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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6. 2020

일석이조

나를 애도하는 친절

나는 음식점이든 커피숍이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장에 가면 최대한 점원분들에게 예의를 갖춰 행동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의식적으로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선천적으로 이런 걸 의식하는 타입이라거나 가정교육을 특별히 엄하게 받았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단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편의점, 노래방, 술집, 피시방 등 수많은 일용직을 전전하는 동안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행하는 사람을 몹시 많이 겪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물리적인 폭력을 휘둘렀고, 이제 막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나는 일용직 서비스업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토록 보잘것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노비를 대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을 한없이 상대해가며 이십 대를 보냈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무렵 어렸던 내 마음의 기둥 중 몇 개인가가 분명하게 부러져버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나니, 직장을 구해서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이제는 어느 매장에 가더라도 아르바이트생들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 달랐지만 계산대 앞에 위태롭게 선 그들을 보고 있으면 한달에 300시간을 일하고 85만 원을 받다 쓰러져버린 스물한 살의 내가 겹쳐 보였다. 어디를 가도 어리고 약했던 과거의 내가 서 있었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그들에게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최대한 예의를 갖춰 행동하려는 습관이 생겼다.이것은 자애나 이타심에서 나온 선의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회적 폭력에 두들겨 맞아 죽어버린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의도야 어찌 됐든지 간에 그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좋고 나는 마음을 위로받는 경험을 해서 좋다.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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