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래불사춘 Feb 14. 2021

남자이지만, 4년 육아휴직을 계획합니다.

육아만 잘하면 안 될까요


제목에 고민이 있었다. '남자이지만'이라는 부분이 좀 마음에 걸린다. 괜찮아 보이다가도 차별적인 의미를 담은 게 아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보편적인 정서에 따른 표현이라 생각하여 그대로 두었다.




세 번째 휴직을 앞두고 있다. 이미 지난 9월, 진작에 춘천의 이사할 집을 계약했으니 휴직은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고 곧바로 직장 사람들에게 계획을 알렸다. 점점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직장 내에서 남성의 휴직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식이다. 하물며 나는 첫째와 둘째 아이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사용한 상태였고 이번엔 기간을 좀 길게 할 생각이라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상당히 특이한 사람으로 인식될 게 뻔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맞벌이 부부의 경우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공직은 정년이 보장되고 육아휴직이 자유롭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출산 후에 한번, 초등 입학에 맞추어 한번 이렇게 휴직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  한 명당 3년까지 휴직을 쓸 수가 있고 최초 1년만 휴직 수당이 조금 나온다. 나는 이미 수당이 나오는 휴직은 다 써버린 터라 아내의 월급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나로서는 의아한 질문을 꽤 많이 받아야 했다.


휴직기간 동안 뭐하실 거예요?



'육아'휴직이다. 목적이 뚜렷한. 목적 외의 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쓴다. 그런데 휴직기간 동안 뭘 할 거냐니. 이 질문의 의도는 대충 이런 경우가 많다.  육아를 한다고 해도 시간이 많이 남을 건데 남자로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내는 나보다 벌이가 괜찮다. 정년이 보장되는 아주  안정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경력을 잘 쌓아나간다면 더 좋은 커리어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반면에 나는 늦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터라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돌봐야 된다면 언제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내가 휴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육아'외에 무엇을 해서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실제로 영리 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돈벌이 수단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아직도 육아를 한 사람의 노동력이 전히 필요한 분야로 보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내가 남자라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라면 고전적인 성역할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든 우리의 결정은 진보적인 것이었고 조직생활과 육아에 각각 비교우위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맞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두 번의 육아휴직 경험을 통해 육아와 집안일이 출근해서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첫째 아이 몫의 육아휴직은 더 이상 쓸 수 없이 지나가 버린다. 세 살 터울의 남매인 터라 첫째가 학교에 적응이 되어 아빠의 도움이 덜 필요할 때 즈음 둘째의 초등 입학이 다가온다. 춘천집의 전세 계약은 2년이고 한 번쯤은 계약을 연장할 듯하다. 그래서 4년. 쓸 수 있는 휴직을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할 시기에  아깝지 않게 다 쓰는 건데 그 시간은 오롯이 아이들을 돌보는 데만 써도 되지 않을까.


시간은 쓰기 나름이고 노련하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만 휴직하여 아이를 보는 동안에는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눈 한번 깜빡하면 어느새 점심, 저녁이 되어 있는 신비한 경험도 많이 했다.

물론 한 사람의 벌이로는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휴직의 목적, 춘천행, 게다가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 가족이 살면서 가장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귀중한 시간 동안은, 당장 돈 벌 궁리보다는 어떻게 아이들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득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남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깊은 고민도 없이 그대로 쫓아가는 것만은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로지, 춘천이어야 했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