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당일. 딸아이는 생각보다 컸다. 산부인과에서 예상한 키와 몸무게를 훨씬 상회한 수준으로 태어난 딸은 두 돌이 될 때까지 엄마의 모유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때까지 영유아 검진에서의 발달지표는 늘 상위권에 속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자라는 것이 더뎌졌다. 아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 갖은 노력을 해봐도 이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발달 지표는 하위권으로 점점 떨어졌고 키는 반에서 두어 명 정도를 빼고는 가장 작은 아이가 되었다.
고기위주의 식사, 틈날 때마다 무릎 뒤 성장판 자극하기, 키 성장에 도움된다는 영양제 등의 처치를 해보았지만 아직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 그러던 중, 또 한 가지의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줄넘기였다. 살던 동네에 줄넘기 학원이 마침 생겼고 솔직하게는 차량 운행을 해주는 학원에 의지하여 맞벌이 부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의도가 강했다. 어쨌든 줄넘기가 키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별 고민 없이 학원을 등록했고 딸아이는 줄넘기를 재밌어했다.
몇 개월간 줄넘기를 연마한 아이는 수업이 재밌다며 본인이 어떤 기술을 몇 개 연속으로 했다는 둥, 실력대결에서 1등 하여 어떤 선물을 받았다는 둥 학원을 다녀온 이후엔 줄넘기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실제로 줄넘기의 기술은 놀랄 만큼 다양하고 화려했으며 붙임성 좋은 딸아이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뜻 줄넘기 실력을 선보이곤 했다.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줄넘기를 하는 것이었다. 11층에 살았던 우리는 여느 아파트 생활을 하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처럼 층간소음 유발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항상 뛰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아랑곳하지 않고 딸아이는 늦은 시각 집 안에서도 줄 돌릴 공간만 나오면 여기저기서 실력 연마를 했고 나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언성을 높이기도, 애원하며 달래기도, 윽박지르기도 했다.
뛰는 것은 아이들의 본능이다. 아이들은 그냥 이유 없이 뛴다. 갓난아기 때와 다르게 자신의 팔, 다리를 사용하여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더 빨리, 더 높이 뛰어보고자 하는 것은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래서 몇 미터 안 되는 가까운 거리도 본능적으로 뛰어다닌다. 뛰지 말라는 말은 본능에 대한 제약이며 눈에 보이지 않게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축적시키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애들은 좋아하겠다
전원주택으로의 이주를 결정하고 지인들에게 계획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실 나는 전에도 밝힌 것처럼 나의 로망 중 하나가 젊을 때 전원주택에 살아보는 것이어서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이주를 위해 노력한 것뿐인데 주위에서 이렇게 얘기해주니 아이들을 엄청나게 생각해주는 좋은 아빠로 포지셔닝되는 것 같아 별말 없이 듣고그냥 가만있었다.
이제 이사온지 열흘 남짓이긴 하지만 역시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추위가 물러가기가 무섭게 아이는 맨발로 마당을 뛰어다녔으며 옆집 개 '로키'와도 금방 친해져 동네 한 바퀴 산책도 함께 다니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뛰면 안 돼"라는 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첫째고 둘째고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집안에서의 달리기 시합,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이제 가능해졌다.
눈녹기가 무섭게 맨발로 마당을 뛰어다니는 자연친화적인 딸아이
물론 딸아이는 그토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돌려대던 줄넘기를 이제 편안히 거실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뛰지 말라는 소리가 엄마 아빠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주택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오히려 다치지 않는 선에서 좀 더 과격한 놀이들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온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연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는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교과서적인 멘트도 던져보고 여름엔 마당에 커다란 물놀이장을, 겨울엔 뒷산의 완만한 언덕에 눈썰매장을 만들어주겠노란 약속도 할 수 있게 된 이곳에서의 생활에 하루하루 기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