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파트는 나에게 꿈의 주거형태였다. 내 유년시절 초기부터 중학교 졸업 무렵까지 나는 지방 소도시의 한옥과 일본식 건축 스타일이 혼재된 하이브리드 목조주택에 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낡아있었던 이주택은 근 40여 년의 제 몫의 수명을 다한 뒤 2015년경 철거되었다. 중학생이 되고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 딸려 있는 방에서 대학 입학 때까지 살았다. 다행히 누나들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며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딱히 좁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2010년 경 어머니가 장사를 접으시면서 아파트에 들어가셨으니 30년 만에 아파트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나도 서른셋에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으로 아파트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도 태어나고 편리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이러저러한 사정에 따라 춘천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살 집을 구하면서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역시 편리한 아파트를 구할 것인가?가성비 좋은 빌라? 아니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전원주택?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왕 춘천으로 가는데 이제는 실컷 살아봐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아파트로 가기는 싫었고 단점만이 결합된 빌라는 더더욱 싫었다. 그래, 전원주택에는 지금 이 시기에 살아보는 것이 맞다!
집을 구할 때의 조건을 몇 가지 두기로 했다.
1. 일단 무조건 매매는 하지 않을 것
전원주택의 경우 아파트에 비해 매매가 쉽게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축 이후 가격이 꾸준히 내려가는 감가상각의 법칙을 따르기에 재산가치도 보전이 되지 않는다.(사실 아파트가 오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전원주택의 삶이 우리와 잘 맞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잔디 깎기, 건물관리 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2. 외딴곳의 나 홀로 전원주택은 피할 것.
이건 장단점, 호불호가 있는 부분인데 프라이버시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주택을 구하겠지만 시내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와 직장에 출근하는 어른이 있는 집에서는 시내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를 키우는 집이 더러 있는 타운 형태의 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 범죄나 응급상황 발생 시에도 도움이 된다.
3. 가족 모두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이 나올 것.
아침에 출근, 등교, 등원을 자차로 함께 할 예정이기에 와이프의 직장을 마지막 종착지로 큰아이의 초등학교와 둘째의 유치원이 동선상 거쳐 지나는 곳으로 정해야 했다. 되도록 일분일초라도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도록 스케줄을 짜기로 했다.
춘천의 모든 부동산 정보가 모인다는 커뮤니티를 매일같이 들락날락하였지만 전원주택이 임대로 나온 집은 많지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간간이 나오는 임대매물을 네댓 군데 둘러보다 보니 우리의 조건에 맞는 집을 다행히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 좋은 주인분도 옆집에 살아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마침 나와 우리 딸이 좋아하는 진돗개도 키우고 있어 따로 멍멍이 가족을 만들어 주지 않아도 되었다.
3월부터 살게 될 마을. 총 12~15가구가 모여있는 타운으로 시내와 접근성이 좋고 집과 집 사이 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입주를 앞두고 집을 어떻게 꾸밀지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집. 우리 가족의 색깔, 취향이 드러나는 집. 그런 개성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몰개성의 공간이다. 물리적 구조부터가 옆집과 다를 바가 없고 살다 보면 생활패턴과 삶의 지향점까지 주위의 흐름과 획일화되는 놀라운 일이 생긴다.주위에서 좋다는 교육을 따라 시키고, 도시의 중심. 더 나은 상급지로 이사 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는, 처음엔 그렇지 않더라도 들리는 얘기들, 나누는 대화들이 그런 쪽에 치우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동화되어 버리게 된다. 부화뇌동이다.
알게 모르게 쌓인 부화뇌동의 스트레스는 서울과 떨어진 강 원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선택함으로써 많이 해소될 것 같았다. 주위의 이웃들 역시 삶의 방식이 각기 다양했으면 한다. 좋은 것을 교감하여 나누고 부족한 부분은 도우면서 채워나가는 일상의 행복을 누릴 꿈에 부풀어 있는 지금 , '즐거운 나의 집'이 행복한 에피소드들로만 가득 차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