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것도 사랑이었구나.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연인이 될 것을 직감했다. 여자에게 남자는 어른스럽고 멋진 사람이었고, 남자에게 여자는 다채롭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서로는 서로가 다른 형태와 톤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쩌면 그 '다름'이 그들의 호기심과 설렘을 자극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연애를 시작하고 반년 후 어느 날, 그들은 그 동안 종종 그랬던 것처럼 어떤 문제로 인해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 싸움은 서로가 대화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완벽한 T형 인간에 가까운 남자와, F형 인간에 가까운 여자는 서로를 또 다시 한번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가 제시하는 원인과 결과, 해결방식이 우선인 말에 상처를 받는다. 남자는 여자의 감정적 상처에서 비롯된 비꼬는 표현이 꼴보기가 싫다. 결국 그들의 감정은 상할대로 상하고, 모든 일정은 취소된다.
남자는 생각한다. 내 연인과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다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겠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여자친구가 언제나 너그럽고, 현명하고, 착하기를, -그래서 개인적으로 복잡한 시기를 겪고있는 자신의 상황에 그 어떤 방해도 되지 않기를 - 원하는 남자의 기준에 자신은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다고. -- 하지만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그건 여자가 그렇게 하겠다고 남자에게 약속하고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러번 그렇게 남자를 붙잡은 적이 있다.
사실 그들의 관계는 시작조차 쉽지 않았다. 주요한 원인은 '남자가 처해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남자는 사실 연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상과 삶이 버거웠다. 그 외에 어떤 존재도 자신을 추가적으로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여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를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을 키워가는데 적합하지 않은 타이밍일지라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 그는 (그녀의 바람대로) 자신의 일상을 양보했고,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사랑을 얻었다.
사랑은 시작되었지만 이별의 위기 또한 여러번 맞게 됐다. 이번에는 서로의 '다름' 때문이었다. 각자는 각자의 행동에서 상처를 받았다.남자는 여자가 이해되지 않았고, 여자는 남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해결 방식으로 이별을 제안했다. 여자는 반대였다. 이별을 거부했고, 다시 노력해보자고 매달렸다.
남자가 말한 이별은 반년 동안 대여섯번이나 됐다. 그 때마다 그럴수 없다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내가 잘해보겠다고 했던 여자는 이제 - 이 남자가 다툼이 생기면 언제든 자신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불안하다. 어떻게 사랑하는데 이별을 (그렇게나 많이) 말할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미친다. 어쩌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물이 나기도, 야속하기도 하다. 언제든 자신은 이별을 통보받을 수 있는 '완벽하지 않은' 여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괴롭고 슬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갑자기 깨닫는다. 아니, 그건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었구나. 어쩌면 이별은 그가 사랑하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
남자에게 사랑은 '떠나보냄'의 형태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그것이 자신의 상황이든, 성격이든, 말투든, 뭐든지 간에. 스스로가 이별을 완벽하게 원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이 관계에서 '나를 없애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만나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가길 바래-이별로 인해서 겪게 되는 자신의 고통은 그 다음 순위다. 그는 기꺼이 그 고통을 견딜 생각이다.
여자는 그 반대다. 그녀에게 사랑은 '포기하지 않음'이다. 정말로 둘다 이제는 안되겠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알아나가는 것이, 이 관계를 최선을 다해 유지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자가 생각한 '배려'로서의 이별은, 그녀에게는 전혀 배려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의지는, 헤어짐으로 인해서 겪게 될 고통이 너무나도 두렵다는 것에서도 기인한다. 남자가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겪게 될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괴로움보다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 아하, 어쩌면 정말로 이기적인 것은 그녀였을지 모른다.
비로소 서로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깨달은 그녀는 곰곰히 생각한다. 그는 나를 사랑한 것이었구나, 그리고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떠나보냄'이, 어쩌면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큰, 내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일수도 있겠구나. 내 감정을 조금은 뒤로 하고, 내가 고통스럽고 아프더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게 그에게 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일 수 있겠구나라고.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 그와의 이별을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고하게될 언젠가의 이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냄'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녀가 생각했던 '포기하지 않음' 이라는 사랑의 형태는 그에게는 집착과 괴로움이었을 수 있다-마치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그의 이별이 '배려'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남자의 'the right one'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우습게도) 그의 운명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넘치는 자신감에서 기인했든, 자의식 과잉에서 기인했든 이 생각은 지금까지 그녀를 이 관계에 집착하게 한 근원이었다. 사실 그녀는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그 남자에게 그리 적합하지 않은 스타일의 여자였다. 나의 어떤 면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판단해도, 막상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이 그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남자가 원하는 '여자친구'로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은 한결 사라진다. 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절실한 사람은 나지만, 동시에 부족한 사람이다 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이 관계가 운명적이고 고귀한 것이 아니고, 흔한 남녀의 사랑하는 이야기 중 하나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의 이별이 어쩌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더 큰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만약 이 관계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을 힘들게 한다면 기꺼이 끝내는 것이 사랑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 그들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 그동안 그녀는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이상에만 가득 빠져있는 아이 같았다. 비록 그것이 진심이었을지라도, 잘못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대체로 초연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에게서 이별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꽤 많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그를 사랑하는거지, 이별을 사랑하는게 아니니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