당연한 것이라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을 위해 초연히 자기 목숨을 버린 독립투사들의 영정 앞에서, 3.1 만세운동을 기리는 날에 이 말을 듣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황망하기 그지없다.   


정부와 관계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반대진영에서 얘기하듯 역사의식이 부족하거나 매국노의 입장에서 기념식 연설문을 쓴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일본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미래지향적으로 상호 협력하고 긴밀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상대방을 미래만 생각하며 다 잊고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1절 날 다방면에서 일본으로부터 피해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인 기념식에서 좀 더 배려와 공감의 범위를 넓혔더라면, 정부 관계자들이 좀 더 세세하고 주변을 돌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1 만세운동은 정부나 특정 단체가 주도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민간의 주도로 준비되고 일어나 들불처럼 번져간 시민운동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DNA에는 민초에서 시민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역동성은 누가 시켜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통찰과 자각을 통해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구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민사회의 장점과 존재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민초이자 시민이었지 정부와 관료, 정치인들이 이끈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시민사회는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견실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하되 바른 역사의식과 상식, 공감능력을 갖추면 좋겠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상황분석아래 돌봄과 나눔을 미래지향적으로 확산하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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