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말이 다가오니 또 불편한 소리들이 귓가에 맴돈다. 티오 감축에 따른 업무 분장의 변화, 반 배정에 선택 과목을 고려하지 않고 섞겠다는 통보, 교과 교실, 담임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으나 묵묵부답. 상황은 모두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고 있고, 관계자들과의 협의 과정 없이 통보식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귀에 들어오는 식이라 심히 기운이 빠진다. 새로 오신 관리자께 다시 한번 정식으로 말씀을 드려봐야겠다는 마음은 '해서 뭐하나?'라는 무기력으로 변해버렸다. 지난 주말은 내내 마음이 부대껴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월요일엔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3년 동안 이곳에 내 영혼을 갈아넣었기에 다친 마음은 아물기 더 힘들 것 같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이러다가도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생들과 울다가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 보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는 성스러운 직업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마음 깊숙이 자리했다. 수업시간 학생들과의 눈 맞춤, 교감, 싱그러운 웃음소리 한방이면 모든 건 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 보람과 기쁨이 더 컸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패배감, 여기가 싫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옮겨도 더 나을 것 같지 않은 절망감에 더해 수업과 생활지도, 업무로 끊임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오후에는 기진맥진 의자에 붙은 투명 젤리처럼 축 늘어지기를 수차례. 더 이상 입도 뻥긋할 기운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 문제는 집으로 제2의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에게는 너무 형편없는 엄마가 되어버린다는 것.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드나 했더니, 내가 무너지지 않게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그동안 해왔던 새벽 기상, 원서 읽기, 외국어 공부, 운동, 독서 모두 스톱.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하나씩 하나씩 그만두고 있었다. 무기력이라는 늪에 한 발 한 발 빠지고 있었다. 일상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꾸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미래를 위해 오늘을 꾹꾹 참고 사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을 자꾸만 한다. 이것이 지금을 빠져나오기 위한 핑계인지 진정한 마음의 소리인지 제대로 판가름하려 애쓴다. 한 학기 혹은 일 년 정도 나에게 쉴 시간을 줘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박봉이라도 이 월급으로 아이들 읽고 싶은 책도 사주고, 생활도 꾸려나가고, 부모님 병원비, 용돈도 챙겨드리는 중이라 걱정이 앞선다. 아무도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난 챙겨드리고 싶으니까.
또 답 없는 고민이 길어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을 재운 늦은 밤, 향기로운 얼그레이 찻 잎을 우려서 예쁜 찻잔에 따라 마시며 글을 쓰는 것뿐이다. 이렇게 조용히 나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