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잎 Apr 10. 2019

chpater1. 막내작가에 지원하다

조연출 탈출?

1. 눈을 감으면 깜깜하지? 그게 네 현실이야.


대학교 4학년,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답답한 시절이었다. 사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과였다. 학교 선배들은 치킨 집 차리면 성공한 거라고 떠들어댔고, 마땅히 성공한 선배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홈커밍 데이라고 학교 선배들이 찾아오는 날이 있었는데 딱히 기억에 남는 선배가 없었다. '저들과 같아지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던 나의 모습만 있을 뿐...


영상을 다방면으로 배웠지만, 아주 얇게 배웠기 때문에 당장 기술을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 때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친구와 드라마 스터디도 했지만, 그마저도 의지박약으로 실패만 할 뿐이었다. 가끔 내가 썼던 소재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는 걸 보면 후회하기는 한다. 내가 먼저 썼어야 하는데... 진짜 시나리오를 썼으면 내가 성공했을까? 겟 아웃 소재를 내가 2년 앞서 생각했다고 말하면 믿어줄까? 믿거나 말거나. 가슴에 손을 얹고 '사실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과 나온 친구들에게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영화판에 뛰어들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참 멋있었다. 정작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회사에 들어가기에는 토익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쌓아 놓은 스펙 하나 없었다. 정말 스펙 제로였던 상황. 정말 눈 앞이 깜깜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2. 면접 보기 전에 카드 뉴스, 예고 만들어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는 자신이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조연출 대타를 구한다는 거였다. 생각해보고 전화 달라는 말에 그냥 하겠다고 말했다. 멋모르는 대학교 4학년이다 보니 방송국에 간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방송국 로고가 박힌 목걸이, 내 옆에 쌓인 원고들, 동글이 안경을 쓰고 사회생활에 찌들어갈 모습을 상상해보니 신났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 볼 생각에 신났다.


면접이 결정되자 담당 피디는 해당 프로그램을 모니터 한 후 카드 뉴스와 예고를 만들어 보내라고 했다. 카드 뉴스는 맥락이 잡히는데, 예고는 아예 감이 안 왔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내가 영상 편집보다 글 쓰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예고와 카드 뉴스를 본 피디님의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담당 작가들이랑 같이 확인해봤는데 예고는 정말 형편없었어. 작가들은 카드 뉴스가 예고보다 낫다고 하더라.' 사실 이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4년 내내 배운 게 영상 편집인데 못한다고 하니 그동안 뭘 배웠나 싶었다. 평가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담당 피디는 카드 뉴스를 보고 나를 뽑아줬고, 조연출로 일하게 됐다. 일주일에 예고편을 2개 만들어야 했는데, 이틀 정도는 밤을 새웠다. 사실 밤을 새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예고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흥미로운 말 짜깁기를 했다. 흐름을 잡고 구성할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예고를 만들면 담당 피디한테 피드백을 받았는데 예고편 만드는 '감'이 없다고만 말하고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어 보여줘도 같은 반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성'에 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결과가 나왔던 거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아직까지도 모호한 피드백을 들으면 너무 답답하다. 예를 들어 '보도기사를 섹시하게 써봐.' 이런 말들 말이다. 매력적으로 쓰라는 말, 나도 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네 보도기사는 섹시하지 않아.'이 말이 내가 촌스럽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괜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촌스러운 것도 매력 아닌가?


결국 나는 조연출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담당 피디는 일주일 뒤에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3. 혹시 주변 친구 중에 막내작가 할 친구 있어요?


다행히 조연출이 바로 뽑혔고, 인수인계를 하느라 일주일은 금방 갔다. 그만 두기 3일 전에 다른 팀 작가님이 나에게 찾아왔다. '혹시 주변 친구 중에 막내 작가 할 친구 있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저요.'라고 답했다. 아직까지도 내가 왜 그렇게 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담당 작가님은 너무 반가워하셨고, 그렇게 나는 막내 작가로 일하게 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