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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Feb 18. 2021

살면서, 아빠가 가장 필요할 때

언젠가는 떠나가겠지만


딸은 올해 여덟 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들은 다섯 살.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발달이 빠르고 그중에서도 우리 딸아이는 평균보다도 조금은 빠른 편이었던 것 같다.  반면에 둘째 이놈은 성미가 아주 느긋하다. 보통과 다르게 둘째 특유의 경쟁심, 사랑받기 위한 노력. 이런 것들이 거의 안 보인다. 그래서 세 살의 나이차를 감안하고도 둘은 취미와 관심사, 놀이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며칠 전, 마지막 출근을 하고 나서부터 하루를 오롯이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딸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지만 아들은 지난 12월,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교사와의 불화로 등원을 중지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그 길로 외할머니 집으로 가출을 감행했다. 잠깐은 하나라도 없으니 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애 보느라 힘드실 장모님께도 죄송스러워 조금 일찍 휴직에 들어가기로 하고 새로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는 내가 온종일 돌보기로 하고 한 터였다.


아들과 평온한 시간을 보내다 딸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아빠 쟁탈전'이 시작된다. 배움의 재미에 눈을 뜬 딸은 수학 문제, 한자공부 등을 할 때 아빠와 대화해가며 익히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 아직 스스로 하는 것을 버거워한다.  "아빠 놀아줘"를 입에 달고 다니는 헬로카봇 덕후인 아들 녀석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빠와 같이 놀 카봇 아이템으로만 하루를 꽉 채운다. 카봇 역할극, 카봇 관련 퀴즈 맞추기, 카봇 유튜브 시청인데 딸의 학습지를 봐주고 있으면 아들이 와서 보채고 아들과 잠시 놀아주고 있으면 딸은 삐쳐 방으로 들어가곤 한다. 딸은 이제 어르고 달래서 풀어주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아이 둘이서 아빠를 두고 격렬히 다툰다는 게 기분이 좋다. 아직 아이들에게 쓸모가 있기는 한가보다.


아이가 자라고 또래 친구들이 생기고 그들만의 문화에 적응하다 보면 이제 아빠가 필요 없겠지. 아빠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날 테고 학습의 난도가 올라갈수록 가르쳐줄 만한 것도 줄어들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간섭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할 때가 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정도를 넘어 서운할 것이 확실하다. 내가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그저 돈 벌어다 학원비와 용돈을 대 주는 것뿐이라면.


그러나 모든 부모들이 겪는 보편적인 과정이다. 오히려 나는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아이들과 온전히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감사해야 한다. 살면서, 아빠가 가장 필요할 때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나에게도 아빠가 필요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열여섯의 여름, 2년여 투병하시던 아빠가 세상을 등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음에도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는 끝까지 우리에게 걱정거리를 주지 않으려 내색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한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 아빠의 부재는.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나서 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이의 돌봄이 필요할 때 나는 주저 없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이와 함께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나에게 아빠란 언제나 필요할 때 곁에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어버리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볼 수 없는, 의지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에게 잠깐 있었다가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유한함을 조급해하여 필요로 할 때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남들보다 크고 강하다.


나에게도 지금이, 살면서 아빠가장 필요할 때다. 생전 물고 빨고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당신의 막내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그와 똑 닮은 아이들을 낳고 또, 당신을 기억하면서, 번듯이 생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지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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