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단축 현실
아이가 10개월이 되던 해에 나는 이제 회사에서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한 뒤 여러 회사에 서류를 넣었었고 그 중 몇몇 곳에서는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의 긴장감이었지만, 이 긴장감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면접을 이어 나갔다. 그 중 어떤 곳은 당장이라도 폐업할 것 같았고, 그 중 어떤 곳은 채용은 하지 않는데 내 아이디어를 빼가려는 곳도 있었다. 너무 이상한 곳도 많아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업무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력직으로 들어가다 보니 수습 3개월 이내에 성과를 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료 모두가 꺼려하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고객사도 굉장히 까다롭고, 모든 글을 카피처럼 써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기획전의 모든 글을 맡게 해서 나는 거의 글 자판기 수준으로 일해야 했다. 3개월 동안은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자리에 앉아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며 글과 싸웠던 것 같다. 퇴근하는 순간에도, 주말에도 카피를 생각하기 바빴고 영감을 얻기 위해 책도 무식하게 많이 읽었더랬다.
결국 나는 고객사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고, 콘텐츠 5건으로 10억이 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매달 매거진에서 동일한 수치를 기록했다. 물론 나 혼자 한 건 아니다. 내 기획에 맞춰 디자인팀, 시스템팀이 함께 작업해준 덕분이었다.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에 놀랐고, 내가 생각보다 '팔리는 콘텐츠'를 잘 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프로젝트 뒤에 나에게 수많은 프로젝트가 쏟아졌고,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직 후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그 기간 동안 두 번의 유산을 겪게 된다.
회사에서 일한지 1년쯤 됐을 때 나에게 둘째가 찾아왔다.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남편한테 보여줬더니 기뻐하며 껴안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서 첫째를 낳았던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아기가 잘 찾아왔다고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그러나 너무 초기였기 때문에 회사에는 알리지 않았었고, 몸조심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필 연협 기간이기도 했는데, 회사 사정을 들이밀며 연봉에 1%만 올라서 스트레스를 왕창 받고, 눈물까지 흘렸더랬다. 그러고서 남편과 크게 싸운 뒤 겨울에 외투를 입지 않고 1시간 동안 밖을 걸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쌓였던 걸까...
첫째에게 둘째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랬는데 초음파를 보시는 선생님의 말씀. 계속해서 심장을 찾아 보더니 선생님을 불러오신다고 하셨다. 그러고서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셨는데, '잘 안됐다'는 말을 남기셨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소화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당시에는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었다.
"아기 심장이 멈췄어요."
그러고서 유산이 되었다. 소파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이가 엄마한테 붙어있으면 엄마 정신에 안 좋다고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그때 정신을 계속 못 차리고 있어서 연차를 미리 내놓은 3일 뒤에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첫 유산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나왔고, 나는 결국 수술 날짜를 하루 당겨 이틀 만에 소파 수술을 받게 되었다. 유산을 하게 되면 몸에 안 좋다고 해서 결국 회사 파트장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울면서 말하니, 많이 당황하신 것 같긴 했지만 유산 관련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결국 나는 일주일 동안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아기를 잘 떠나보낼 수 있었다.
수술을 잘 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아기가 찾아왔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찌뿌둥해서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는데 두줄. 너무 기뻐서 남편에게 알렸고, 근처 병원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임신 호르몬이 맞다고, 수치가 맞다고 하셨고 임신 주차가 별로 안됐으니 다음주에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셨다. 결국 그 다음주에 가보니 아기집만 있고, 아기는 없었다. 아기는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충격이었고, 또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아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으니 그 슬픔이 덜했다. 그래서 따로 유산에 관한 휴가를 쓰지 않았다.
그러고서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몸이 아프면 안됐었다. 아이가 있으니 케어를 이어나가야 했고, 나는 그렇게 지쳐갔다.
체력도 너무 안 좋고, 자꾸 지치는 마음이 드니 이러다가 정말 일을 때려치겠다 싶었다. 육아 휴직을 쓸까도 고민했지만 사정상 내가 계속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육아 단축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지금 다니는 회사에는 결혼한 여성 분이 한분도 계시지 않는다. 스타트업이기도 하고, 연령대가 워낙 20대로 사회초년생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육아 단축에 대한 사례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육아 단축을 할 수 있는 곳에 면접도 봤었다. 아이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었고, 마침 육아 휴직하시는 분들을 대체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바로 지원을 했었다. 1차에 관련 팀장과의 면접은 호의적이었고, 합격할 것 같았지만 2차 면접 때는 대표님과의 면접이었는데, 아무래도 커머스 경험을 많이 보시는 듯 했다. 그래서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새삼 궁금하다. 누가 뽑혔을까. 안뽑았을려나.
결국에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육아 단축을 써야 하는데...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하나... 너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말하는 순간 퇴사를 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서 실제로 육아 단축을 하신 분의 블로그도 찾아보고, 관련 포스트도 엄청 정독하면서 어떤 식으로 육아 단축 절차를 밟게 되는지 확인 또 확인을 진행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베이스가 쌓인 뒤에 나는 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육아 단축을 하고 싶은데요"
*육아 단축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