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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r 06. 2021

눈 덮인, 강원도로 이사하던 날

우리 정말, 과연 잘 살게 될까


복수의 이사업체에 확인한 결과, 2월 마지막 주는 연중 가장 이사비용이 비쌀 때란다. 각급 학교의 입학, 개학시기가 맞물려 있어 그런 듯한데 그래도 비용 차이가 심각할 정도로 컸다. 이미 이사를 준비하느라 중개수수료, 가구와 가전 구입 등으로 꽤 많은 지출을 했던 터라 3월부터 비용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을 고는 3월 1일로 바로 이사날짜를 정했다.




이사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2월 순부터 3월 첫 주까지의 날씨를 검색해보니 방긋 웃는 해님 얼굴이 가득했다.

단 하루! 3월 1일만 빼고.


확실한 비였다. 전국적으로. 그것도 꽤 많은 양의 비가 예고되었다. 비에 젖을 가구들. 더러워질 벽지와 바닥. 혹시나 전기제품에 비가 스며든다면? 온갖 최악의 상황들이 미리 머릿속을 점령했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고? 그건 분명 빗속에 이사하는 사람들의 처량함을 달래기 위해 생겨난 말일 게다.

이사를 한 주만 미룰까 생각도 했었지만 변경이 어렵다는 이삿짐센터의 답변과 일주일간 신학기에 고생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삿날.

왜 기상청의 예보는 하필 오늘 같은 날 정확한 것인가. 일어나 보니 이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아침 일곱 시 반쯤 이사업체에서 도착하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능숙한 솜씨로 하나 둘 정리되어가는 박스들과 칭칭 동여 싸매는 가전 가구들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삿짐을 싸는 동안 이웃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기사님들의 간식거리도 사다 보니 어느덧 집이 깨끗이 비워졌다. 우리 집이 이렇게 넓고 뷰가 좋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반 살았던 우리 부부 공동명의의 집. 평생 집을 소유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청약을 덜컥 넣었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일 때라 어려움 없이 당첨된 집. 유초중고가 단지를 둘러싸고 있어 아이들 교육시키기 정말 좋은 집. 궂은날 떠나려고 하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집의 장점들만 보였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사진 몇 컷을 찍어두고는 뒷정리를 마친 뒤 춘천, 우리의 새 보금자리로 향했다. 가는 중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먼저 도착하여 기사님들 점심으로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문했다. 직접 배달 온 닭갈비 집의 사장님은 본인도 근처에 산다며 우리의 이사를 축하해주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매일 중국음식에 질렸을 기사님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렸다.


2층짜리 전원주택은 이사하기에 녹록한 조건이 아니었다. 사다리차 없이  ,저 문을 통해 물건들을 내리고 가구 배치 과정에서 공간의 문제로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이 고민 저 고민을 하며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집은 우리의 짐들채워졌고 휑했던 빈집이 온기가 도는 사람 사는 집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비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는 강원도였다. 흩날리던 싸라기눈은 이내 습기를 잔뜩 머금고 쌓여갔으며 기온이 하강하면서 활짝 열린 문들을 통해 찬바람이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차가워진 바닥을 애써 가열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연소될 엘피지 가스의 엄청난 사용요금벌써부터 무서워졌다.


기사님들의 고생도 말이 아니었다. 미끄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발을 수시로 녹여가며 분투하는 동안 시간은 이미  여덟 시에 가까워졌고 이삿짐들은 겨우 제자리를 전부 찾았다. 마음에 지 않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더 이상 요청할 수 있는 상황과 시간이 아니었다. 온종일 고생한 기사님들에게 소정의 수고비를 얹어 드리며 기사님들을 돌려보낸 후 한숨 돌릴까 싶었지만,


내일은 두 아이가 각각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입학을 하는 날이다. 아내는 정상출근이다. 혼자 다 해야 한다. 이사하느라 뒤죽박죽 된 짐들 사이에서 아이들 준비물과 내일 당장 입을 옷만 간신히 찾아 정리해 놓고 쉬려는데,


눈이? 쌓여있다!


말 그대로 폭설이었다.

큰길에서 언덕을 올라오는 곳에 조성되어 있는 우리 마을은 10센티가 넘게 쌓인 눈에 내일의 출근길이 심각한 지장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내일은 아이 둘과 아내를 데려다주는 초행길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밖을 내다보니 이미 다른 집 사람들은 넉가래를 하나씩 들고 집 앞 도로의 쌓인 눈을 밀고 있었다. 급하게 차 앞유리의 와이퍼를 올려두고 나서 나도 옆집의 넉가래를 빌려 눈을 밀기 시작했다.


주택에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그간 아파트에서 얼마나 편한 생활을 했던가.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할 때, 한겨울 막막하게 쌓여가는 눈을 보면서 제설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알았지만 그건 이미 십수 년 전의 일이었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서 제설작업에 동원되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그건 공공이 쓰는 남의 도로였다.

내 집 앞의 눈쓸기는 단순한 눈쓸기가 아닌 앞으로 전원주택 생활에서 마주할 수많은 난관들에 대한 경고 같았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말. 폭설의 경우에는 어떨까. 정말 얼만큼 잘 살게 될지 궁금하다.

과연 속설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현재의 은행 잔고.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 부부싸움의 평균 횟수 등을 나중에 이곳에서 이사 나갈 시점과 비교해 보면 되는 것일까.


어쩌다 비 오는 날 이사하게 된 운 없는 누군가의 처량함을 달래기 위해 생겨났을 이 속설이 부디 제대로 들어맞기를. 하염없는 눈을 뿌리는 강원도 춘천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이삿날 밤 2층 베란다에서 본 풍경. 복잡한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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