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황망함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이었던 10년 전쯤에 장기간 프리랜서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온종일 집에 있다보면 각종 식자재를 파는 용달차들이 자주 지나다니는데 그날은 굴비를 파는 차가 왔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한 마리 얼마, 한 마리 얼마 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굴비가 먹고 싶어져 저절로 침이 고였지만 자금 사정이 대단히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런데 확성기로 울려 퍼지던 반복 멘트가 갑자기 멈추더니,
“어머니~ 줄을 서셔야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하하~ 아뇨, 줄을 서셔야 한다고요~
물건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요~ 하핫~
어머니, 잠깐만요~ 순서대로 판매를 해야 해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면서 리얼타임 판매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굴비를 사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들이 거세게 몰리는 듯, 어머니들을 통제하는 판매자의 목소리가 더욱 분주해져갔다. 저 정도로 사람이 몰릴 정도면 쿨매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흔들렸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 원짜리 하나를 움켜쥐고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골목길을 두 번이나 꺾어 들어가 드디어 굴비 파는용달차를 발견했는데 용달차 옆에는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판매자로 추정되는 산적 같은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확성기에서는 여전히, “어머니~ 하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어머니~ 하하” 하는 녹음 음성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쥐고 풀린 눈으로 한참이나 그 용달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의 황망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