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뛰기 : 예열이 필요해
도서관에서 <1cm 다이빙> 책을 빌려왔다.
가볍게 읽고 반납할 계획과는 달리 생각할 거리가 굉장히 많은 책이어서 이 책을 빌미 삼아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려는 1호와 2호가 내미는 여러 질문에 나도 생각하고 대답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내가 3호인 셈이다.
독자들에게 한 편의 자리를 내주고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이 책의 장점.
3호의 시작일지
[1cm라서]
지쳐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안 따라 주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다. 내 시간을 가지며 충전하는 사람이 저속 충전으로 몇 날 며칠을 버텨야 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게 급선무였다.
이러던 중에 책과 관련된 드라마를 봤고, 책 읽는 친구의 독서기록장도 봤다. 아, 올해 다 읽기로 하고 못 읽은 책도 있는데. 2년 만에 절반 읽고 내려뒀던 소설책을 꺼내 읽었다. 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오나 싶더니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1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뛰었다. 이런 기분이었지.
다음 날 아침, 아이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을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스마트 도서관으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에 읽는 책이라 무겁고 긴 내용의 책 보다 가벼운 내용이었으면 했고 그것이 또 너무 의미 없이 가벼운 건 싫었다. 적당히 생각할 거리도 있으면서 부담 없이 끊어가며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 1cm 다이빙. 다이빙을 하기엔 너무 하찮은 높이. 고민도 없이 곧장 대출을 했다.
프롤로그 읽어보니 지금 내 상황에 1cm 다이빙이 딱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근데 사실 누굴 데려다 놔도 누구든 1cm 다이빙할 상황일 거다.)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진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삶의 가이드가 바뀔 변화를 기대하며 나도 시작한다. 1cm 다이빙.
Q. 스마트폰보다 재밌는 거 있어요?
[난 글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원래 뜨개질이 1초 만에 바로 나올 대답이었는데, 잠시 망설여보니 뜨개질도 핸드폰 없으면 못한다. 도안을 보거나, 아님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봐야 한다. 이건 뜨개질이 재밌다기보다 스마트폰의 재미에 기대서 뜨개질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스마트폰 없이 내가 온전히 즐기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글.
글을 쓸 때는 손과 눈과 머리가 동시에 글에만 집중해야 한다. 반면 뜨개질은 손만 뜨개질하면서 눈은 화면과 편물을 번갈아 보는 데다가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글 쓸 때만큼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글자 한 자 한 자에 집중을 하는구나. 게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쓴다. 한 문장을 쓰면 다음 문장, 그다음 문장이 줄줄 떠올라서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내 생각보다 글쓰기에 정말 진심이구나.
이렇게 재밌는 걸 핸드폰 게임과 영상에 미뤄놓은 채 살았다니.
글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
한 달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계획 짜기. (계획 짜는데 미친 J)
동생이랑 수다 떨기
아이들 샤워시키고 옷 갈아 입히고 같이 요구르트 먹기.
Q. 30초 안에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면
[그때 그때 다르겠지만 현재 나의 비타민 선곡]
악동뮤지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스탠딩에그, 넌 이별 난 아직
가을방학,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스웨덴세탁소, 우리가 있던 시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가사가 서정적인 노래.
서사가 담긴 노래
어... 근데 내 선곡을 보니까 난 차분하고 조용하고 이야기하는 듯한 가사의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나름 노래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이것저것 잘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기분 좋아질 곡을 모아보니 결국 이런 노래들이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노래에서 위로를 받고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Q.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뤄왔던 거 있나요?
[나에게 플렉스 하기]
애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나에게 쓰는 돈에 제일 먼저 인색해진다. 원하는 대로 펑펑 쓰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소확행은 장 보러 가서 이따가 먹을 과자 하나 담기, 지나가던 문방구에서 예쁜 수첩 하나 사기, 이 정도다. 나를 위해서 큰돈을 써 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도 안 난다.
물론 내가 쓰는 노트북을 바꿨다. 그렇지만 이건 날 위한 소비라기보다는 노트북이 고장 나서 바꾼 거였다.
내가 버는 돈이 없으니 남편이 번 돈을 내가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인 것 같다. 뭔가를 사려다가도 '에이, 그게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에 멈칫하게 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 자신을 챙겨주고 선물을 사주나 하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의 위로가 있지만 그 마저 현실적이지 못하다. 전업주부에게는 이게 현실이다.
나에게 플렉스를 한다면,
간장 게장 먹으러 가서 애써 다리까지 쪽쪽 빨아먹지 않고 몸통만 적당히 먹고 버리기.
돈 아깝다고 맨날 눈으로만 먹고 지나가던 샐러드 집에서 제일 비싼 샐러드 사 먹기.
재봉틀 원데이 클래스나 단기 과정 수업 들으러 다니기.
카페에서 제일 싼 음료 말고 이것저것 추가해서 엄청 비싼 음료 마시기.
가격 생각 않고 예쁜 옷, 입고 싶은 옷 사기.
지방 사는 친구 집에 선물 사 들고 훌쩍 가서 놀다 오기.
머리 단발로 자르고, 파마도 하기.
어떤 운동이든 운동 시작하기 (수영, 헬스, 클라이밍 등등...)
Q. 내가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리스트
[막상 사려니 없어도 살 수 있는거라 망설여지는 것]
15인치 노트북 파우치
갤럭시 탭 S7 키보드 북커버
노트북 거치대
책 <보건교사 안은영>,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갤럭시 탭S7 파우치
애플 워치
칼림바
LED 무드등 고속충전기
수채화 도서
라탄 공예 키트
Q.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 있나요?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공간]
바깥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뺏기는 내향형 인간이기도 하고,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거나 변해 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바깥에서 나의 힐링 스팟을 찾는 것보다 안전한 공간에서 나의 힐링 스팟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너무 좋다.
내 책상.
쉴 새 없이 엄마를 찾는 꼬맹이들 때문에 아이들과 있을 땐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여기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내 시간이라는 뜻이다. 난 여러 개의 부캐가 있는데 이 책상 앞에선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뜨개질하는 켜나, 글 쓰는 차여름, 그림 그리는 대꼼.
엄마로, 아내로, 남을 위해 정신없이 살다가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공간.
내가 내 이름을 찾아가는 공간. 여기만큼 기분 좋은 공간은 없다.
별 것 없이 행복해지기 위한 여정을 떠난 태수 씨와 문정 씨를 보면서
나도 그 행복 찾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 같은 일인지 모른다.
사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
흔하면서도 와닿지 않는, 공감 안 되는 관용어 같은 말이었는데
뭔가 이젠 확실히 와닿는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웃기도 하고 위로도 받으면서 1장이 끝났다.
2장에선 어떤 질문으로 내 행복을 꺼내 주려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