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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r 09. 2021

그래도, 공무원을 그만둘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직장도 없어


춘천에서의 전원주택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직 정리할 것은 산더미지만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며 마음도 안정되어간다. 아이들도 정신없는 입학 첫 주를 보내고 각자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으며 다행히 학교와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이 좋다고 한다.


결국 나의 문제만 남았다. 육아휴직은 최대 4년을 더 쓸 수 있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고민은 춘천에서의 생활이 안정된 이후로 미뤄놓았었다. 둘째의 유치원은 오후 늦게까지도 보육이 가능하고 첫째도 다음 주부터는 방과 후 특성화 교육이 시작된다. 욕심 많은 딸아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마술, 요리, 클레이, 역사체험 논술, 주산으로 일주일을 빽하게 채워놓아 오후 세시까지는 학교에 머물겠단다. 예상보다 빠르게 생활이 안정화되었고 집안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슬슬 나의 생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은 본업 외의 영리 활동이 금지된다. 일부 인정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극히 소수이며 지속적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영리 활동은 부동산 임대와 주식 외에는 거의 생각할 수가 없다. 즉 이곳에서의 별도의 경제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금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의 활력을 위해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단순 취미생활이나 자원봉사를 마냥 하고 있을 상황은 또 아니다. 그러다 문득.


공무원 그만두고 할 만한 거 없을까


일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야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영리 활동의 제한을 벗어나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일단 현재의 내 상황과 공직이라는 직장에 대해서 냉정하게 직시해 보기로 한다.


마흔한 살의 남자. 육아휴직 중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타지, 춘천으로 이사와 아이를 키우며 하루 네댓 시간의 여유가 있다. 온전한 풀타임 직장을 잡기는 어차피 무리다. 공직에 들어오기 전 몇 군데 회사를 다니긴 했지만 경력을 써먹을 만한 업무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특별한 기술도 없다. 카페나 편의점 알바를 하려고 해도 나이가 많아 점주들이 꺼려하고 그런 곳은 더욱이 여성을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배달이나 현장 노동도 시간 제약이 있고 나의 빠릿빠릿하지 못한 행동과 나약한 멘털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공무원을 그만두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공무원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직업이던. 사기업을 그만두는 것과 공무원을 그만두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기업의 경우 적성에 안 맞거나 처우가 열악하거나 다른 길을 모색하는 등의 이유로 퇴사가 익스큐즈되지만 공무원은 "도대체 왜" 라는 표정과 의문, 가족들의 실망 어린 눈초리를 한동안 감내해야 한다.  직업으로서 공무원은 종착지이자 배수진이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의원면직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내가 6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직장으로서 평가해보면 장점이 확실한 곳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비전과 라이프스타일,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는 있지만 나의 경우는 이렇다. 가장 먼저 꼽는 장점은 복지제도이다. 나는 결혼한 이후 공직에 입문했고 아이도 바로 생겼다. 기혼의 자녀가 있는 공무원에게는 누릴 수 있는 복지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많다. 한아이당 3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고 만 5세가 될 때까지 하루 2시간의 육아시간을 쓸 수 있다. 자녀 돌봄 휴가, 가족수당, 출산이나 입학 시 축하금 등은 덤으로 따라온다. 물론 이것은 조직에서의 승진과 평가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아야 온전히 누릴 수 있기는 하다.


또. 잘리지 않는다. 웬만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사건이 아니면 파면이나 해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전 사기업에 다닐 때 임원과 갈등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젊은 혈기에 갈 데까지 갔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임원 한 사람에 의해 내 직장에서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겠구나. 공직에서는 결코 그럴 일은 없다. 각각의 개인은 법으로 신분을 보장받는다. 물론 신분의 안정성을 믿고 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으나 40대부터 벌써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주변 지인들을 봤을 때는 상당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달콤한 공무원의 복지와 안정성을 내가 과연 버릴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는 마음속 끈질긴 유혹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이만한 직장 없어.'로 귀결된다. 몇 년 후 복직했을 때 어린 상사들 틈에서 눈칫밥 꽤나 먹겠다는 각오만 한다면 그 나이에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당분간은 계속 고민이 이어질 것 같다. 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희망은 늘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치 차이다. 높은 하늘을 보되 땅에는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절대적 다짐에도 번복의 여지를 두고 있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적어도 이 시기에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들과 그 이유, 무수한 단점들과 애로사항도 다음번에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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