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18 - 어머니 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어머니편 2
태풍이 지나간 인도네시아, 휴일 낮의 롬복 시내는 조용했다.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숙소 근처 한인 여행사를 방문하니 내일이면 멋진 배로 바다에 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저녁에 예약금을 건네려고 길을 나섰다가 숙소 앞 부둣가의 보안 관리인에게 현지인 스노클링 배를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어부를 소개해 주었는데, 선박이 한인 여행사의 그것에 비해 너무 낡아 보였다. 하지만 가격이 1/3 정도라서 흥정 후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현지인 선박이야 두세 번 타봐서 가족들도 어려워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다른 일행들과 섞이지 않고 딱 우리 가족들만 태워준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이 어부가 데려가 준 스노클링 스폿은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가는 곳에선 살짝 거리가 있었다. 출발하기 전 내가 바다거북을 꼭 보고 싶다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인생에서 여러 번 선한 일을 해야 스노클링 중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 롬복 여행에서 바다거북을 직접 보고 가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어부가 배를 멈춘 곳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바다거북을 찾았다. 바닷속에 들어가니 다른 일반 관광객들이 근처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있는 지점은 맑은 물속이 보이면서 깊이가 낮은 지점이 끝나고 바로 암흑의 심연인 바다계곡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깊은 암흑은 너무 공포스러워서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물속 경계를 넘어갈 수조차 없었다. 왜 이런 데에 왔냐고 어부한테 물었더니, 어제까지 태풍이 와서 이런 곳이 아니면 바다거북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자기만 믿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살짝 공포심이 들어서 해안가 쪽 관광객들 배 근처로 가서 스노클링을 하며 바다거북을 기다렸다. 30여 분쯤 지났을까, 어부가 '터틀! 터틀!'을 외쳤다. 드디어 바다거북이 나타났다.
구명조끼를 벗은 채 물속에서 재미와 공포를 함께 즐기고 있던 아들과 나는 소리를 지르며 가족들을 불렀고 반대편 관광객들도 우리 가족 호들갑에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현지의 노련한 어부 덕에 나는 바로 눈앞에서 바다거북을 직관할 수 있었다. 얕은 산호초에 나타났던 바다거북은 2분 정도 헤엄치다가 암흑의 심연으로 되돌아갔다. 물속에서 바다거북을 따라 헤엄쳐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 가족은 바다거북을 운 좋게 2번이나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어부한테 들으니 자기가 보기에 150살 정도 된 거북이라고 했다. 그 바다거북이 진짜 150살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예전 필리핀 팔라완 섬의 낮은 바닷가에서 어머니는 정말 재미있게 스노클링을 하셨다. 그때 연세가 70세였는데, 태어나서 스노클링을 처음 해보셨다고 했다. 물속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물에 둥둥 뜨는 게 재미있으셨는지 가족들 중 물속에서 제일 늦게 나오실 정도였다. 4년 후 인도네시아 롬복의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는 몸이 4년 전과 달랐다. 구명조끼를 입고 계심에도 바닷물에 뛰어들자마자 다리에 쥐가 났다며 배의 안전바를 붙잡았고 결국 현지인 어부가 물속에서 끄집어내어서야 배 위로 올라오실 수 있었다. 70세 때는 '와~ 우리 어머니 건강하시네'였는데, 불과 4년 만에 어머니의 연로하심을 눈앞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나에게 나타났던 150살의 바다거북은 2~3분의 시간 동안 유유히 헤엄치다가 다시 저 깊은 심연의 바다로 사라졌다. 지금도 가끔 그 암흑의 바다가 꿈에 나타난다. 죽음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저렇게 생겼으리라. 바다거북은 살 만큼 살아서 아무렇지 않게 저 심연의 바다로 헤엄쳐 가는 것이런가! 아니면 이제 고단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러 다시금 심연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인가!
깊이 1미터의 풀장에서 해맑게 물장구를 치던 아들은 깊은 바다에서 구명조끼 없이 수영을 즐기는 나이대가 되어 내 옆에서 바다거북을 같이 바라보고 있다. 바다거북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기나긴 인생을 살아온 모친은 이제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바닷물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바다거북이 사라지는 심연의 바다 위로 모친이 탄 배가 떠있다. 롬복의 바다거북은 내게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암흑의 바다가 너무 인상 깊었나 보다. 한순간의 짧은 장면이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거북은 그렇게 떠나갔다.
롬복의 스노클링 사건을 기점으로, 이후 여행지에서 모친의 나이 듦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자마자 다리에 쥐가 난 것이나 배 위로 혼자서 올라오지 못한 일들이 어머니 본인도 꽤 신경이 쓰이셨는지 그 뒤로 활동이 많이 위축되셨다. 여행 중 방에서만 머물려하시고 가급적 움직임은 최소화하시려는 게 느껴졌다. 되도록이면 한국어 방송이 나오는 호텔급의 숙소를 요구하고 이것저것 잘 드시던 현지 음식들도 한식 중심으로 바뀌어 나갔다. 자신의 '늙음'을 몸이 직접 알아챈 순간, 정말 늙어버린 것이다!
이제 어머니가 여행하는 곳들은 마지막 방문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예전에 가보셨던 곳들도 다시 가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본인에게, 자식들에게는 아쉽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어쩌랴! 60세 넘어서 손주 자식들과 같이 시작한 해외여행은 어머니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픈 무릎에 진통제와 파스를 잔뜩 짊어진 여행가방은, 설레는 느낌이었을까 고된 삶의 연속이었을까? 가기 싫은 여행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것은 아니셨을까?
깊은 심연으로 혼자 유유히 헤엄쳐 들어가던 바다거북을 어머니가 직접 보시지 못한 게 잘된 일일 수도 있겠다. 공포스러운 암흑의 바닷물을 기억하면서 죽음을 떠올릴 것을 연로하신 어머니가 여행 추억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을 것이니. 40대의 나도 깊은 암흑 바다를 배경으로 헤엄치는 거북이를 보면서 죽음을 떠올렸던 터였다. 바다거북을 본다는 여행의 설렘도 컸지만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암흑의 바다도 무척 공포스러웠다. 죽음의 문 앞에 선 기분이었다. 그 위로 헤엄쳐 갔다간 미지의 힘에 의해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내도 가끔 그때의 공포감을 얘기한다.
3대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부부와 내 모친과의 추억은 더 꼼꼼해졌을까? 할머니와 아이들의 인생 간극은 조금 더 짧아졌으려나? 가진 돈은 유한한데, 해외여행의 경비 부담을 우리 가족이 극복할 수 있었으려나? 결과는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더 일찍 가족들이 함께하는 여행을 시작했더라면 더욱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았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아이들은 너무 금방 자라고 어머니의 연로함도 금방이더라.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는 부부의 시간도 금방 흘러간다. 지금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내 허리춤에 있던 아들은 어느덧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커버렸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산 바다거북과 함께 우리 가족 모두 천천히 늙어간다. 시간은 성장을 넘어 죽음을 향해 서서히 헤엄쳐 간다. 지나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연로하신 어머니의 가족해외여행에서도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내게 여행을 제안한다면 나도 진통제와 파스를 챙겨 따라 흔쾌히 따라나설 것이다. 손자 또는 손녀를 돌보며 여행을 하자고 하면 내 어깨 위 목말 태웠던 아들을 떠올리며 그러자고 할 것이다. 어머니의 여행후기도 나와 같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경제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부모와 함께 여행길로 나서보자. 여행기 한 권 뚝딱 나올 것이다. 가족 모두에게 시간은 의외로 빨리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