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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아 Jan 28. 2023

브랜드의 정체성은 진정성이 만든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와 스포티파이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은 브랜딩의 시대인 것 같다. 브랜드 제작 환경이 전 세계적으로 샹향 평준화되어 이제는 제품을 넘어서 고객에게 말을 거는 브랜딩의 방식이 중요해졌다. 섬세한 감각의 고객들은 취향이 점점 좁고 뾰족해지고 있다. 우리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고,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브랜드 전략도 정말 다채로워졌다.


직업이 브랜드디자이너라 다양한 브랜드를 들여다보고 공부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팬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마켓과 목표 고객의 특성을 고려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여기에 확실한 정체성까지 담아내는 브랜드를 만날 때 더욱 그렇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고 고객은 어디에서 느낄까?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브랜드를 추려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보였다. ‘이 브랜드는 정말 진심이다!’ 느껴지는 포인트를 하나씩 갖고 있다.




가죽에 진심인 보테가 베네타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는 장인 정신으로 만든 가죽 제품으로 시작했다. 품질 좋은 가죽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시그니처인 인트레치아토(가죽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디자인)가 되고, 일상에서도 함께하기 좋은 보테가 베네타의 작품이 된다. ‘가죽’이야말로 50년이 넘도록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이들의 정체성이다. 전 세계 패션하우스가 다 함께 비건 가죽 사용을 노력하는 요즘에도 보테가 베네타가 뚝심 있게 가죽을 사용하는 이유다.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컬렉션에서도 중심은 가죽이었다. 그는 올드한 이미지를 타파한 ’뉴 보테가‘를 보여주며 보테가 베네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가죽의 제철이라 할 수 있는 Fall-Winter 컬렉션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 아이템으로 구성한 착장이 많았다. 컬렉션에서 매번 가죽의 사용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가능성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 아이템으로 구성한 2019 FW 컬렉션



특히 인트레치아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카세트백은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뀐 지금도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니엘 리는 카세트백으로 하우스의 전통을 지키면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줬다. 하우스의 역사를 다시 쓴 시너지는 젊은 디자이너의 감각 아래 가죽이라는 단단한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죽의 직조 패턴을 부풀린 카세트 백의 패딩 버전. 그린, 오렌지 등 선명한 컬러를 입혀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더스트백이 왜 250만원대인가 했더니 이것도 가죽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로 바뀐 지금은 어떨까? 그만의 뉴 보테가 시대를 열었던 Fall 2022 RTW(Ready to wear) 컬렉션을 보고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보테가 베네타는 정말 가죽에 진심이구나! 담백하다 못해 심심해 보이기까지 했던 첫 착장만으로 모두가 열광했다. 평범한 탱크톱과 데님이라고 생각한 피스가 알고 보니 데님 프린팅을 한 누벅(가죽) 일 줄이야! 이어진 Spring 2023 컬렉션에서도 가죽의 활약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플란넬 셔츠, 폴로 티셔츠 등 일상적인 아이템까지 모두 가죽으로 만들었다. 프린트 12개를 레이어드 해서 만든 (가죽)플란넬 셔츠야말로 가죽이라는 그릇에 담아낸 보테가 베네타의 장인 정신과 기술력을 드러낸다.



가죽에 진심임을 보여준 Fall 2022 RTW첫 착장과 Spring 2023의 플란넬 셔츠. 모두 가죽을 사용해 하우스의 전통 기법으로 제작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작업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보테가 베네타가 50년 넘게 지켜온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다니엘 리가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매력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다면, 마티유 블라지는 우리가 알고 있던 보테가 베네타의 매력에 깊이를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더 가죽에 진심임을 보여줄까! 그가 내놓은 더블 칼리메로 백을 보고 있으면 가죽을 대하는 하우스의 진중한 태도와 함께 여유로운 위트가 느껴진다. 앞으로 보여줄 가죽의 무한한 가능성과 보테가 베네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패딩 처리한 양가죽 소재를 인트레치아토 위빙을 활용해 제작한 더블 칼리메로 백. 1천 3백만원대





플레이리스트에 진심인 스포티파이


스웨덴에서 시작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는 4억 2천만 사용자, 여기에 유료 사용자 2억 명을 확보하며 전 세계 1위가 되었다. 다운로드와 저장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게다가 음악을 무료로(한국에는 무료 스트리밍을 제공하지 않는다.)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파격이자 혁신이었다. 그럼 굳이 유료로 쓰는 이유는 뭘까? 스포티파이 앱의 홈 화면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들 서비스의 핵심이자 정체성은 플레이리스트라는 것을.


