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느낀 것들은 달랐던 우리
(2019년에 다녀온 유럽 여행 에세이입니다)
chapter 3. 남자 친구의 눈으로 본 포르투
여자 친구와 단둘이 유럽으로 떠난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 여행 일정 동안 우리 커플은 도미토리형 기숙사를 숙소로 이용한다고 강조했고, 그 점 덕분에 어렵사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여자 친구의 아버님이 생각보다 쿨하셔서 허락을 바로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하다.
우리는 네덜란드 항공사를 이용했다. 비행기 자리가 꽤 널찍했음에도 8시간 동안 비행기에 있는 것은 참 힘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긴 비행 때문에 살짝 멀미도 났다. 특히 나의 경우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 자는데, 비행기가 불편해서 8시간을 뜬 눈으로 보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잠도 안 자고 몰아봤다.
영화를 보던 중에 승무원이 꼬냥이라는 술을 나눠주고 있어서 한번 먹어봤는데…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술을 먹고 나자 배에 가스가 차서 잠은 더 안 오고, 배도 아프고 눈은 계속 피로해졌다. 도중에 옆사람이 다른 자리로 옮겼기에 망정이지 그 상태로 포르투갈까지 도착했다간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을 것이다.
여자 친구는 비행기 수화물 규정에 대해 많이 애쓰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 공항에 잠깐 내려서 환승할 때도 무게를 체크하고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한참을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실랑이하더니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
연착과 기다림의 반복된 시간 속에 우리는 네덜란드에서 환승하여 드디어 포르투갈 포르투 공항에 입성하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칩을 바꾸려고 하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자판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음료수 자판기였다. 유럽에서 처음 본 자판기라 그런 지 더 신기해 보였다. 환전해간 동전 5유로로 콜라를 사 먹었다. 시원할 줄 알았던 콜라는 정말 미지근했고, 살짝 맥이 빠졌다. 우리는 콜라를 다 마신 뒤 우버 택시를 불러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체크인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한껏 멋진 매력을 뽐내고 싶던 나는 자신 있게 카운터로 들어가 영어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서로 못 알아듣는 어색한 상황뿐이었다.
그때 등장한 오 나의 여신님!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의 영어 소리가 들렸다. 내가 헤매는 것을 보다 못한 여자 친구가 여태까지 기다리면서 읽었던 영어회화 기본편의 문장으로 카운터 직원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직원은 여자 친구의 말을 이해했고 다행히 여자 친구도 직원의 말을 이해했다. 여자 친구의 멋진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마치 내비게이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숙소에 그토록 짐을 줄이려고 애썼던 캐리어들을 벗어버린 후 포르투에 거리로 나왔다. 그 마법 같은 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말 신기하게도 장시간의 비행으로 쌓아왔던 피로감. 긴장감은 포르투의 풍경을 보자마자 한순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거리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며, 우리가 여태껏 봐오지 못했던 건물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함께한다는 것이 좋았다. 여자 친구가 한껏 신나서 웃는 모습, 너무 행복한 표정… 유럽에 왔다는 만족감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표정이 마법을 일으키는 주문이 아녔을까 생각해본다.
예전부터 나의 여행 철칙을 하나 꼽자면,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닌 , 우리만의 장소를 찾는 것이 철칙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해야 실패를 안 했다. 유럽에서도 나의 여행 철칙을 지켜보고 싶었다. 구글 지도 맵을 잠시 off 한 후 우리는 발걸음이 닿는 대로 여행지를 정해 보기로 했다. 거리의 버스킹 소리를 귀로 즐기고, 유럽의 햇살을 피부로 즐기며, 예쁘게 지어진 건물과 형형색색의 아틀라주를 눈으로 즐기면서 걷고 걸었다. 그러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르투에 명물인 동루이스 다리가 한눈에 보이며, 포르투 시내 자체가 한눈에 보이는 예쁜 전망대에 도착하게 됐다. 사실 브라질에서 수학여행 온 어린 고등학생들의 줄을 따라가다 보게 된 곳인데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안 알려진 곳일뿐더러 우리밖에 없는 곳이었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커플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찍어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기에 셀카로 우리 둘의 예쁜 모습을 담았던 기억이 난다.
실컷 풍경을 즐긴 우리는 동루이스 다리 쪽으로 넘어와보게 된다. 매체에서 많이 나왔던 곳이기에 마치 나는 티비 속 안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버스킹을 하고 춤이면 춤, 예술이면 예술 다양한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며 그녀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다리 건너보니 어때?’ 갑작스러운 질문에 실소가 나왔다. 그녀는 정말 신이 났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겉으로는 똑같은 다리지 뭐’라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뭔가 겉으로 계속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돌이켜보면 다리를 건널 때 내가 동화 속 왕자님이 돼있는 것 같았다.
