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포장지 뒤에 지켜야 할 알맹이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패키지 디자인은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옷차림만으로도 그 사람의 취향, 성격, 심지어 직업까지 짐작하곤 한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보면 꼭 비싼 옷이 아니더라도 확실한 정체성이 보인다. 이건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겉모습을 흉내낸다고 해도, 입은 사람의 '본질(Essence)'과 어울리지 않으면 어색하고 불편해 보인다.
패키지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보기 좋은 그래픽, ~같은 느낌이 드는 옷을 입히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그게 진짜 우리 브랜드의 옷으로 보이는지는 의문이다. 패키지 디자이너가 해야 할 진짜 역할은 우리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Identity)'을 정의하고, 그것을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에 맞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번역해내는 일, 가장 우리다운 옷을 찾아주는 일이다.
오늘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즉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디자이너가 고민해야 할 '선택과 집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매체의 특성을 반영한 아이덴티티 전략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불변의 것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유연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에게 청바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해도, 어디서든 청바지를 입을 수는 없으니까. 패키지 디자인 역시 '어디서(Where)' 소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디자인 화법이 달라진다. 본질은 지키되,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옷을 입는 것이다.
엄지손가락 위의 전쟁, 온라인 (Online)
스마트폰 화면 속 썸네일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너무나 좁은 공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섬세하고 우아해요"라며 얇은 서체와 파스텔톤을 고집하는 건, 시끄러운 클럽에서 속삭이는 것과 같다. 온라인이 주력이라면, 작은 화면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과감한 대비(Contrast)'나 '단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법일 수 있다.
0.5초의 승부처, 오프라인 (Offline)
반면,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마주하는 오프라인 매대는 '물성'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브랜드라면, 화려한 금박 로고를 박는 것보다 묵직한 종이의 질감(Texture) 하나가 더 호소력이 짙다. 조명 아래서의 반짝임, 손끝에 닿는 감촉, 들어 올렸을 때의 무게감. 이 모든 물리적 경험이 모여 "이 브랜드는 진짜다"라는 확신을 만든다.
정보의 위계와 브랜드 에센스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로고도 잘 보였으면 좋겠고, 성분도 강조하고 싶고, 제품명도 잘 보이면 좋겠어요."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강조하려다 보면 정작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소음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패키지디자이너는 때로 냉정한 '편집자'가 된다. 복잡한 장식들을 걷어내고 브랜드가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클라이언트에게 묻는다. 처음 보는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진짜 중요한 것, 구매할 수 밖에 없는 강점을 하나만 고른다면요? 수많은 가지치기를 통해 나온 딱 한 가지 대답이 바로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우리 브랜드의 에센스가 '순수함'이라면, 화려한 수식어구는 다 덜어내고 깨끗한 여백을 남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에센스가 '강력한 효능'이라면, 감성적인 일러스트 대신 투박하더라도 신뢰감을 주는 고딕 서체와 숫자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Key Message) 하나를 위해 나머지는 조연으로 만드는 연출이 필요하다. 덜어내는 것은 불안한 일이 아니라, 본질을 더욱 뾰족하게 다듬는 과정이다.
차별화를 위한 디자인 언어
수많은 경쟁 제품들 사이에서 우리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올까? 나는 그것이 '낯설게 하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물론, 단순히 튀기 위해 이상한 옷을 입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브랜드답기 때문에'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사들이 모두 '맛'을 강조하기 위해 식욕을 돋우는 빨간색을 쓸 때, 우리는 '프리미엄'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무채색을 선택할 수 있다. 모두가 제품 사진을 크게 넣을 때, 우리는 타이포그래피만으로 브랜드의 자신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남들이 다 하는 안전한 길을 벗어나는 건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브랜드가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이런 브랜드니까'라는 단단한 확신이 있을 때, 차별화는 전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태도가 된다.
결국 패키지 디자인은 예쁜 포장지를 만드는 일을 넘어,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철학(Philosophy)과 본질(Essence)을 소비자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Reality)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 실체는 감성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치열한 시장에서 우리 브랜드의 철학이 흔들리지 않고 소비자에게 닿으려면, '논리'라는 단단한 뼈대가 필요하다. 나는 작업을 마칠 때마다 '설득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꺼내 들고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이 컬러가 브랜드의 에센스를 대변하는가?"
"이 서체는 브랜드의 화법이 연상되는가?"
"이 구조와 소재는 우리가 지향하는 태도와 이어지는가?"
이 질문들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 때, 디자인은 비로소 '밀도(Density)'를 갖는다. 이유 없는 장식이 걷어지고,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만이 남은 단단한 디자인. 그것이야말로 디자이너가 브랜드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옷이 아닐까.
모니터 앞에서 시안을 만들기 전에는 늘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짓고 있는 이 디자인 속에, 브랜드의 어떤 철학이 숨 쉬고 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 때, 모니터 속의 디자인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소비자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는 강력한 브랜드가 될 거라 믿는다.
나만의 탄탄한 기획이 담긴 BX/패키지 프로젝트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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