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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6. 2020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이십 대 초반 무렵에 갑자기 귀가할 장소가 없어졌던 적이 있다.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자면 길고 복잡 하지만 어쨌든 어느 날 뜬금없이 돌아갈 수 있는 집 이 없어져버린 상태에 처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에 남은 전 재산을 떨리는 손에 쥔 채 피시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당시의 경험은 아직도 내 정서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 

갈아입을 옷이 없는 것, 

테이블에 엎드려 자야 하는 것. 


물리적인 불편들도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 없는 독립적인 휴식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살던 곳은 그렇게 좋은 집이나 건강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일단 집에 들어와 내 방에 누우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온전히 혼자만의 독립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사라져버리니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외부에 끊임없이 노출된 상태로 지내는 것은 신경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이 스트레스 는 경감되지 않고 계속해서 누적되어 사람의 마음을 급속도로 망가뜨렸다. 돌아갈 집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외부와 단절된 독립적인 내 공간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다행히도 그렇게 생활하는 기간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정상적인 정서의 궤도에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경험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중심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시꺼먼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가 느껴질 만큼 무섭다. 그 경험을 한 이후로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그래도 나에겐 돌아갈 집이 있어’ 


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읊조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마음의 큰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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