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구'는 누구인가

여행기 17 - 어머니 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어머니편 1

by 구르는 소

식구의 사전적 의미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한자를 분석해 보면 '먹을 식'과 '입 구' 글자를 쓰니, 먹는 입이 같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 그게 식구, 즉 가족이다. 그래서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직장동료들을 '한 식구'라고 비유하는 것이리라.


결혼하면서 아내한테 부탁한 게 있는데, 젊어서 혼자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요즘 사회분위기라면 바로 헤어질 사유가 되겠지만, 성격 좋은 아내는 당시 큰 고민 없이 그러자고 했다. 나는 장교로 군복무를 하며,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조금 모으긴 했지만 서울시내에서 20대 사회복지사 부부가 집을 장만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암으로 고생하시던 장모님께는 전셋집에서 아내를 살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터였다. 결혼 전 어머니와 같이 살던 전셋집의 전세금 일부와 우리 부부가 아껴 모은 자금을 합해서 서울 끝자락에 집을 구했다. 어머니한테 큰방을 내어드리고 우리 부부는 주방 쪽 끝방을 쓰면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에 결혼해서 21년을 한집에서 같이 살았으니 한 식구요, 한 가족이라 하겠다. 아이 셋을 낳았고 부부가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집안일과 아이양육을 책임져 주셨다. 21년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잘 컸고 집도 넓혀 왔으며 해외여행도 6명의 가족이 때때로 잘 다녀왔다. 부모를 모시고 사니, 한 식구가 되니 하나님께 축복받았다.




본격적으로 가족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일 큰 이유는 여행기 처음에 밝혔듯이 더운 여름날인 7월 말 8월 초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사이좋은 가족끼리라도 불쾌지수 높은 날 좁은 공간에서 매일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는 법이다. 바쁜 직장업무에서 벗어나 좀 쉬어 보자며 어렵게 휴가를 냈는데 시어머니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 때문에 서로 불편해하고 불쾌해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일단 어디로든 떠나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4남매의 형제들을 낳았지만, 형제들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어머니는 막내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막내아들 덕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해외여행에 나섰다. 아내는 아이들을 어머니한테 맡기고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감사함에 남편과의 북한 평양방문기회를 어머니한테 양보하였다. 어머니가 흔쾌히 손자를 돌보아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해주신 덕에 우리 부부는 열흘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감사함에 어머니는 나와 단둘이 중국 베이징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3명의 아이들을 어머니와 나, 아내가 한 명씩 맡아 고된 해외여행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족 해외여행의 시작 때에 어머니는 아들을 챙기며 친구가 되어 주셨는데, 이제 그 아들이 성인이 되어 할머니를 챙기고 있다.

10여 년 동안 해외여행이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연례행사였는데,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매일 같이 먹지는 않지만 어머니한테 당신이 낳은 4남매의 형제는 모두 '가족'일 것이다. 한 때는 4남매의 형제들이 내 '식구'이기도 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아이들 세명도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날 것이다. 매일 같이 한 자리에서 동일한 음식을 먹지는 않겠지만, 여행지에서 색다른 음식들을 함께 먹으며 낯설어했던, 과거의 특별한 순간들을 종종 떠올릴 것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순간들보다 해외 여행지에서 마주쳤던 음식들과의 특정한 순간들이 더욱 강하게 생각날 것이다. 그때 우리 6명의 가족들이 각자 기억해 주면 된다. '한 식구'로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가족여행의 의미가 특별하다. 부모님 더 늙기 전에 어서 짐을 꾸려서 같이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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