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래불사춘 Feb 27. 2021

어쩌다, 눈물의 유치원 졸업식

못난 아빠를 용서하렴


코로나로 인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졸업식은 졸업식이다. 딸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 3년간 한 유치원을 다녔다. 이사 온 동네에서 가장 좋다는 유치원을 보냈고 나는 이 유치원이 딸아이가 앞으로 평생 받게 될 교육 중 가장 고급 교육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평범학 공교육의 궤도 내에서 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과도한 사교육은 일단 시킬 능력도 안되고 아이에게도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1년은 코로나 때문에 무려 수영장도 있는 유치원 시설과 부모들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행사들을 온전히 누려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딸아이는 이 유치원에서 겁게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졸업식.




졸업식은 금요일이었고 코로나이긴 하지만 주차장에 포토존을 설치하여 졸업식 분위기는 내게 해주겠다는 유치원의 공지가 있었다. 그래도 졸업식이기에 아내도 휴가를 내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자는 등 자연스럽게 그 날의 계획을 잡고 있었다. 졸업식 당일,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꽤 늦었다. 이미 유치원 주차장은 꽃다발을 든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아빠들, 축하해주는 선생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찰칵찰칵. 웅성웅성. 하하호호.


한참을 찾았지만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조급해질 무렵 겨우 담임선생님을 찾아 딸의 행방을 물어보니,


아까 유치원차 타고 하원 했는데요? 부모님 오시는 분들은 미리 연락을 따로 주셔서...


아내가 졸업식인데 그냥 보내는 게 어딨냐고 거칠게 항의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을 잠깐 지으며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내 얼굴은 화단 속의 흙과 같은 색으로 변했다. 선생님이 다급히 연락하여 버스를 타고 간 아이가 다시 그 버스를 타고 유치원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했지만 그때는 모두가 떠난 휑한 빈자리만이 아이를 맞이할 것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스에 실려 유치원으로 돌아오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는 벌써부터 유치원 마당을 꽉 채워 각자의 아이들을 맞이하는 엄마 아빠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랐을지.


아이의 마지막 등원길, 이때까지만해도 오늘의 참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오늘 일을 몇 살까지 기억할까, 평생 졸업식마다 회자될 기억이겠다. 얼마나 엄마 아빠를 원망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삼십 분 이상을 기다렸다. 도로에 주차했지만 또 딸아이와 엇갈릴까 싶어 주차위반 과태료도 불사하고 유치원 입구 그 자리에 마냥 그대로 있었다.


마침내 딸아이를 태운 버스가 운행코스를 돌고 유치원으로 돌아왔다. 부리나케 버스로 달려갔고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그때까지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왜 데리러 온다고 얘기 안 해줬냐고. 가슴이 무너진다. 너의 인생 첫 졸업식을 아빠가 다 망쳤구나.


그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많이 빠지긴 했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사람들이 남아 있었고 또!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의 가족도 늦게 온 것을 발견했다. 이거 어쩌면 그럭저럭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며불며 한사코 사진을 안 찍겠다며, 집에 그냥 가자는 아이를 겨우겨우 달래며 애원하니 아이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한가해진 담임 선생님도 아이 달래기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종일반에 머물고 있던 아이의 친한 친구들도 무더기로 데리고 나왔다.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이 일생에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극적이지는 않았다. 친한 친구의 가족을 발견한 순간, 아이의 친구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의 안도감이란. 정말.

아이는 이제 완전히 기분이 좋아져서 환한 얼굴로 여기저기 어울려 사진을 찍고 준비해온 선물도 선생님께 드리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야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앞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식 무렵이 되면 아이는 이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상기시켜줄 것이다. 평생 졸업에 관한 에피소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애초에 자포자기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경험으로 나는 기억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아빠가 가장 필요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