다리 반대편으로 넘어온 그녀는 나보고 같이 와이너리 투어를 하자고 했다. 사실 나는 술을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다. 동화 속 왕자가 얼굴을 붉히고 거리를 거닐 생각을 하니 너무나 끔찍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와 다투게 되었다. 그녀는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거 하나 못해주냐고 하며 속상해했다. 얼굴 빨개지는 게 싫으면 와인 먹지 말고 그냥 옆에만 있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러면 너 혼자 와이너리 투어하고 와’라고 말해버렸다. 조금 눈물을 보였던 그녀는 결국 체념한 듯 다른 좋은 부분을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원하는 포르투의 노을도 시간 관계상 못 보게 되면서 우리의 여행은 1일 차부터 점점 파국을 치닿기 시작했다.
포르투의 노을은 정말 이쁘다. 사실 포르투에 가기 전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으로 보면 포르투 하면 동루이스 다리에 걸친 노을의 모습이 제일 먼저 보일 것이다. 그 노을 못 본다니, 포르투 일정을 1박 2일로 잡아두었던 게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해가 이미 저물어버린 저녁, 씁쓸하게 노을 맛집 공원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그녀를 달래 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여행 철칙 <남들과 다른 길,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와서 그런가 포르투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했다. 그러자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시간이 우리에게 보였다.
그것은 바로 ‘이른 새벽’ 여행객은 하루의 피로를 녹여내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던 노을보다는 일출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새삼 놀라웠다 첫째 날부터 여자 친구와 티격태격했었지만 번뜩이던 아이디어 하나로 우리는 생각보다 들뜬 마음으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새벽 5시 포르투의 거리는 한산했다. 다리 동쪽에서는 해가 푸르스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마치 누군가 우리에게 포르투 도시 전체를 선물한 기분이었다. 다리를 건너며 다리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무척이나 강했지만 그 거센 바람 조차 우리의 감성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우연히 우리와 같은 시간을 선물 받은 일본인 여행객 사진작가로 부터 사진을 선물 받았다. 그녀도 무척 기뻐 보였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우리만이 즐길 수 있는 법의 재미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사실 첫째 날부터 정말 미안했었다. 유럽에서 꼭 하고 싶었던 와인 먹기와, 노을 보기를 못했던 그녀였기에 또 언제 포르투에 와볼지 모르는 우리였기에 아쉬움이 누구보다 컸었다. 그런 우리에게 이른 새벽 동루이스 다리는 통쾌한 신선함을 제공해줬었다.
마제스틱 카페에 가는 도중 해리포터 얘기를 하며 아침 포르투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인형이 나와 현재 시간을 알리는 나팔을 부른다. 아침 여덟 시, 마제스틱 카페의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고 비쌌다. 해리포터가 탄생된 카페라는 유명세로 이렇게 아침부터 사람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서비스는 좋았던 것 같다. 문을 열어주는 집사님이 있었고 카운터 업무를 보시던 직원분들도 모두 젠틀했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안 갈 것이다. 가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도 가지 말라고 애써 말리고 싶은 맛과, 가격이었다. 거리를 나와 먹은 나타라고 불리는 에그타르트로 놀란 위를 진정시켰다.
비행기 시간 전에 잠깐 동안 시간이 남아, 우리는 렐루 서점을 가기로 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핫한 관광지였다. 입장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기다려야 했으며 가기 전 가방을 맡기는 물품 보관소도 있었다. 줄은 또 어찌나 긴지 렐루 서점부터 약 50m 정도로 길게 사람들이 서있는 곳이었다. 역시나 해리포터였다. 유럽으로 오는 내내 해리포터를 봐왔어서 해리포터가 재밌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인기가 많을 줄이야 렐루 서점에 들어와 보니 서점이 생각보다 정말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조그만 곳에서 사람들은 사진 찍기 바빴고 그런 모습을 보면 난 짜증이 났다. 사람들 틈에 끼이며 땀은 뻘뻘 흐리며 어색하게 웃으며 브이를 하고 찍는 모습, 단지 그 장소가 유명한 장소라는 이유 하나로 너도나도 다 그렇게 하는 모습이 아니 꼬아 보였나 보다. 결국 나는 더 구경하겠다는 여자 친구를 뒤로한 채 밖으로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여자 친구는 서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해를 해주었던 것 같다. 공원 나무 그늘 밑 잔디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여자 친구가 웃으며 다가왔다.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고 했다. 그리곤 사람이 너무 많아 피곤했겠다고 날 되려 걱정했다. 미안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좀만 참고 사진 몇 번 찍어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이제야 얘기해서 다 지난 이야기겠지만, 그때는 정말 미안하긴 하더라.
그 뒤로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어느 성마루에 올라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를 카메라로 봤을 때에는 라푼젤 같았다. 성마루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약간 디즈니의 공주 같았다.
길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포르투를 떠나면서 우리는 틈틈이 영상을 남겼고 우리의 이야기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