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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Dec 18. 2022

선생님 지금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계세요

얼마 전 소위 맹장 수술이라고 불리는 충수염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복부를 절개하고 내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팠다. 전신마취가 깬 직후 통증이 너무 심해서 바로 간호사 선생님께 진통제를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주사했다고 하시길래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이토록 아픈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마취가 덜 깬 몽롱한 정신으로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건 거짓말이야... 라고 읊조렸던 부끄러운 기억이 남아 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이제는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다. 오늘 문득 샤워를 하면서 수술 부위를 살펴봤더니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가르고 벌려서 가위가 들어갔다 나온 게 분명한 그 부위가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막혀있었다. 


이렇게 회복될 때까지 내가 한 노력이라고는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잘린 피부조직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머리를 써서 뭔가를 하지 않았다. 그냥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기다렸을 뿐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육체의 회복보다는 마음의 회복과 관련된 내용에 자주 인용된다.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데에도 육체의 상처가 회복될 때처럼 절대적인 치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육체도 마음도 물리적인 노력으로 회복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몹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체의 회복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게 마음의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실수를 하는 일이 많다. 반추, 과장, 억측, 극단적 사고 등으로 나도 모르게 상처를 후벼파게 된다. 상처를 후벼파면 당연히 회복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 육체의 경우에는 너무 아프고 끔찍하니까 당연히 그러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상처는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건드리게 된다. 너무 아픈데도 멈출 수가 없다. 기이하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기간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후벼파고 모래를 뿌리는 행위를 옆에서 알려주거나 말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스스로 알아서 잘 회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상처가 심할수록 이런 회복을 늦추는 행위를 일삼기 쉽고, 상처가 작은 경우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훨씬 더 빨리 나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상처를 후벼파는 지인을 발견하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말리는 편이다. 선생님! 지금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계세요! 라고 큰 목소리로 외쳐서 알려준다. 물론 말리는데 실패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발견할 때마다 말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 마음에 상처를 후벼파는 경우가 많다. 보통 후벼파는 동안에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잘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도 누가 발견하면 알려주면 좋겠다. 선생님! 지금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계세요! 하고 큰 목소리로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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