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은 Feb 17. 2021

프리덤 앤 리스 판서 빌리티!~
우리 집 가훈이야~

1. 9살 둥이네  엄마표 경제교육 이야기 <자유와 책임>

서른아홉에 남매 둥이를 낳았다. 

유치원에 나란히 입학한 남매 둥이 민이와 인이는 각기 다른 반이다. 민이는 1분 오빠이고, 인이는 1분 늦게 태어난 여동생이다. 단 한 번도 서로를 오빠 동생으로 여긴 적은 없다. 다만, 인이가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네가 그래도 오빠잖아’라는 멘트를 활용할 뿐이다. 


다른 반이긴 하지만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에 며칠 날짜가 달라질 뿐 배우는 내용이나 숙제는 늘 같았다.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나니 기저귀, 물병, 이불 등의 물건만 챙겨 보냈던 어린이집 시절과는 달리 머리와 손을 써야 하는 숙제라는 것이 주어졌다.

서른아홉에 둥이를 나았으니 둥이가 유치원생이 되었을 때에 나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유년시절에 이렇게 다양한 그리기, 만들기, 종이접기 등등의 학습이 과연 필요한가 싶었다. 또 이 숙제가 아이의 숙제인가 엄마의 숙제인가 싶은 숙제들도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참 자식이 무엇인지 그날의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내가 가진 실력의 전부를 발산하며 어찌어찌 숙제를 빼먹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터였다.


‘엄마는 다른 친구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서 줄넘기 시범이라던가, 똥머리로 머리 묶어 주는 거 잘 못하지만, 엄마가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늘 기도하고 노력하니까 민이 인이 그건 꼭 알아줘야 해’ 하며 세뇌시키던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번 주 숙제는 우리 집 가훈 적어오기‘

나의 철학과 경제학적 마인드의 결집체, 내가 마음속에 늘 품던 단어가 있었던 게다. 드디어 나의 본업에서 다져진 철학과 마인드를 자식에게 전수시킬 시기가 온 것이다.


우리 집 가훈은 말이야 프리덤 앤 리스 판서 빌리티야.

이게 영어인데 말이지~한국말로 하면 자유와 책임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둥이는 너무나도 무심히 대답한다. ‘몰라'

한층 더 고조되고 격양된 나는 민이를 붙잡고 시작했다. 민아 네가 레고를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레고를 하잖아 그게 자유야. 민이에게는 딱지를 할 수도 있고, 레고도 할 수 있는데 민이가 좀 더 하고 싶은 레고로 놀았잖아. 레고를 선택해서 논 거. 그것을 자유라고 해

그러면 책임은 뭐냐면 하는 순간 벌써 민이는 관심이 없는 눈치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쓰지 않던가 책임까지 설명을 해야 완성되는 우리 가훈이니 속도를 높여야 했다.

민아 ‘책임’은 네가 레고로 다 놀고 나면 엄마가 늘 레고 박스에 레고 넣어두라고 하잖아 그걸 ‘책임’이라고 해.

그래서 자유와 책임은 세트야. 너네처럼. 쌍둥이 같은 거야


‘자유와 책임’ 몇 주간에 걸쳐 토론 주제로 삼아도 될 만한 이 개념을 7살 눈높이에 맞게 너무나도 설명을 잘했다고 혼자 뿌듯해하고 있는데, 인이가 한마디 허를 찌른다.

‘나는 그래서 레고 싫어해’

아~이 무슨 말인가. 자유는 좋은데 책임지기 싫다는 뜻인가. 책임지기 싫어서 자유치 않겠다는 말인가. 순간 저 말뜻은 도대체 내 말을 알고 하는 말인가. 모르고 하는 말인가.


어쩌다 레고 조각이 발에 밟히면 정말 나도 모르게 목청껏 민이를 부른다. 민아~엄마가 레고 다한 뒤에는 레고 박스에 넣어라 했잖아. 우리 집 가훈이 머라고? 자유와 책임이라고.

민이도 인이도 꿈쩍도 안 한다. 레고를 밟은 것은 그냥 내 죄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정수와도 같은 우리 집 가훈 ‘프리덤 앤 리스 판서 빌리티’ 전수는 실패로 끝났다.


레고를 맘껏 가져다 노는 민이에게 치우는 것 까지 가르치고 싶은 책임론은 7살 인생에는 과한 것일까? 치우는 것은 아직까지 나의 책임인가? 나에게 주어진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가훈 설파에 이어 이런 생각들이 나에게 밀려왔다.


13년간 부부로만 지내다 남매 둥이가 태어나면서 나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생겼다. 더불어 자유의 폭도 커진 셈이다. 자식이 없었더라면 자식을 낳을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테니 내 인생 자유의 범위가 한층 더 폭넓어진 셈이다. 다만 자유보다는 책임이 더 무겁게 있을 뿐이다.

인이도 나처럼 레고를 하는 자유보다 치우는 책임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점점 그 자유와 책임이 커져간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성장하는 삶이요, 충실하게 삶의 무게를 버텨내는 사람일 게다. 

인이에게 한마디 더해 주어야겠다. 자유를 맘껏 누리고, 책임도 다하고자 노력해보라고. 다인이 옆에는 엄마가 있어서 힘들 땐 도와줄 거라고, 

치우기 싫어서 레고놀이를 포기하지는 말라고 꼭 말해줘야겠다.


둥이와 함께 나도 가훈을 되새긴다. 프리덤 앤 리스 판서 빌리티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거워지고 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만 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감수해야 할 내 몫임을. 

그런 가운데 나는 어제보다 나은 엄마가, 내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Freedom & Responsibili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