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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Feb 10. 2021

어쨌든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소싯적에 사표 안 써 본 사람 있나


2013년 4월 어느 날, 사무실 옆 비상계단에 쪼그려 앉아 포털 검색창에 '인생 실패자'를 검색해보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좌절, 낭패감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으로 지푸라기 잡듯 무언가 도움이 될까 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위안을 얻고 싶었나 보다.




대학 졸업 전, 운 좋게도 시엠송이 아주 유명한 전자제품을 유통하는 대기업 계열사로의 취업에 성공했으나 20대의 젊은 혈기에 인사발령 과정의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일 년 반 만에 걸어 나왔다 4월이었다. 마지막 퇴근길엔  비가  왔던 걸로 기억한다. 우산이 없었다.


두 달을 쉬고 이번엔 전공을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방송, 광고, 항공, 영화, 잡지와 관련된 조그만 회사에 들어갔다. 동료들은 다들 멋있는 사람들이었고 또래의 남녀가 유독 많았기에 우리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대학생들처럼 어울려 다녔다. 오너의 독특한 경영방식 또한 지금 생각하면 정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특수한 성격의 회사다 보니 포지션이 애매했고 자기 발전의 기회가 없었다. 고민 끝에 사직의사를 밝혔고 그때도 4월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 회사에서 중국음식을 거하게 시켜주었고 먹고 가라는 걸 마다하고 도망치듯 나왔었다.


석 달을 쉬었다. 마음은 조급해졌다. 내실 있는 언론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이는 이미 삼십을 훌쩍 넘겼고 경력이랄 것도 없어서 몇 차례의 고배를 마신 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뉴스전문채널의 온라인 분야를 담당하는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신사업실패, 부서와해, 재무팀과의 갈등, 사양길에 접어든 업무 등으로 2년 만에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무실 옆 비상계단에 쪼그려 앉아 '인생 실패자'를 검색해보았다. 2013년 4월이었다.




2013년 5월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공무원 시험과 이자까야 창업.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아는 분야가 결코 아니었다. 깊은 고민후 위험부담이 덜한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4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미 결혼도 했었기에 가계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열심히 하면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많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고 일관적이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경력도 써먹기 힘들었기에 '안정'이라는 주술적인 단어만을 되뇌며 공시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수험생활은 좋은 기억이다. 대부분의 공시생들이 떠올리기 싫은 고생한 시간으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도 열정적이고 활기 하루하루를 살았었다. 꽤 넓은 아파트에서 시작했던 신혼집의 방 하나를 서재로 만들고 그 가운데 창을 향해 널찍한 책상을 두었고 그 창 너머에는 산이 가까이 있었다. 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을 느끼고 꽃을 찾아 춤추듯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관찰하기도 하며 호접지몽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는 날들이었다. 가벼운 등산을 겸할 수 있는 10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었고 식대는 고작 3000 원이었다. 빨리 합격하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내 경우에는  '재밌게 ' 공부하길 추천한다. 국어는 원래 대학시절 국문과의 전공수업을 들을 만큼 정서법에 관심이 있었고 문학에도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한국사는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재밌게 하는 과목이고 영어는 그냥 기본 베이스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의외였던 게 행정학이었는데 처음에는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 갈수록 우리 사회와 밀접한 현실 정치와 조직 생활에 적용되는 포인트를 찾게 되어 지금도 가끔 학습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1년을 보낸 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모든 시험을 쳤고 불안감에 떨어진 시험도 있었고, 자신감에 수석을 한 시험도 있었다. 먼저 합격한 곳의 연수를 받던 중 서울시에서 합격통보를 받았고 한 곳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서울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기로 했다.




다음번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 느꼈던 감정, 사기업과의 비교, 복지제도 등에 관해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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