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친구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 셋은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았다.
마침 그날은 가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놀라운 건 아침부터 비가 내렸음에도 손에 우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산은 어디에다 두고 왔냐는 물음에 거추장스러워 놓고 왔다는 둘의 대답이 돌아왔다. 비교적 큰 우산을 가져온 나는 우산을 씌어줄 요량으로 다가서니 좁다며 그냥 맞고 가겠단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도 새로 산 코트인데 다림질 안 해도 되겠다고 말하는 녀석과 호주에서 머리를 길러 돌아오자마자 히피펌을 하고 나타나 호주에선 어차피 우산을 잘 안 쓴다며 비 맞으면서도 웃는 녀석을 보며
비 맞기를 싫어해 항상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니는 나는 손에 우산을 꼭 쥔 채로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고 느꼈다.
조금 걸어 신도림에 있는 한 양꼬치 집에 도착했다. 비를 털어내며 자리에 앉자, 양꼬치를 구울 숯을 넣어주셔서 금세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자 만나는 빈도수가 자연스레 줄었고, 한 녀석이 호주로 떠나며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꼬치 앞에서 그동안 지냈던 근황을 전하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 다 접점이라곤 없는 다른 일을 하다 보니 각자의 경험이 무척이나 새롭고 재밌다. 가벼운 이야기로 웃다가도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할 때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해 준다.
그중 한 친구가 교제하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는데, 꽤 난처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인즉슨, 초대받아 식사하며 아버님께서 질문을 몇 가지 던지셨는데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질문을 들어보니 “00 씨의 5년 혹은 10년 뒤의 모습은 어떨 것 같아요?” 라던지, “육체와 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나 또한 듣자마자 대답하기 상당히 까다로웠겠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들이었다.
어찌어찌 대답은 마쳤는데, 어떤 의도로 물으시었는지 잘 모르겠고, 대답 또한 만족스러웠는지 아리송하다며 머쓱하게 웃음 짓는 친구의 볼은 화로의 온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약간은 발그레해져 있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선 어떤 질문을 했어도 대답이 힘들었을 거라며 두 친구 손에 든 술잔과 내 손에 든 제로 콜라는 공중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모였다가 다시 저마다의 입으로 흩어졌다.
두 녀석은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혼자 자리에 남았다.
그 순간 어느 생각과 맞닿았는데, 사람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니는 회사, 나온 학교, 입는 옷이 없을 때의 나는, 또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마치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명함이 없고 껍데기가 없어졌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을까.
이 관점에서 내 친구가 받은 질문들은 친구의 직업, 재산, 학력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지가 궁금한, 내가 생각하는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그 친구보다 나은 대답을 했을 거란 자신도 보장도 없었지만, 적어도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묻는 질문은 달가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친구에게 짧게나마 스쳐 간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그 친구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어느덧 각자 양꼬치를 양껏 비우고 친구가 추천한 마라 양꼬치를 처음 먹어봤는데, 알싸하고도 감칠맛이 있는 게 내 마음에 들었다.
양꼬치에 어떤 양념을 더 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날 수 있지만 결국 본질적인 맛은 좋은 고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양념이라는 이름으로 더해진 껍데기 사이 얼마나 훌륭한 본질을 키울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또 그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바라본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