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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7. 2020

굴비 용달차

그날의 황망함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이었던 10년 전쯤에 장기간 프리랜서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온종일 집에 있다보면 각종 식자재를 파는 용달차들이 자주 지나다니는데 그날은 굴비를 파는 차가 왔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한 마리 얼마, 한 마리 얼마 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굴비가 먹고 싶어져 저절로 침이 고였지만 자금 사정이 대단히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런데 확성기로 울려 퍼지던 반복 멘트가 갑자기 멈추더니,


“어머니~ 줄을 서셔야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하하~ 아뇨, 줄을 서셔야 한다고요~

물건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요~ 하핫~

어머니, 잠깐만요~ 순서대로 판매를 해야 해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면서 리얼타임 판매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굴비를 사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들이 거세게 몰리는 듯, 어머니들을 통제하는 판매자의 목소리가 더욱 분주해져갔다. 저 정도로 사람이 몰릴 정도면 쿨매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흔들렸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 원짜리 하나를 움켜쥐고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골목길을 두 번이나 꺾어 들어가 드디어 굴비 파는용달차를 발견했는데 용달차 옆에는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판매자로 추정되는 산적 같은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확성기에서는 여전히, “어머니~ 하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어머니~ 하하” 하는 녹음 음성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쥐고 풀린 눈으로 한참이나 그 용달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의 황망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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