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 가수 김현철이 1989년 고등학생 때 만들었다는 노래.
그리워하는 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국민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대표작, '인연'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인 스타의 산실, 강변가요제가 열리던 호반의 도시.
역시 지금은 사라진, 입대를 앞둔 청춘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102 보충대 훈련소.
소양강 처녀, 닭갈비, 막국수, 경기도가 아니라 강원도였네.
나에게 춘천은 그저 이 정도로 인식되는 도시일 뿐이었다. 굳이 인연을 찾는다면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춘천 가는 기차가 운행을 중단하고 전철로 대체된다는 소식에 춘천행 '마지막' 기차에 몸을 실은 추억이 있는 정도.
하지만 지금은 2년 내지 4년, 어쩌면 그 이상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할 도시가 되어 버렸다.
계기는 이랬다. 3년 전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고 둘째의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모유수유를 완전하게 해내고 이제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해야 하는데 외벌이인 가정에서는 어린이집 입소 순번이 한참이나 밀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을 다시 하고 싶기도 했고 맞벌이 조건도 만들어야 했던 아내는 글 쓰던 경력을 살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회사로 들어갔다.
그 무렵 나는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서 업무처리에 대한 이견으로 관리자와 대치상태였다. 오래 꼬여있던 문제를 해결은 해야 하는데 관리자가 원하는 대로 쉽게 해결하는 방식은 내가 생각했을 때 명백히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논쟁이 있은 후, 원만한 합의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아내의 재취업과 육아를 핑계 삼아 휴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휴직을 하게 되니, 아내는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마당에 평소 하고 싶었던 새로운 분야에 지원하여 기대보다 좋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소양강을 따라 달리다보면 만나게 되는 춘천의 상징, 소양강처녀상
아내의 그 새로운 일터가 바로 춘천이었다.
그리고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육아에 익숙한 내가 다시 휴직을 하고 조직생활을 잘하는 아내를 따라 춘천으로 이사를 오기로 한 것이었다.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 춘천에 집을 구하러 몇 차례 오가면서 춘천의 매력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평소에도 막연하게나마 서울을 벗어난다면 제주도, 부산 말고는 춘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춘천의 매력이란,
1.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다.
ITX청춘 열차를 타면 서울 중심부인 용산까지 한 시간 좀 넘게 걸리는 정도이니, 서울에서 친구들과 한잔 마시고도 막차 타고 집에 올 수 있는 시간이다. 이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주도나 ktx가 있더라도 물리적 거리의 부담이 있는 부산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다.
2. 강원도의 거점도시로 문화인프라가 발달되었다.
서울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웬만한 문화생활 정도는 못할 것이 없다. 극장과 공연장, 박물관과 전시관이 여러 곳에 포진되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고 관심을 두고 있는 동네책방들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3. 그나마 인맥이 있다.
대학의 동기, 후배가 이미 춘천에 정착하여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각각 운영하고 있었고 그간 아내의 직장동료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놓았다. 즉 다른 어떤 도시보다 적응하기에 유리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과도 가까워졌고, 동해바다도 한 시간이면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시사철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감상할 수 있고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여기저기 널려있다. 오랫동안 살기 좋은 도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인정받아 온 곳, 여행 왔다가 정착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구봉산에서 시내 쪽을 바라보는 야경도 멋이지만 특히 소양강,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춘천에는 다닐 곳이 많습니다. 주로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겠지요. 박물관, 도서관, 놀이터, 체육관과 춘천의 음식 잘하는 집들, 사연 있는 명소들을 사진과 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