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연애 끝에 결혼해 이제 15년 차 부부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화이트데이를 챙기며 ‘날 닮았다’며 꽃과 디저트를 사 오는 신랑.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듬직한 존재인 나의 배우자 덕분에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감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일까. 조금만 서운해도 마음이 상하고, 열 번 중 아홉 번은 내가 잘못했어도 신랑의 한 번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이만큼 나를 이해하고 참아 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내가 참 배우자 복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 기간 교제하다 결혼한 나와 달리, 나의 할머니는 언젠가 본인은 할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시집을 왔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 그런 일이 흔했다고 하셨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걱정도 되고 불안도 되고,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낯선 집으로 시집와 할머니는 시부모님을 모시며 다섯 형제를 낳고 사셨다. 내게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었지만, 할머니에게는 꽤 괴팍한 배우자였던 것 같다.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자주 구박하셨다고 한다. 그 힘든 시절에 대해 할머니는 당신 손주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하시지는 못했다. 다만 가끔씩 할아버지에 대한 흉을 보시며 지나가듯 푸념을 하시곤 했다. 나는 그저 그 정도의 푸념으로만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세월이 흐르며 ‘회장님 사모님’으로 불리며 사신 시간이 어느 정도는 보상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고 스치듯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살아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돈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냐인 것 같다. 아주 어린 나이에 낯선 집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아온 우리 할머니. 많이 외로우셨겠구나,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