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다이빙> 2

손목 털기 : 가벼워지는 연습

by 차여름

Q. 버리고 싶은 나의 모습 한 가지

[내 탓이 아니야]

성격 상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고, 웬만한 트러블은 그냥 내 희생으로 감수했다. 참고 살고 맞추며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만 맞춰주면 서로서로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로서로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만 좋은 거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식이었다. 학교에서도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는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흔한 다툼 한 번 없는 착한 친구였다. 마음에 안 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땐 그냥 혼자 숨어서 울고, 일기장에 쓰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고쳐야겠다는 성격인 걸 알았지만 어릴 땐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답답하고 힘든지도 모르고 당연하게 지냈다.


이런 성격이 만들어 낸 모습 중 하나가 내 탓이다. 어떤 문제 상황이 물론 내 잘못으로 벌어진 문제 상황 일 수도 있지만, 내 탓이 아닌 상황이나 또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상황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화살을 결국 나에게 돌려야 내 마음이 편했다. 남 탓을 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내가 그 사람을 대할 때 악의적인 감정이 들 텐데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 탓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직장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면 '애초에 일을 이렇게 해서 욕먹는 내가 잘못이지. 내가 잘했으면 욕도 안 먹었을 거 아냐.'. 카페에서 걸어가는 누군가와 부딪혀 음료를 쏟았을 때는 '내가 좀 더 잽싸게 피했어야 했어. 나는 좀 빨리 걷지, 왜 느긋하게 걸어가지고...'. 중간에서 말을 잘못 전달받아서 일처리를 잘못했을 때는 '내가 한번 더 확인했어야지, 진짜 멍청해가지고.' 이런 식이다.


나에게는 남 탓 정신이 필요하다. 네 잘못은 네 탓, 내 잘못도 네 탓. 남 탓하며 사는 삶 속에선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청렴하고 결백한 사람일까? 최소 마음은 편할 것 같다. 내 잘못이 없으니 당당하고 내가 잘못하거나 멍청해질 일이 없으니 자신감이 넘치겠지. 내가 남들 눈치를 많이 보고 자신이 없는 것은 '내 탓 정신' 때문 인 것 같다.


나는 잘못 안 해. 잘못은 네가 하지. 이런 마인드로 살면 늘 나에게 욕먹는 내가 좀 더 행복해 질까?



Q. 작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 본 순간이 있나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자를 찢은 날]

내가 생애 처음으로 '일탈'이라는 것을 해 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학교에서 나는 조용조용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다. 야자를 짼다는 건 양아치 일진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모두가 예민한 고3 수능 전. 나는 숫자와 내외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흔히들 얘기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 수학 선생님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기보다는 자극을 주면서 공부시키는 성향의 선생님이셨다. 내가 수학을 진작에 포기한 것도 아셨는데, 어느 날 수업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콕 짚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수학 안 하겠다고 했지?"

"네? 네..."

"저렇게 하려는 자세도 없이 못하겠다고 손 놔버리는 애가 무슨 일인들 하겠냐?"

문제 풀이하다가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친구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고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능이 너희 인생 전부 같지? 아니야. 근데 고작 이런 것도 못 하겠다고 포기해 버리면서 대체 뭘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수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수학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지도 않았고, 이해는 안 되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하고 똑같이 책 펴고 가만 앉아서 선생님 쳐다보며 열심히 듣고 있던 나에게 왜 저런 말을 던지시는지 이해가 안 됐다. 선생님이 나한테 개인적인 악감정을 품으실 만큼 내가 선생님께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걸까? 게다가 진지하게 걱정하며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비웃는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는 계속 그렇게 포기하고 도망가면서 살아. 다른 친구들은 되든 안 되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결국 성공을 거머쥘 때 너는 옆에서 부러워하고 박수나 쳐 주라고. 자, 다음 문제 풀어보자."

힐끔 거리는 친구들의 시선에 각종 동정과 눈치가 묻어났고, 난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괜찮은 척 수학책에 낙서를 끄적이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선생님의 저 멘트가 나를 자극시켜 오기로 공부하게 만드려고 쓰신 방법이었다면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반 친구들이 집중하는 가운데 나에게 인신공격을 한 선생님의 언행이 한순간에 날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수학 시간 이후 기분이 계속 다운되어 있는 나에게 한 친구가 제안했다. 야자 쨀래?

내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교칙을 어겨도 되는 건 아니었기에 단칼에 거절했다. 오늘 야자 담당 수학이야.

그 친구의 한마디에 책상을 정리하던 손이 멈칫했다. 내가 기분이 안 좋다고 교칙을 어겨도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너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서 이런 짓까지 했다는 걸 보여주고는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야자를 째기로 했다. 목표는 저녁 먹고 나가서 야자와 심자 사이 30분 쉬는 시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주머니에 지갑만 챙겨서 자연스럽게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에는 저녁 먹고 공을 차는 친구들, 산책을 하는 친구들, 벤치에 앉아 수다 떠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교문 밖으로 나왔다.

