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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Nov 29. 2023

엄마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역할에 대하여

 20대 후반에 결혼, 30대 초반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똑 부러지게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나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내가 이 소중하고 여린 생명들을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눈앞의 사실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왜 아무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았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특유의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잘해보고자 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잘 시간을 쪼개가며 글로 육아를 배웠는데 적용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수차례 겪었다. 책장으로 둘러싸인 거실에서 아이들과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최상위 수학 문제집을 머리를 맞대고 푸는 모습을 상상했다. 시간이 지나며 다 나의 욕심임을 인정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며 우리 아이들에게 맞춤한 일상을 만들어갔다.


학교에서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보면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고액의 학원비가 아까울 정도로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상위권 학생들도 오랜 학원 생활로 인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험 기간에는 학원에서 시험 범위에 맞춰 교재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한 교과서와 학습지가 아닌 학원 강사의 제본을 보며 시험공부를 했다. 우리 반 학생들을 설득했다. 지금 당장은 불안하겠지만, 스스로 학습 계획을 짜고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타임 플래너를 손에 쥐어주며 같이 해보자고 했지만 전교 1등인 학생마저도 불안해하며 결국 학원을 찾았다.




 이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을 무턱대고 학원부터 보내면 안 되겠구나.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 스스로 전문 서적이나 교재를 익힐 수 있는 능력, 당장 1,2점 올리기 위한 스킬이 아닌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워줘야겠구나. 처음부터 당연히 되는 일이 아니다.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 초등 시절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 보고, 무수히 실패해 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7살부터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참 좋다. 두 아이 모두 3학년때까지는 옆에 끼고 수학 개념부터 가르쳤다. 4학년때부터는 개념서, 유형서, 서술형 문제집 순으로 아이들이 서점에서 고른 문제집을 구매해 주고, 개념 공부부터 스스로 하도록 했다. 한글로 쓰여있는 개념과 내용을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해답지는 가지고 있다가 채점 해주고 오답 노트 기록에 대해 조언한다. 오늘도 고생했다고 채점 후 하트도 빼놓지 않는다. 해설서의 모범 답안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곧 해답지도 넘겨주려고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다. 문제집은 5장씩도 풀어보고, 1장씩도 풀어보다가 그날 단계나 문제의 양에 따라 스스로 정하게 했는데 보통 2~3장을 푼다. 이렇게 부담 없이 현행만 하는 것으로 초등 수학을 진행 중이다. 주말엔 쉬고 평일만 진행하는데, 학기별로 3~4권은 거뜬히 풀 수 있다. 다른 집은 지금 중학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는데.. 불안과 초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욕심을 내고 싶은 마음은 참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많으니까. 되도록 자식은 가르치는 거 아니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다가 집에 와서 또 아이들과 학습을 하다 보면 아직도 퇴근 안 한 느낌에 힘들 때가 많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되려 짜증을 내는 어이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독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간식에 신경 쓴다. 먹음직스럽게 차려놓고 독서시간! 외친다. 아이들과 간식을 먹으며 함께 독서하는 저녁 시간은 내게도 힐링이 된다.




 내 주변엔 가정 학습을 하는 동지가 없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뚝심 있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단단했다가도 한 순간에 으스러질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반기별로 정승익 선생님이 강의를 오시면 어떻게 해서든지 참석하려고 애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잘하고 있다고, 틀리지 않다고 격려를 받는 느낌이 든다. 이번 강의 중 끼니를 챙겨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김태호 PD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었다.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내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라고 답하는 그. 힘들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 그 장면을 보자마자 울컥 눈물이 났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20년 이후는 예측할 수 없다. 현시대에 맞춰 과도한 입시 공부를 시켜 지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난 우리 아이들에게 '하니까 되네!', ' 꾸준히 하고, 정성을 들이면 결국 할 수 있어!'라는 느낌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재능이 없으니까 시도도 안 하겠다는 고정형 마인드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하고 또 하다 보니 성공했을 때, '아! 나한테 재능이 있었나봐! '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과 성실한 태도를 심어주고 싶다. 아침에 헤어져 각자 생활을 하다가 저녁에 모였을 때 오늘 즐거웠던 일, 마음 상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꼭 안아주는 것. 밖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때 따뜻하게 사랑과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 그것이 엄마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최고의 부모는 가만히 있는 부모라 했다.)


돌이켜보니 아이들 앞에서 너무 힘들고 지친 모습을 많이 보였다. 나부터. 엄마부터. 행복해야겠다.


퇴근하자마자 저녁 먹기 전, 채점을 한다. 그리고 하트로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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