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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잎 Apr 10. 2019

chapter 2. 프리뷰 어떻게 하는 거지?

손가락 부서지도록, 눈이 빠지도록

1. 롤모델을 만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겁이 없다고 했던가?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악한 방송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두 프로그램 막내 작가로 시작했다. 2015년 당시 월급은 120이었다. 열정 페이. 정말 박봉이었지만, 그때 당시는 잘 몰랐다. 알바가 아닌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라 그저 신났다. 서울에 살려면 턱 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일을 시켜준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무엇보다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담당 메인 작가님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셨다. 정말 많이 배웠고, 아직까지도 나의 롤모델이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한 분이다.


2. 1시간 프리뷰 하는 데 하루를 쓰다


처음 맡은 프로그램은 도네이션 다큐와 휴먼다큐였다. 그래서 프리뷰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프리뷰 맡길 비용이 없다고 해서 내가 프리뷰를 맡게 됐다.


조연출이 파일을 뽑아서 주면, 타임코드와 장면을 적으면 된다. 1분 경과 시 0100 이렇게 적으면 된다. 1시간 30분 경과 시 013000 이렇게 적는 방식. 장면은 다양한데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B.S(바스트, 화면에 인물이 가슴까지 담긴 컷), C.U(클로즈업, 화면에 특정 부분이 크게 잡힌 컷), T.D(틸 다운, 화면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컷), T.U(틸 업, 화면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컷), PAN(팬, 화면이 오-왼, 왼-오로 움직이는 컷), 1S(원샷, 화면에 한 사람이 잡힌 컷). 이 외에도 정말 많다. 제작진에 따라 다르지만 표정까지 적어달라는 분도 있다. 슬퍼 보임, 행복해 보임, 눈물 흘림... 그때그때 다르다. 인터뷰의 경우 피디 질문에는 'P, ' '피', 'Q' 이런 식으로 표시한다.  대답하는 사람은 'A', '사람의 성'을 표시한다. 그리고 말하는 모든 것을 받아 적으면 된다. 여러 번 들어도 잘 안 들리는 부분은 @로 표시해 둔다.  해외에서 촬영해 외국어인 경우는 '번역 필요'라고 표시하고, 시작점과 끝점을 표시해준다. EX) <0100-0300 번역 필요>


참고로 나는 처음 1시간 프리뷰 하는데, 6시간이 걸렸다. 유독 많이 걸린 것 같아서 작가님 눈치를 봤더니 다른 막내작가도 그런 적이 있다고 해서 안심했다. 특히 인터뷰가 어려웠다. 1배속으로 했을 때 받아치지 못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니 6시간이 걸릴 수밖에. 나중에 스킬을 터득했는데 0.6배속, 0.8배속으로 하면 받아치기 편하다.


한 달 촬영을 해오면 거의 3일을 밤새서 프리뷰 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그때는 프리뷰 하면서 인터뷰 내용을 귀담아듣고, 화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만족했다. 다른 팀 언니들이 프리뷰 비용 받아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거의 두 달간은 프리뷰만 했다. 후회는 없다. 가끔 메인 작가님이 편집 구성안을 작성하실 때, '이런 인터뷰가 좋았어요. 이런 장면이 좋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프리뷰 속도는 하면 할수록 늘었다. 이제는 0.8 정도로 놓고 실시간으로 프리뷰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프리뷰 알바를 하기는 싫다. 정말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가끔씩 KBS 구성작가 협의회에 프리뷰 구인이 올라올 때마다 해볼까 생각은 하지만... 손목 건강을 위해 '쉼'을 선택했다. 프리뷰어님들이 정말 고생하시는 거다.


최근 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녹화 때 실시간 프리뷰를 했었는데, 정말 손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프리뷰를 시작한 분이라면 손가락, 손목 관리는 필수입니다.


3. 막무가내 조연출


프리뷰 관련해서 일화가 있다. 한 번은 3일 밤새서 프리뷰를 했는데, 조연출이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했다. 당황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이 프리뷰 중간 화면에 '블랙 화면'을 껴서 뽑아서 타임코드가 흐트러졌다는 거다. 어린 나이여서 당황하고 어떻게 대처할 줄을 몰랐다. 타임코드를 다시 표시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데, 조연출이 쉽게 보고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연출도 처음 방송국에서 일하는 거였는데, 나보다 나이도 많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 더 두려웠던 것 같다. 나 혼자 해결을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메인 작가님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작가님은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내셨고, 담당 피디님한테 가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결국 프리뷰는 다시 하지 않고, 편집을 진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막내작가였을 때는 내 목소리 하나 내기 힘들었다. 나보다 더 오래 일한 사람들, 방송 경력이 적어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메인 작가님이 안 계셨다면, 더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후배가 생긴다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줘야지 했는데...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후배 작가들을 많이 보호해주지 못한 것 같다.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많이 챙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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