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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Nov 16. 2023

호우시절(好雨時節)을 만난 윤작가의 경이로운 나날

2028. 11. 8. (수) 하늘은 맑고 볕은 바삭했다.

 오전 8시. 커다란 야자수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평온한 아침이다. 사바아사나 자세로 온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두 눈을 뜨니 신선한 바람이 코끝에 닿고,  등에 살짝 밴 땀이 개운함을 더한다. 이곳은 발리 우붓. 전 세계 요기들의 힐링 스페이스다. 싱그러운 아침,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2년 전만 해도 출근 준비, 아이들 등교 준비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었다 하며 조마조마 마음 졸이고 있었을 텐데 꿈같은 시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열흘 전, 친정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 우리 가족은 함께 발리에 도착했다. 최근 오픈한 부티크 호텔에서 낮에는 정글 뷰를, 저녁에는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아름다운 선셋을 감상했다. 나의 오랜 소원 중 하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숙소에서 편안하게 모실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가족들은 행복한 휴가를 마치고 어제 오후 비행기로 귀국했고, 나는 2주 정도 더 머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의 삶도 차분히 계획해 보기로 했다. 남편의 배려로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 받았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 잡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 해산물이 먹기 좋게 담긴 브런치를 천천히 즐긴다. 휴대폰도 책도 잠시 밀어 놓고 이 순간의 느낌에 오롯이 집중하며 음미한다. 차분하게 한 끼 챙겨 먹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살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잠시 슬펐지만 이내 감사함이 차오른다. 룰루레몬 요가복을 입은 채로 시내를 둘러본다. 낮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모습이 정감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하다가 나무 그늘과 탁 트인 뷰가 맘에 든 카페에 들어가 현지 커피를 맛본다. 산미가 좀 있지만 나쁘지 않군. 오후까지 느슨한 자유를 만끽하다가 저녁에 있을 줌 강의를 준비하려 한다. 주로 학생들의 학습법에 대한 강의를 하지만 오늘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중국어-영어 번역가로 사는 것>에 대한 특강을 할 계획이다.




 교직 20년을 채우고 의원면직을 했다. 한때는 천직이라 여겼지만 나를 더 넓은 세상에 풀어놓기로 용기를 냈다. 5년 전 브런치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일은 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브런치 작가 데뷔는 마른땅이 해갈하듯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내 뜻을 펼쳐나갈 문을 열어주었다. 성장과 공유하는 모습을 늘 몸소 보여주시는 이은경 선생님은 어느덧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급변하는 시대와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파악하고 살아있는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에세이 출간을 시작으로 독서와 외국어 등 학습법에 대한 책을 꾸준히 쓰고 있다. 감사하게도 교육 관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 강연으로 이어졌고,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교육 사업을 하게 되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 존경하는 분들과 협업하는 과정이 즐겁다. 전공을 살려 중국 대륙의 작품이나 대만 영화, 드라마 번역도 1년에 2~3편씩 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지난 2년간 바쁘게 달려왔지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 앞에서 신명 나게 강의하고, 좋아하는 일을 기획하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매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왔던 두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기특하게도 여러 공부법을 시도해 보며 자기에게 맞는 학습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미래의 꿈이 실현되는 날을 그리며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막내의 메시지가 왔다. 선한 글투에 막내의 예쁜 웃음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안정지향적인 삶을 살던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뭘 할 때 가장 신나는지. 그 마음이 혹시 도피성은 아닌지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뜬 구름 같았던 꿈이 내 손바닥에 폭닥하게 들어온 알밤이 되었을 때 과감하게 한 발 내디뎠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는 <랩걸>의 한 구절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 5년 후 하루 (2028.11.10.)를 상상하며 먼 꿈을 꿔 봅니다. 어느새 원하는 미래의 순간에 도착해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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