야호!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교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교문도 심야 자습 끝나고 아이들이 하교할 때 까지는 계속 열려있을 것이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저녁이 맛없어서 많이 안 먹었는데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래? 시골 학교라 동네에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옆 동네까지 갔다. 친구들 모두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나는 나와서 햄버거를 먹고 있다니! 별 것 아니지만 묘한 해방감에 속이 시원했다. 걸리면 혼나겠지만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늘한 저녁 공기의 냄새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도, 마침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모두 다 좋았다.

핸드폰도 없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해가며 잠시나마 일탈을 즐긴 우리는 야자와 심자 사이 30분 쉬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다시 도착했고, 또다시 운동장에 나와있는 아이들 사이에 섞여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다음 날, 나와 내 친구는 수학 선생님께 불려 갔고, 몇 시간 잠깐 일탈을 한 대가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멍이 들도록 맞는 것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정신 못 차리고 이딴 짓을 하는 거 보니 미래가 안 봐도 뻔하다는 비꼬는 말투를 들으며 말이다. 비록 의자에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붓고 아팠지만 기분만은 후련했다. (걸리지 않았다면 더 찝찝했을지도 모른다.)

이후 난 절대로 야자를 빠지지 않았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수학선생님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수학 시간엔 한 시간 내내 불타는 눈빛으로 수학선생님을 노려봤고, 저 멀리 수학선생님이 지나가면 다른 길로 돌아갔으며, 최대한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수학선생님을 싫어하던 감정은 사그라들었지만 야자 쨀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신나고, 짜릿하고, 상쾌했으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내가 수학 포기하고도 이렇게 성공한다며 보란 듯이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말 안 듣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사소하지만 이렇게 수학선생님한테 엿을 먹였구나 하는 뿌듯한 기분.



Q. 나의 인생 영화를 소개해 본다면

[100% 마음에 쏙 드는 영화는 없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도 아니고, 100분에서 120분 그 짧은 시간에 나를 홀리는 영화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모든 영화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물론 재밌고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영화들도 많았다. 하지만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내 마음에 쏙 드는 100%의 영화는 없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음악이 너무 좋아.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 이 영화는 반전이 정말 대단해. 그렇지만 이것도 영화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일 뿐 이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는 영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를 봐도 완전한 만족이 없었으니 인생영화라고 불릴 것도 없다.


지금 추천 한 영화가 나중엔 별로일 수도 있고, 그 당시에는 극찬을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유치하기도 하고. 이렇기에 섣불리 인생영화라 이름 붙이기도 경망스럽고, 자신 있게 추천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나친 완벽주의 성향이라서 이러는 걸까?




Q. 내 멋대로 자소서를 써보자 (자소서에 쓰지 못한 당신의 장점은?)

[웃으면서 비꼬기]

자소서에는 쓸 수 없는, 남편도 인정하는 나의 대단한 능력이 있다.


"저는 욕을 한마디도 안 하고 소리도 안 지르고 화도 안 내면서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소리 지르고 욕하는 본인의 모습에 현타 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전 집 살 때 윗집 사람이 우리 남편한테 무례한 말을 몇 번이고 했는데 남편은 거기서 발진하면 큰 싸움이 날 거 같아서 아무 말 안 하고 참았다고 속상해한 적이 있었다. 아니 제 3자인 나도 열 받는데 오빠는 거기서 가만히 있었어? 그렇지만 큰 일 안 만들고 잘 참았다 다음에는 내가 코를 눌러주겠다 약속하고 벼르고 있었다.

윗집 아저씨는 기본적으로 무례함이 탑재된 사람인데 본인이 늘 잘났고 상대를 깔보는 식의 말로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이었다. 늘 별 거 아닌 걸로 사람을 돌려까고는 웃으면서 대화한다. 우리 남편은 욕도 찰지게 잘하고 힘도 세서 주먹다짐을 잘하는 사람이지만(학생 때 그랬다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상대를 빡 돌게 하는 싸움을 잘한다. 여보, 지금은 내가 나설 때야.


언젠가 저녁 먹고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고 나간 남편이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자 여자의 육감으로 눈치를 챘다. 윗집 아저씨한테 잡혀 있겠구나. 쓰레기 버리러 가는 척 종량제 봉투를 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윗집 아저씨는 또 실실 웃으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남편한테 뭐라 뭐라 퍼붓고 있었고, 남편은 똥 씹은 표정으로 눈도 안 마주치며 그걸 다 들어주고 있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안 살지. 애들은 부모 보고 배운다는데 부모 직업이 뭐냐에 따라서 애들의 꿈이 달라지는 거 생각 안 해보셨죠? 그러니까. 본인이 본인 자식이었으면 부모가 자랑스럽겠어요?"


멀찍이서 대충 들어도 오늘은 남편 직업으로 돌려까나보다. 저래 놓고 늘 결론은 아니 걱정돼서- 내 동생 같아서- 이딴 말로 본인의 무례함을 포장하려 들 것이다. 그럼 나도 똑같이 해줘야지. 담배연기에 과하게 콜록거리는 척을 하며 남편 옆으로 갔다.