스포티파이는 원하는 음악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 수 있는 유료 전용 기능을 제공하며 사용자를 모았다. 듣는 것을 넘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사용자들은 끌어당겼다. AI 알고리즘을 도입한 지금은 사용자의 청취 활동을 기반으로 최적화된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다. 내가 평소에 어떤 음악에 좋아요를 누르고 저장, 공유하는지뿐만 아니라 건너뛴 음악까지 파악한다. 내 취향에 맞을법한 음악을 선별하고 분류해서 음악이 필요한 모든 순간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준다.



스포티파이 홈화면에서 제공하는 내 취향 맞춤 플레이리스트들. (feat. K-POP 덕후)



왜 플레이리스트였을까? 스포티파이는 사용자의 잠재적 창의력을 일깨운다는 모토를 갖고, 사용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최대한 빨리 찾아주는 서비스가 되고자 한다. 사용자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취향의 세계를 탐구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경험이 있을까? 플레이리스트는 사용자가 더 많은 음악을 듣도록 유도해 사용자에게는 정서적 만족감을, 회사에는 경제적 이윤을 창출한다.


그래서 스포티파이는 누구보다 플레이리스트에 진심이다. 매주 월요일의 ‘Discovery weekly’와 장르별 신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Fresh Finds' 플레이리스트는 음악을 고르는 스포티파이의 신선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외출 전 오늘의 음악 스타일링 플레이리스트부터 반려동물을 위한 펫 플레이리스트, 한 해의 음악 취향을 결산해 연말에 제공하는 Wrapped 플레이리스트까지! 플레이리스트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다 보여주는 중이다. 심지어 유료 구독을 해지하면 노래 제목으로 굿바이 메시지를 담은 플레이리스트까지 제공한다. 취향이 확실한 사용자와 섬세하고 창의적인 스포티파이 사이에는 늘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Discovery weekly 플레이리스트는 론칭 5년만에 사용자들이 23억 시간동안 들었다.(2020년 기준)

 

장르별 신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Fresh Finds 플레이리스트

 

오늘의 음악 스타일링 플레이리스트 / 펫 플레이리스트 / 굿바이 플레이리스트



서비스의 기능들도 플레이리스트를 중심으로 추가, 보완된다. 맘에 드는 음악을 발견해 알리고 싶다면 ‘소셜 리스닝(social listening)’ 기능을, 단둘이 음악 취향을 공유하고 싶다면 ‘블렌드(Blend)’ 기능이 있다. 최근에는 최대 10명까지 연결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와도 연결할 수 있게 개선되었다. 이 기능들은 음악 취향의 발견과 탐구를 넘어 사용자 사이의 공감과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비슷해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에서 스포티파이가 남다른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플레이리스트라는 강력한 정체성이 있다.


원하는 사용자와 취향을 공유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는 블렌드(Blend) 기능




브랜드의 정체성이란 우리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메시지이자 사용자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포인트다. 정체성이 명확할 때 지금은 작은 규모일지라도 단단한 밀도의 팬층을 만들 수 있고, 브랜드 영향력의 저변을 넓힐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은 좋아 보이는 시각물이나 광고 마케팅만으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의 정수에 도전했을 때 비로소 고객이 알아보고, 세상이 반응한다. 보테가 베네타가 가죽을 사용하는 방식과 스포티파이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태도가 그렇다.


나를 소개할 때 ‘브랜드디자이너‘라는 이름이 디자인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모호하다고 생각해서 최근에는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탄생과 성장을 돕는 디자이너‘라고. 정체성 없는 브랜드의 탄생은 미래를 그려보기 힘들고, 정체성 없이는 브랜드의 성장이 더디고 어렵다. 가죽과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진정성으로 확실한 정체성을 만든 보테가 베네타와 스포티파이를 보며 배운다. 내가 만드는 작업물에서 브랜드의 진정성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고.





도움이 되어준 글

새로운 클래식이 된 보테가 베네타의 카세트 백

2022 F/W VOGUE KOREA RUNWAY MILAN HIGHLIGHTS

보테가 베네타 2023 S/S 컬렉션의 키워드 4

[써봤다] 쓰면 쓸수록 매력적인 너, 스포티파이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스포티파이'가 당신에게 노래를 추천하는 법

[IT강의실] 스포티파이 사용자라면 알아야 할 기능 7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제 스포티파이 '블렌드'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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