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by 김영빈

<영화 <얼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을 떴는데 밤과 같다. 보통은 암막 커튼 틈새로 햇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기 마련인데 비가 오나 보다.


쉬는 날 비가 오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출퇴근하며 꿉꿉함을 몸소 겪지 않기 때문일까.



오전에 일정이 비어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자주 혼자 보러 가기도 한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배우 박정민(우원박)을 좋아해서,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맨발에 쪼리와 같은 편한 신발을 신으면 빗길이 두렵지 않다.



평론가 이동진 씨는 책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생각과 비슷하거나 닮은 책, 그리고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책.


영화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킬링타임용”이라고 불리는, 쉽게 몰입할 수 있고 심오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감독이 영화 한 편에 넣어놓은 메시지, 미장센을 보며 나름 그 뜻을 유추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에 가까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에서의 얼굴의 뜻은 극 중 동환(박정민)의 어머니이자 영규(권해효)의 아내인 정영희의 얼굴을 말한다.


감독은 영희의 얼굴을 타인에 의해 묘사되도록 두었다.


“괴물 같다”


“장애를 가진 것만 같다”


“끔찍이도 못생겼다”


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장치는 관객뿐만 아니라 극 중 배우들에게도 흥미롭게 작용한다.


어머니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동환은 우연히 발견된 어머니의 시신을 통해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얽힌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들은 어머니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만 어머니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상 관객과 같은 무지에서 시작해 같은 정보를 받으니 같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극 중 동환의 아버지인 영규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시각 장애인이다.


그는 장님임에도 도장을 만드는 실력이 뛰어났는데 도장을 판매하며 만나게 된 영희의 따뜻한 관심에 호감을 느껴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좋은 감정도 있지만 주변 상인들의 너스레였는데,


“저렇게 이쁜 처자가 관심을 주니 얼마나 좋겠냐”


“이쁜 얼굴을 가진 여성이니 누가 채가기 전에 얼른 잡아라”


라는 말들이었다.


자신에게 처음 호의를 준 여자가 얼굴도 아름답다는 소리에 덜컥 결혼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



감독은 이렇게 두 명의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버지인 영규와


어머니의 존재 자체를 몰라 모든 것을 타인의 구설로만 알아야 했던 아들인 동환.



결혼 이후 영규는 다른 이들을 통해 자기 아내의 외모가 끔찍이도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선


모두가 자신을 멸시하고 속였다는 비참함에 영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동환 또한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살인 등 모든 것을 알게 되면서도


영화 막바지엔 끝끝내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추악하다고 평가받는 그녀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마침내 확인한 어머니의 얼굴은 평범했고 동환의 놀란 모습과 함께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생각해 보면 감독은 영규와 동환뿐만 아니라, 관객도 이 영화에 참여시켰다.


나도 영희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 전까지 ‘얼굴에 화상 자국 같은 것이 있었나?’와 같이 극 중 다른 인물들에 의해 묘사된 대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과는 다를 것이라 예단하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얼굴에 대한 묘사는 결국 우리 사회의 소문과도 같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듣고 흘리며 소문의 주체에 대해 쉽게 판단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 일들에 대해 쉽게 선입견이 생긴다.


우선 비방하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남들보다 주관이 뚜렷하다고 생각해 오며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떤 낌새가 보이면 과연 소문이 사실이었나 라는 생각을 했던 나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영화관에서 조금 더 앉아 여운을 느낀다.


영화관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카더라 뉴스 하나하나에 여론이 휙휙 바뀌는 대중들처럼,


유독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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