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등산기(2021.6)

by 김영빈

과거 블로그에 적었던 글입니다.


지리산 등산기

#0. 첫 느낌

초여름의 산하는 함성을 지르듯이 푸르고 강성하였다. 푸른 산음을 품은 강은 사람의 몸속으로 바로 흘러들어 왔으며, 숲을 흔드는 바람 속에 젊은 계절의 비린내가 가득하였다.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1.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산행을 하며 제일 낯설었던 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습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나한테 하시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같은 아파트 주민도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쳐도 데면데면하기에.

그렇게 몇 번 겪고 나니 어느샌가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있더라.

오고 가는 가벼운 한 마디가 내심 기분을 좋게 만든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언제부터 인사가 인색해져 버렸을까.

#2. 내리막길

이번에 느낀 건데,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훨씬 더 힘들었다.

올라갈 때는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어 힘이 났는데,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긴장이 덜 해서 그런 건지.

시큰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겨우 내려왔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마냥 올라서기보다 내려서기가 힘든 것.

우리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3. 거리

정상에 다다를 때쯤, 사실 다리가 욱신한 건 전부터였고 지쳐서는 속으로 '할 수 있다'만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와의 싸움 중이었달까.​

"좀만 천천히, 거리 유지하면서 가자"

뒤를 보니 친구가 다리 근육이 놀라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계속해서 거리 조절해 주는 형이 고마웠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난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4. 채움

어쩔 때는 모든 것이 헛되어 끝없이 내리쳤다.

나의 시간엔 무엇을 담아야 할까.

부족함의 뿌리에서 수줍게 고개 내밀 미덕을 찾는다.

조급함과 성급함이라는 줄기를 지나 피어날 꽃을 기다리며.

#5. 굳이

위와 같이 요즘에는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시도나 노력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잠깐의 시간이나 여유가 생기면 내게 부족한 어떤 것을 채워야 할지, 언제 채워질지, 또 나에게 무엇을 담아야 할지 등의 고민들.

아버지뻘 되는 등산객과 정상에서 만나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잠깐 담소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제가 제법 여럿이었는데 그중엔 남는 시간에 대한 불안함과 같은 주제도 있었다.

조용히 들으시곤 담담히 하시는 말씀

"굳이 뭔가를 채우려 하지 않아도 돼요."

쉼 없이 달려갈 줄만 아는 인생 후배들한테 툭 던진 위로 같았다.

#6. 넘침

무언가를 계속 채우기만 하려다 보면 이미 적정량인 곳은 넘칠 수도 있겠구나.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살아가는 강단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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