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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Oct 10. 2022

취미 상실

나의 취미는 10대 때부터 게임, 소설, 영화, 만화였다. 하지만 이제는 취미가 없다. 저 네 가지를 여전히 즐기고는 있지만 이제는 뭔가 생활의 일부처럼 정착해버려서 마음의 환기가 되지 않는다.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것을 취미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래서 새로운 취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아노도 쳐보고, 뜨개질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어느 것에도 정착할 수 없었다. 금방 질리거나 지친다. 자꾸 생각나고,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싶고, 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10대 때처럼 풍부한 감수성과 온몸이 간질거리는 호기심을 중년이 될 때까지 유지하는 건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새끼일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물고 할퀴고 난리를 피우지만 나이가 들면 그 무엇에도 시큰둥해진다. 어쩌면 모든 동물의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취미 없이 살아가기에는 삶이라는 것이 너무도 가혹 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흥미로운 것들을 찾는다. 빵집에 들렀다가 문득 ‘응? 어쩌면 나 베이킹이 하고 싶을지도?’ 하는 생각이 들면 메모해 둔다. 금방 사라지는 감각이기 때문에 꼭 적어 놓아야 한다. 나중에 그 메모에 적힌 리스트를 보면서 어떤 걸 해볼까? 하고 골라본다. 


베이킹은 오븐을 사야 하니까 어려울 것 같고... 테니스는 워낙 스포츠를 싫어하기에 의욕이 안 생기고... 뮤지컬은 좋긴 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없고... 드럼은 레슨실이 너무 멀고... 이런 식으로 다 기각되면서 결국 또다시 게임, 소설, 영화, 만화로 돌아온다.


앞에서 취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쓰고 보니 별로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다. 50대부터 새로운 인생을 산다거나, 노인이 되어서도 새로운 뭔가를 즐기는 분들의 이야기는 많이 보고 듣지만 아무튼 나는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삶에는 취미는 필요하기에 취미 탐색은 계속 이어 나갈 생각이다. 10대 때처럼 접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거나 영혼을 활활 불태울 수 있는 뭔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성냥으로 불붙인 작은 모닥불이라도 괜찮으니 그저 잔잔한 온기를 꾸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면 만족한다. 정말로 딱 그 정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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