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디자이너의 샘플 제작법
멘토링을 진행하다 보면 당황스러운 장면을 마주한다. 포트폴리오에 패키지 디자인이 들어가 있는데, 실제로 출력하거나 조립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경우다. 화면에서 완성된 걸 확인했고, 3D 목업으로 렌더링도 해봤으니 된 거 아니냐고 한다. 이해는 간다. 패키지 제작에는 돈과 시간이 들고 그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화면으로만 디자인을 확인하는 습관이 이미 굳어진 경우가 많다.
이건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무를 하면서도 디지털 파일로만 확인하고 시안을 넘기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받아들고 당황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화면에서 보이는 크기와 실물의 크기감은 다르고, 파일 위에 올려진 그래픽과 접히고 조립된 상자 위의 그래픽은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화면은 촉감도, 무게도, 손에 들었을 때의 비율도 보여주지 않는다.
맞다. 제작사에서 본 제작 전에 샘플을 만들어주는 과정은 분명 있다. 그런데 제작사 샘플은 확인하는 목적에 따라 용지와 후가공, 인쇄 색 교정, 지기구조를 따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용지와 홀로그램 후가공의 질감이 어떤지, CMYK 색감이 의도한 대로 나오는지, 지기구조의 조립이 제대로 되는지. 이 셋은 각각 다른 단계에서 확인된다.
문제는 그 순서다. 제작사 샘플은 디자이너가 파일을 넘긴 이후의 과정이다. 그 전 단계에서 실물 크기로 확인하지 않으면, 파일을 넘기고 나서야 글자가 너무 밑에 있어서 안 보이거나, 접었을 때 그래픽이 어긋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픽을 완성한 후에 구조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 비용과 시간이 배로 든다.
내부 패드가 있는 패키지라면 이 문제가 더 심해진다. 강의에서 실제로 다룬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구성품이 여러 개인 제품의 패키지에서 패드 형태를 a형, b형, c형, d형으로 나눠서 수차례 수정을 거쳤다. 1차 수정에서는 구멍 크기와 제품이 흔들리는 문제가 발견됐고, 2차에서는 구멍이 너무 넉넉해서 포장센터 작업 중 상단 고정대가 아래로 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차에서는 손가락 구멍 형태를 바꾸고 고리형으로 최종 진행했다. 피드백은 모두 실물을 직접 조립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현실적인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인디고 출력소에서 실제 사이즈로 출력하고 철자와 커터칼로 자르고 접어서 조립한다. 오시선은 종이 폴더나 압흔기로, 미싱선은 원형 점선칼로 낸다. 접착은 디스펜서형 양면테이프를 쓰면 편하다. 같은 용지의 기성 패키지를 미리 구매해서 두께와 질감을 먼저 확인하고, 별색이 들어가면 팬톤칩을 옆에 두고 비교한다. 친환경 용지처럼 백색도가 낮은 용지를 쓰는 프로젝트라면 아예 실제 발주할 용지에 직접 출력해서 색감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따로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평소에 눈에 띄는 패키지를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습관. 용지의 질감이나 구조의 느낌은 화면 속 이미지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다. 직접 손에 들어봐야 아는 것들이다. 실물 컬렉션은 그냥 취미가 아니라 가장 설득력 있는 레퍼런스 자산이 된다. 이건 6년 전 썼던 글에서도 강조했었다.
패키지 디자인이 다른 그래픽 작업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온라인 경험을 위한 디자인은 파일이 곧 결과물이다. 하지만 패키지는 파일이 완성된 후에도 출력하고, 자르고, 접고, 조립하는 과정이 한 번 이상 남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게 단점으로 보일 수 있다. 번거롭고, 시간이 더 들고, 손이 많이 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이 좋았다. 화면 밖으로 꺼내서 손으로 직접 확인하는 그 단계가, 디자인이 진짜가 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커터칼로 자르고 접어서 형태가 생기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들, 예상과 달랐던 크기감, 생각보다 훨씬 좋았던 구조의 느낌. 그게 쌓이면서 결국 패키지를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무를 정하게 됐다. 번거로움이 이유가 되어 직무를 피한 게 아니라, 그 번거로움이 오히려 이유가 됐다. 손으로 만들어봐야 보이는 것들, 그걸 아는 디자이너가 결국 더 단단한 결과물을 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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