"콜록콜록. 오빠, 왜 여기서 담배연기 맡고 있어? 담배 피우지도 않는 사람이. 얼른 들어가자 춥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아직도 담배 피우세요? 애들은 부모 보고 배운다는데 아이들이 아빠 보고 담배도 일찍 배우겠어요. 하하하. 혹시 이런 걸로 기분 나쁘고 그러진 않으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윗집 아저씨가 뻘쭘하게 목례를 살짝 하고는 약간 고개를 돌려 조금 남은 담배를 후다닥 피우고 발로 비벼 껐다. 그러고는 담배꽁초를 발로 툭툭 쳐 한쪽 옆으로 밀어놓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깔짝였다. 이 정도만 하고 들어갈까 하다가 이왕 하는 거 조금 더 엿 먹이기로 했다.


"거기서 담배 피우시면 담배연기 저희 집으로 그대로 들어와요. 그래서 저희 집은 여름에도 창문 못 열어놔요. 애기들이 있는데 담배연기가 너무 들어와서요. 그리고 담배꽁초는 어디 한 곳에 모아두던가 해 주세요. 애들이 모를 거 같아도 다 알거든요. 여기 있는 담배꽁초들 가운데 자기 아빠 지분이 상당한 거요. 부모 직업보다는 부모의 언행이 자녀 인성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건 모르셨나 봐요."

"네?"

"아 괜찮아요. 지금부터라도 알면 되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네? 대화요."

"지금 그쪽이 자녀교육 어쩌고 얘기하는 거요."

"아, 그런 얘기 먼저 시작하셔서 저도 같이 낀 건데요? 저는 자녀교육에 되게 관심 많으신 분 인줄 알고 신나서 얘기한 건데..."


위층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그리고 그 집 아이들이 저를 수없이 봐도 인사를 안 하더라고요. 인사하는걸 못 배운 건지 아니면 저 같은 사람한테는 인사할 가치도 없다고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자녀교육이고 가정교육 아닐까요? 아니 뭐, 저는 괜찮은데 다른 데 가서 그러면 가정교육도 못 받은 애들이라고 꼭 한 마디씩 하더라고요."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선 넘으시네요?"

"제가요? 이게 선 넘는 거라 하시면 아저씨는 일찌감치 선 넘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이거 시비 거는 거죠?"

"어우 시비라고 하시면 너무 서운하네요. 저는 걱정돼서 그런 건데."

"에이 시발. 어디 어린 새끼가 재수 없게 진짜."


이 말을 들은 남편이 욱하길래 가만히 있으라고 눈치를 줬다. 하지 말라고.

자고로 이런 데서는 먼저 욕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지는 거다.


"걱정해서 조언해주는 걸 이렇게 받아들이시니 저보다 나이만 많았지, 생각은 아직 저보다 어리신 것 같아요."

"뭐? 이 새끼야?"

"그, 본인의 자존감 채우는 방식이 되게 특이한데 남을 까내리면서 채운 자존감은 진짜 자존감이 아니라 일시적인 해방감 정도거든요. 결국 모래성인데 파도 한 번에 무너질 성 쌓아놓고 얼마나 뿌듯해하셨을까... 본인은 그걸 모르는 거 같아서 안타깝네요."

"하, 진짜 그 남편에 그 마누라네. 그러니까 끼리끼리 잘 만났지."

"아~ 끼리끼리 만나는 거구나. 제가 그쪽 아내분 못 뵀는데 안 봐도 어떤 분인지 알 거 같아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는 거네요? 오, 만나면 피해야겠어요. 제가 딱 싫어하는 타입이거든요."

"시발 야 너 말 다했어?! 돌았어?!"

"왜 자꾸 소리를 지르세요. 저는 욕도 안 하고 말도 안 놨는데 ^^. 괜히 할 말 없는 사람이 언성 높이고 욕하고 그러더라고요. 욕 하시는 거 보니까 할 말이 없는가 본데 저희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추운데 얼른 들어가세요~"


열은 받는데 나를 차마 때릴 수도 없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위층 아저씨를 뒤로하고 남편 손을 잡아끌고 공동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위층 아저씨에게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빠! 입에서 말이 아니라 똥이 나오는 동물은 그냥 무시하라고 했지! 사람 같은 사람만 사람 취급해주라니까?!"


내심 이 말이 불씨가 되어 큰 불로 번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위층 아저씨도 찔림이 있는지 더 큰 싸움이 되진 않았다. 이후 위층 아저씨는 남편을 보면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몇 달을 더 지내다가 우린 이사를 했다.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라 여기서 멈추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여기에 없는 질문도 있다.

1호와 2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본인의 이야기도 하고 싶어 질 테고, 그럼 이렇게 썰을 풀어놓다 보면

현실에서 1cm 벗어나 행복해지는 법은 생각보다 쉬운 거였다는 걸 알게 될 거다.


흔하고 뻔한 말로 행복해지라는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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